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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파리 사이 101장면 ⑧

“이렇게 오래되고 느린 나라에 무얼 배우러 왔어요?”

프랑스 사회의 무능과 비효율을 보다

  • 정수복│사회학자·작가

“이렇게 오래되고 느린 나라에 무얼 배우러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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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69 서점에서 책을 살 때

파리에 온 관광객들은 흔히 고급의류, 보석, 핸드백, 구두 같은 제품을 산다. 서울에서보다 가격이 훨씬 싸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항에서 부가가치세를 환불받는다. 파리에서 내가 사는 물건은 식료품 이외에는 책이 대부분이다. 슈퍼마켓에서는 무조건 기계에서 찍어 나오는 영수증을 주는데 파리의 몇몇 서점에서는 현금으로 내면 영수증을 주지 않는다. 영수증을 달라고 하면 기계로 찍은 영수증이 아니라 별도의 종이 영수증에 써준다. 어떤 서점 주인은 영수증 처리 기계가 고장 났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부가가치세를 안 내려는 수작인 것 같다.

파리에 사는 한국 동포들은 대개 프랑스 사람들에 대해 그다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소수민족으로 외국에서 살아가는 게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동포들이 보기에 프랑스 사람들은 무책임하고 정직하지 않으며 금방 들통 날 잘못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우기는 성향이 있다. 상대방이 자신보다 약한 외국 사람일 경우에는 일단 얕잡아보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직업정신의 해이, 자기가 잘못한 일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무책임성, 적당히 시간만 때우고 월급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태도, 눈앞에 보이는 상황만 넘기면 그만이라는 짧은 생각, 약자 앞에서는 강하고 강자 앞에서는 약해지는 비굴한 태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되지도 않는 자기주장만 늘어놓는 자기기만. 이런 정신상태와 태도가 프랑스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한 외국인들은 프랑스 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며 프랑스 사람들끼리도 불신의 상태에서 각자 자기 이익만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런 사회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가 없다.

그래도 파리에 사는 주민의 10%가 외국인이고 파리를 찾는 관광객의 숫자는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그건 프랑스가 아무리 경제적으로 침체기에 들어갔다 해도 찬란한 역사와 문화, 예술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돈이 아무리 많은 부자라도 문화와 예술을 모르고 역사의식과 철학이 없으면 금방 무시하고 내려다본다.





풍경 #70 그랑 팔레의 에드워드 호퍼 전시회

파리에 사는 가장 큰 이점은 풍부한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파리는 수준 높은 공연과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계속되는 문화의 도시다. 얼마 전 1900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철제와 유리로 지어진 ‘그랑팔레’에서는 프랑스를 사랑했던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전이 열렸다. 평소에 호퍼의 멜랑콜리한 분위기의 그림을 좋아 했기에 어느 날 아침 일찍 전시회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직 전시회장 문도 안 열었는데 관람객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오전 10시가 되자 드디어 문이 열렸다. 그런데 예약을 한 사람들이 먼저 들어가고 나같이 예약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주 천천히 들여보냈다. 그래도 줄을 이탈해 떠나는 사람이 없었다. 파리 사람들은 다른 일은 몰라도 줄을 서는 일에는 끝없는 인내심을 발휘한다. 한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내 앞에 긴 줄이 있다. 날씨가 쌀쌀해서 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내 앞에 있던 스페인에서 여행 왔다는 젊은 청년이 견디다 못해 입장을 포기하고 사라진다. 그래도 내가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음악 덕분이다. 전시장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서 거리의 악사가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었다. 한때는 독주자였거나 오케스트라의 단원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남루한 차림의 중년 남자가 연주하는 음악이 없었더라면 나도 스페인 청년처럼 입장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두 시간 반을 기다리고 나서야 겨우 전시회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전시실 입구에는 커다란 화면에 1920년대 뉴욕 항구를 찍은 흑백 활동사진이 돌아가고 있었고 화면 중간 중간에 휘트먼이 쓴 시의 구절이 나왔다. 2층에서 시작된 전시는 3층으로 이어졌다가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끝난다. 호퍼의 초기 작품과 일러스트레이션, 판화, 수채화 작품들에 이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뉴욕의 밤 풍경을 그린 ‘밤의 올빼미들(Nighthawks)’을 비롯해 호텔방, 기차의 객실, 사무실, 집, 도로변의 주유소, 등대와 철도길 등을 그린 그의 대표작들이 줄지어 전시되어 있다. 정신없이 그림에 빨려들어 갔다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데 밖에는 아직도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파리에는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교양층이 넓다.

풍경 #71 파리에서 본 두 편의 한국영화

영화 관람은 누구라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가의 방식이다. 최초의 영화는 프랑스 사람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흑백 무성영화다. 파리에서는 최신작을 상영하는 영화관이 많지만 그와 더불어 DVD가 아니면 보기 힘든 오래된 영화들만 상영하는 영화관도 있다. 라틴 구역에는 ‘샹포’와 ‘필모텍’이라는 두 개의 오래된 영화 상영관이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일간지 르몽드를 사서 읽는데 문화면에 김기영 감독의 1961년 작품 ‘하녀’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다. 어느 영화애호가가 만든 재단에서 자금을 지원해 하나밖에 없는 ‘하녀’의 원본을 입수해 망가진 부분을 복원해 처음 상영한다는 소식이었다. 오후 4시 30분에 시작하는 ‘하녀’를 보러 필모텍으로 갔다. 1961년 만든 영화치고는 매우 모던한 영화였다. 르몽드의 기사는 ‘하녀’가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검열이 약할 때 만들어진 영화로서 한국 영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며칠 후 생제르맹데프레 광장에 있는 영화관 앞을 지나가다가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In Another Country’라는 영어 제목 아래 한국 남자 배우 유준상과 프랑스 여자 배우 이사벨 위페르가 해변에서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매표구에 앉아 있던 남자는 다음 날 저녁에 이 영화관에서 개봉 전 시사회가 열린다고 알려준다.

다음 날 저녁 예매한 표를 가지고 영화관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바로 내 앞에 프랑스의 유명한 배우 앙드레 뒤솔리에가 앉아 있었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영화관 안에는 프랑스 영화계 인사들이 대거 앉아 있었을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이사벨 위페르가 나와 짧은 소개말을 했다. 자기는 홍상수 감독의 매력에 끌려 아무 조건 없이 촬영에 임했으며 홍 감독이 고다르와 마찬가지로 시나리오 없이 영화를 찍는다는 말은 아무렇게나 찍는다는 뜻이 아니라 평소에 심사숙고하던 구성이나 대사를 촬영 현장에서 현장감 있게 재구성하는 것이라는 해명을 했다. 영화가 끝나고 노란색 자막이 추상화처럼 눈앞에 걸려 있는 순간 관객들은 박수를 쳤다. 그러고 나서 스크린이 위로 올라가자 무대는 칵테일 파티장으로 변했다. 샴페인과 포도주 그리고 고급 식료품점에서 배달해온 다양한 요리가 차려졌다. 나도 샴페인을 한 잔 마시러 무대 위로 올라갔다. 이사벨 위페르가 사람들에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영화관을 나왔다. 파리의 밤거리에 노란 가로등이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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