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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장 ⑫

“자연 닮고자 했던 사랑방 주인의 마음으로 우리 가구 만듭니다”

전통 비례미와 사대부 정신 담는 小木匠 박명배

  • 한경심│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자연 닮고자 했던 사랑방 주인의 마음으로 우리 가구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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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아마 비례가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고 한다. 우리 목공품에서 알맞은 비례가 주는 아름다움(비례미·比例美)은 매우 중요한데, 당시 박명배는 우리 전통 비례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는 최 선생의 지적대로 고쳐서 다시 만들어갔고, 이번에는 최 선생이 만족해 ‘내 이걸 구입함세’ 하며 흔쾌히 연상을 사주었다. 이후 중앙박물관장과 젊은 목수는 자연스럽게 스승과 제자가 되었고, 특히 청와대에 우리 전통 안방을 꾸미는 일을 맡게 되면서 그는 최 선생의 치밀한 가르침을 받았다.

“청와대라면 과거 왕실 격인데, 나무 재료부터 디자인, 비례, 형식까지 모두 그에 걸맞은 격(格)을 갖추어야 했어요. 제가 도면을 그려 가면 최 관장님이 꼼꼼하게 검토하시고 우리 전통 가구의 비례며, 사대부 정신을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지 가르쳐주셨지요.”

실제로 그는 우리 전통 가구의 원형을 만들어낸 이는 사대부와 목수였다고 생각한다.

“관아에서 공인들을 12공방에 소속시켜 관리하던 시절의 공예품이 가장 세련되고 완성도가 높았겠지만, 조선시대 후기 12공방 체제가 무너지면서 개인 공방이 늘어납니다. 그때부터 목수들은 사대부의 주문에 따라 가구와 목물을 만들기 시작했으니, 지금 남아 있는 전통 목공예는 사대부와 목수의 합작품인 셈이지요.”

사대부들은 곧잘 목수를 불러 자신의 집에 맞는 크기와 디자인의 가구를 주문했다. 그래서 가구는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었고, 목수 역시 그 기간 생계를 보장받으면서 자신의 기술을 마음껏 발휘해 격 있는 가구를 만들 수 있었다. 우리 전통 가구에서 격이란, 사랑방 가구는 장식을 최대한 배제한 절제된 형태로, 또 안방 가구는 따뜻하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는 최순우 관장에게 우리 전통 가구의 비례에 대해서도 처음 배우게 됐다. 우리 가구는 앞면인 화장면을 울거미(테)로 여러 면으로 분할하고, 나뉜 면(복판 또는 알판)에는 때로 다른 목재를 쓰기도 한다. 이렇게 면을 나누는 첫 번째 이유는 여름과 겨울 습도 차가 큰 우리나라에서 통널(판재를 나누지 않고 통째로 쓰는 널빤지)을 쓰게 되면 나무가 잘 뒤틀리기 때문이다. 뒤틀림을 막기 위한 기능적인 고안이 바로 면 분할이지만, 면을 나눔으로써 아름다운 비례를 만들어내므로 어떤 비율로 분할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자연 닮고자 했던 사랑방 주인의 마음으로 우리 가구 만듭니다”

11월에 열린 그의 세 번째 전시회.

명장의 불문율, ‘자 대기 없기’

그의 가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래쪽 분할 면(특히 머름간)은 아래위 폭이 넓고 위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좁아진다. 금방 눈에 띄는 차이는 아니지만, 이런 미묘한 변화가 아름다운 비례미를 연출한다.

“우리 가구는 기능적인 면과 미적인 면이 절묘하게 조화돼 있어요. 우선 기능을 고려하고 이에 맞게 아름다움을 만들어나가죠. 가끔 자기 멋대로 디자인해서 만들어달라는 분이 있는데, 대개 이런 비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하는 주문이기 때문에 거절하는 편입니다.”

최순우 관장에게 배운 것 중 또 하나가 1대 1 도면 그리기다. 대개 목수들이 전통 가구를 짤 때 기준목이라는 게 있어서 가구의 기준이 되는 선을 표시한 막대기를 한번 마련하면 이에 맞춰 도면 없이도 얼마든지 같은 치수의 가구를 짜낼 수 있었다. 일종의 편법인 셈이다.

“그런데 최 선생님은 제가 짤 가구를 모두 도면으로, 그것도 축소한 것이 아니라 1대1의 비율로 그리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그린 도면을 벽에 붙여놓고 비례가 잘못된 것이 없는지 살펴보고 고쳐서 다시 그리고, 그렇게 일곱 번만 하면 제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도면을 완성할 수 있더라고요.”

그는 지금도 자신이 구상하는 가구의 도면을 1대 1 크기로 그려놓고 수없이 고쳐 가장 아름다운 비례를 한 치 오차 없이 얻어낸다. 그의 가구가 아름다운 비례미를 자랑하는 것도, 그리고 좀처럼 뒤틀림이 없는 것도 바로 이런 꼼꼼한 도면작업 덕임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 가르치는 제자들에게도 그는 1대 1 도면 그리기를 강조한다. 그래서 그의 공방에는 ‘자 대기 없기’가 불문율이다. 만들고 싶은 표본이 되는 가구에 자를 대어 치수를 재는 것을 금한 것인데, 어떤 가구든 눈으로 보고 도면을 그리면서 스스로 그 비율을 알아가야지 그냥 자 대고 치수를 얻어버리면 실력이 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인 ‘공간책장’(중간에 문을 달고 아래위는 빈 공간을 마련한 책장)은 일본 야나기 무네요시 민예관에 있는 책장을 재현한 것인데, 그는 텔레비전에 소개된 이 책장을 화면 캡처해서 그 책장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머리 높이를 기준으로 책장의 크기와 비율을 재현해냈다. 이렇게 눈으로 보고 도면 작업을 하는 버릇을 들여야, 어떤 기물이든 척 보고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그의 공방 사무실에는 지난 수십 년간 그려온 도면이 쌓여 있다. 때로 20년 전에 그린 도면을 꺼내 작업하기도 한다.

“무언가 만들기로 결심이 서면, 그에 관한 자료는 다 뒤져봅니다. 박물관도 찾고 인사동에도 가고, 여러 책을 보면서 스케치를 하지요. 그렇게 해서 도면을 열 개 정도 마련해서 제일 나은 것을 고르는 겁니다.”

평소에도 책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가구와 기물을 끊임없이 스케치하는 그는, 그렇게 스케치한 것을 보면 ‘어제 안 보이던 것이 오늘 보이고, 어제 괜찮게 보였던 것이 오늘은 달리 보이는’ 과정을 겪는다고 한다. 그렇게 여러 장을 스케치하고, 마음에 드는 것은 확대해서 다시 그려보는 과정을 거치면서 디자인을 서서히 완성해나간다. 그의 그토록 깔끔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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