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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反面敎師 삼아 수도교육 개혁”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보수 단일’ 후보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곽노현 反面敎師 삼아 수도교육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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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선택제는 어떻게 보나요. 곽 전 교육감은 ‘학교 서열화’를 이유로 반대했는데요.

“나의 기본 철학은 학생과 학부모가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하고 좋은 교육제도와 학교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규제정책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아이들의 선택을 다양화해주는 것. 큰 무리가 없다면 바람직하다고 봐요.”

이즈음 기자는 후보 단일화 과정으로 화제를 돌렸다. 단일화 과정에서 시민회의가 문 후보를 밀었다는 논란도 있었다.

“이상주 전 교육부총리가 가장 주도적으로 했어요. 후보 출마 권유를 받았는데 처음에는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는 분이 일단 이름을 올려놓고 보자고 했고요. 보수진영에선 ‘이기는 후보를 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어 내심 고심은 했어요. 11월 2일 단일화 발표 일주일 전 즈음에 최종 출마 결심을 했습니다.”

▼ 지난 8월부터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죠?



“네. 새누리당의 교육 공약 개발에 참여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출마 결심을 하고 10월 28일 부위원장직에서 물러났어요.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건 어쩌면 당연해요. 선거법상 정당의 당적을 가졌느냐가 문제가 되겠죠. 나는 당적을 가진 적이 없어요.”

현행 지방교육자치법에는 ‘과거 1년간 정당인의 교육감 출마 금지’ 조항이 있다. 선관위는 ‘입당 효력은 당원명부에 등재됐을 때 발생한다’며 문 후보의 교육감 후보 자격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냈는데 보수 진영의 단일후보가 됐어요.

“그걸 묻는 분이 꽤 있어요. 저는 김영삼 정부 후반기 2년간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습니다. 55개 교육개혁안을 만들었고요. 김대중 전 대통령당선자 시절에는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나를 추천해 DJ 취임 연설문을 다듬었어요. 그게 DJ와의 첫 인연이었어요. 이해찬·김덕중 교육부 장관은 DJ의 교육 구상을 위한 정지작업을, 나는 교육개혁을 실천하라고 임명했습니다. 보수 진보를 떠나 나는 교육개혁 전문가로 활동했어요.”

▼ 개혁안의 방향성은 무엇이었나요?

“교육부를 ‘학교 교육부’로 한정하지 말고, 인적자원의 총괄 담당 부처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5000만 명의 국민이 각자 가진 소질과 적성을 100% 발휘해 국가 발전에 참여하게 하는 거죠. 인적자원의 육성과 유통, 활용을 교육부가 총괄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었죠. 통일에 대비해 북한 인적자원도 관리해야죠. 그래서 교육부 장관을 부총리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 장관 그만두신 게 5·18 전야 음주 때문인가요?

“만약 그(음주사건) 때문이라면 그때 그만두라고 하셨겠죠.”

‘5·18 전야 음주사건’은 2000년 5월 17일 당시 전남대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2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뒤 문 장관과 한상진 정신문화연구원장, 노성만 전남대 총장 등이 광주의 한 주점에서 술을 마신 일이다. 당시 민주당 386 정치인들도 이 자리에서 술을 마셨는데, 정치인들이 들어서자 문 장관 일행은 주점을 나왔다. 문 장관은 ‘사려 깊지 못한 행위’라며 대국민 사과문을 냈다.

“그날 기조연설을 하고 호텔에 있다가 전야제 행사를 보러 전남도청까지 걸어갔어요. 300~500m쯤 됐나? 행사 마치고 호텔로 귀가하다가 맥주나 한잔하자고 해서 갔는데, 정치인들과는 나오다가 만났어요. 잘못이라면 잘못이죠. 그 때문에 경질된 건 아니고요. 장관 할 때 과외금지 위헌 결정이 내려졌어요. 당시 정부는 사교육비 대책으로 과외 금지 정책을 시행했는데, 헌법재판소가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린 거죠. 사실 부모가 자식 교육을 시키려는데 국가가 일일이 대처할 문제도 아니었어요. 헌재 판단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어요. 이 문제는 정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어요.”

인터뷰가 끝날 무렵 문 후보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에 대해 묻자, 그는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며 옛날이야기를 들려줬다.

문 후보는 1947년 철광석으로 유명한 만주 푸순(撫順)에서 태어나 이듬해 선양(瀋陽)과 톈진(天津)을 거쳐 인천으로 건너왔다고 했다. 선양에서 톈진까지는 미군 비행기로, 톈진에서 인천까지는 미군 군함(LST)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군함에서 사흘 밤을 보냈는데, 둘째 날 저녁부터 호흡곤란과 고열을 앓았다고 한다. 미군 군의관이 전염병의 일종인 디프테리아라고 진단했다. 주사를 놓아주고는 ‘오늘이 고비’라고 했다고 한다. 문 후보 어머니 손에 주사약 하나를 쥐여주었다. 그런데 여섯 살 때인 1953년 봄에 또 디프테리아가 재발했다. 호흡곤란으로 쓰러졌지만 6·25전쟁 막바지에 병원에 약이 있을 리 만무했다. 문 후보의 어머니는 미군 군의관이 건네준 주사약병을 찾아냈다. 당시 의사는 이미 말라버린 주사약에 무엇인가를 넣고 한참을 흔들어댄 뒤 주사를 놓았는데, 문 후보는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나의 목소리가 탁한 이유도 디프테리아 때문이에요. 그런데 2년 전에는 아내에게서 신장이식을 받았으니 3번의 고비를 넘겼네요(웃음).”

▼ 수술 후 경과는 좋나요?

“네. 좋아요. 신장이식수술은 수술 후 3년이 지나야 안심할 수 있다고 하네요. 2010년 12월 29일 수술했으니 2년 정도 됐나? 사실 아내는 건강 때문에 교육감 후보에 나서지 말라고 했어요. 저도 고심했고요.”

▼ 지금도 반대하시나요?

“네. 아직 설득을 못시켰어요. 그래도 투표는 하라고 해야죠(웃음).”

신동아 201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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