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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항해기

제48회 신동아 논픽션 공모 우수작

  • 김연식

지구별 항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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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는 좋은 시를 쓰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시인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한다. 경찰이 되겠다는 녀석은 바람직한 경찰상을 고민하지도 않고 학원부터 찾는다. 나는 고교 시절 민태원의 ‘청춘예찬’을 보고 가슴 설레ㅆ다. 지금 내게 그런 열정은 없다. 끓는 피, 거선의 기관같이 힘찬 심장, 투명하되 얼음 같은 이성, 갑 속의 칼 같은 지혜를 바라나봤는가? 나는 피기 전에 시들었다.

88만 원 세대

나는 우리나라에서 월드컵 대회가 열린 2002년 대학생이 됐다. 젊었다. 새로운 삶을 잔뜩 기대했다. 눈이 녹지 않은 2월, 신입생 예비모임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낯선 얼굴들과 버스를 타고 충청도로 향했다. 어색함이 사그라질 무렵 천안휴게소에 들렀다. 그런데 진눈깨비 날리는 주차장에 진풍경이 펼쳐졌다. 또래 학생들이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전기·전자·건축·토목·체육학과처럼 남학생이 많은 과마다 얼차려를 했다. 예비역 선배들은 창이 긴 모자를 눌러 썼다. 온기 없는 목소리로 ‘하나, 둘’ 외치면 신입생들은 휴게소가 떠나가게 악을 썼다. 학과끼리 경쟁이 붙었다. ‘강철! 공대!’와 ‘점프! 체대!’가 경합했다.

“빨리 가자.”

갓 사귄 동기들이 발길을 재촉했다. 그 말은 외면하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다. 나는 입학과 동시에 대학방송국에서 일했는데 사회문제에 관심 있는 학생이 많았다. 철쭉이 필 즈음 경기도 청평에서 모꼬지(MT)를 했다. 봄이 무르익은 밤, 졸업한 선배들은 건물 뒤 외진 곳으로 우리를 불러냈다. 그날 난생처음 얼차려를 받았다. 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신음이 어둠을 흔들었다. 얼차려는 학과 모꼬지에서도 받았다. 대학은 온통 얼차려. 도무지 피할 길이 없었다.



월드컵은 성대하게 끝났다. 얼마 후 새 대통령이 당선됐다. 그의 노란색은 새 시대를 상징했다. 그 대통령이 취임을 앞둔 2003년 2월 어느 날 9시 뉴스에 대학 신입생이 숨졌다는 소식이 나왔다. 신입생 예비모임의 얼차려 도중 꽃잎 하나가 졌다. 새 세상이 열렸다는데 우리 대학생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해 고려대에서 열린 노동절 전야제에서 나는 갓 취임한 대통령을 비난했다. 이듬해에도 어느 대학교에서 밤을 꼬박 지새웠다. ‘시국’을 걱정하면서 말이다. 나는 정작 이른 아침 수업을 만날 빼먹거나 영상물만 틀어놓는 교수에게는 옳은 말 한마디 못했다. 취업준비소가 돼가는 대학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밖에서는 더 나은 사회를 말하면서 안에서는 얼차려 같은 구태를 답습했다. 눈앞에 있는 것은 바꿀 생각도 못하면서 국가와 사회를 말하려 들었다. 나는 휴강을 밥 먹듯이 하던 교수에게 학기말 강의 평가를 후하게 줬다. 내 학점이 조금이라도 위협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바짝 엎드린 나는 결국 88만 원 세대로 불린다. 돌아보니 내 청춘은 한없이 초라하다. 나이 서른. 어깨가 무겁다. 부모님은 주름이 깊어지더니 혈색도 어둡다. 짝을 찾아 결혼식을 올리는 친구들 소식과 얼마 전 동네 전철역에 붙은 고교동창의 사법시험 합격 현수막은 나를 조급하게 한다.

잘난 허영심

모든 걸 멈추고 숨을 고르기로 했다. 종일 집에 있어도 부모님은 나무라지 않으셨다. 그러나 TV를 켜면 청년실신(청년 실업자·신용불량자), 청백전(청년 백수 전성시대), 장미족(장기간 미취업족) 같은 신조어가 쏟아졌다. 나는 신경질을 내며 채널을 돌렸다. 그래도 좌불안석. 결국 동네 직업훈련소를 찾아갔다. 노동부의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부천 자동차직업학교다.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시험 공부와 정비소 취업을 도와준다.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고교를 갓 졸업한 친구부터 60대 노인까지 일자리 없는 사람은 다 모였다. 어른들은 패배주의에 빠져 있고, 담배에 전 아이들은 머리카락이 샛노랗다. 나라고 다르지 않다. 솔직히 손에 기름때 묻히며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자동차 수리는 어떻게 하는지 좀 보자는 식이었다. 출석만 잘해도 교통비가 나왔다. 나는 개근해서 매달 11만 원을 꼬박꼬박 받았다. 출석으로만 치면 우등생이었다. 가만 보니 대학교도 이렇게 다녔다. 꿈도 없이 몸뚱이만 왔다 갔다…. 나는 거기서도 어정쩡하게 젊음을 흘려보냈다.

그때 눈에 띄는 동생 하나를 만났다. 숫기 없이 만날 혼자 점심을 먹는, 그러나 자동차에 대한 꿈으로 가득한 스무 살 재준이었다. 어머니는 안 계시고,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 혼자 자랐다고 했다. 고교 졸업 후 그리로 직행했다. 그는 수업시간에 빛이 났다. 실습 때마다 먼저 나섰고 질문도 많이 했다. 저렇게 공부했으면 명문대를 갔겠다 싶었다. 나는 재준이의 미래를 가늠해봤다. 녀석이 자동차 수리로 대단한 성공을 한다 해도 동네 정비소 사장이 전부일 것이다. 대학 졸업장씩이나 가진 나는 그의 미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쾌감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정작 내 꿈은 뭐지….”

남의 꿈은 깐깐하게 저울질하면서 내 꿈은 달아보지 않았다. 나는 겁쟁이다. 사회적 위치를 배정받는 게 두려워 그러고 있는지 모른다. 대기업 아래 중소기업 직원이 되기 싫어서. 그보다 못한 비정규직이 되기 싫어서 그냥 취업준비생의 백지 상태를 즐기지는 않나. 유치하게도 나는 만족스러운 점수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토익 응시를 미뤘다. 낮은 점수를 받으면 그게 나일 것 같아서. 그래놓고 남이 받은 700점이니 800점이니 하는 점수는 속으로 ‘그까짓 거’하면서 조롱했다. 재준이는 바닥에 꿇어앉아 더러운 볼트를 닦았다. 세상 전부인 것처럼 열정을 쏟는 모습을 보니 허영심에 팔짱만 끼고 있는 내가 창피했다. 내가 녀석보다 나은 건 아무것도 없다. 그 얼룩진 손앞에 내 하얀 손이 부끄러웠다.

나는 그 즈음 항해사가 되는 계획을 두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사나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품었을 비행기 조종사와 마도로스의 꿈. 지구본을 팔던 대학 시절부터, 아니, 대학을 선택할 때에도 진지하게 관심을 뒀다. 주변의 반대와 선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와서 항해사가 되겠다는 건 우주비행사가 되겠다는 것만큼이나 엉뚱하다. 그래서 가슴 한구석에 뜯지 않은 편지로 간직했다. 그러다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 해기사 단기 양성과정이 있는 것을 알았다. 고민이 많았지만, 앞뒤 재지 않고 열중하는 재준이를 보면서 지원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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