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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파리 사이 101장면 ⑨

‘우리에겐 왜 佛 퀼튀르 같은 라디오 방송이 없나’

스마트폰 시대의 라디오 사랑

  • 정수복│사회학자·작가

‘우리에겐 왜 佛 퀼튀르 같은 라디오 방송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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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파리에서는 택시에서 그런 모금상자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파리에서는 일상에서 적선을 요구하는 방식이 다른 것 같다. 그들은 ‘인정’에 호소하기보다는 ‘연대’라는 가치에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파리 시내 한복판 오데옹 거리 한구석에는 한동안 노숙자인 것처럼 보이는 중년 여성이 매일 똑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여성은 10년 이상 일한 어느 공장에서 부당 해고를 당했다면서 지금 회사 측과 재판 중인데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자기와 노동자 계급을 위해 연대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었다.

물론 파리 시내에 구걸하는 사람 가운데는 골판지 위에 ‘배가 고파요(J′ai faim)’라는 문장을 써놓고 허름한 모자나 빈 상자 뒤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지하철에 나타나서 구걸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자기도 최소한의 음식을 먹고, 몸의 청결을 유지하고, 인간답게 잠을 자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최소한의 인권 개념에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의 지하철에서 육체적 불구를 비롯해 불행한 처지를 내보이며 인정에 호소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을 구사하는 것이다. 파리의 지하철 승객들은 누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도 자기의 마음을 움직인 경우에야 동전 지갑을 꺼내지 그렇지 않으면 소음으로 간주해 외면해버린다.

풍경 #79 라디오는 내 친구

지금은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에 매달려 있지만 1960년대는 말할 것도 없고 1970년대에도 밤 시간에는 라디오를 많이 들었다. 1960년대에는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같은 라디오 연속극이 인기였고, 1970년대에는 이종환이 진행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 김세원이 진행하는 ‘밤의 플랫폼’, 임국희가 진행하는 ‘한밤의 음악편지’같은 인기 음악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작은 트랜지스터 하나만 있으면 혼자 자기가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파리에 살면서도 라디오 방송을 참 많이 들었다. ‘프랑스 퀼튀르’라는, 광고가 전혀 없는 공영방송을 가장 많이 들었는데 라디오를 켜기만 하면 프랑스를 대표하는 학자, 작가, 지식인, 종교인, 언론인들이 나와 수준 높은 강연, 대담,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 라디오 방송은 나에게는 재미있고 진지한 강의를 들려주는 교육기관이기도 했으며, 세상 돌아가는 꼴을 심층적으로 분석해주는 언론기관이기도 했다. 내가 유학생 시절보다 나이 50이 넘어서 프랑스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좀 더 알아듣게 된 것은 ‘프랑스 퀼튀르’라는 라디오 방송 덕분이다. 서울에 돌아와 나는 일부러 텔레비전 없이 살고 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여유로운 시간에는 주로 책을 읽지만 때로 라디오 방송을 듣기도 한다. 처음 서울에 돌아와서 ‘프랑스 퀼튀르’같은 라디오 방송을 찾아보려고 앞뒤로 채널을 옮겨보았지만 그런 방송은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가수 최백호가 흘러간 가요를 들려주면서 구수하게 진행하는 ‘낭만시대’나 그나마 다소 문화적 분위기를 풍기는 ‘신성원의 문화 읽기’라는 프로그램을 듣기도 했다. 요즘은 ‘프랑스 퀼튀르’ 방송을 인터넷으로 듣기도 한다. 서울에서나 파리에서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라디오는 영원한 내 친구다.



풍경 #80 등나무 벤치의 흡연구역

서울에서도 파리에서도 한창 금연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실내에서 흡연이 금지되면서 파리의 식당이나 카페는 길거리 쪽에 테라스를 마련해 흡연자들이 음료수를 마시면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겨울이면 투명 비닐로 테라스를 감싸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내가 살던 파리 16구 파시의 ‘르 파시’라는 카페 앞 도로에는 언제나 서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길가에는 그들이 피우고 나서 버린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거의 모든 실내가 금연 구역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흡연자들은 부득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건물 밖으로 나와 서서 처량한 모습으로 담배를 피운다.

서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내가 다니는 국립중앙도서관에도 야외에 흡연 장소가 열 군데 정도 지정되어 있는데 최근에는 몇 군데가 줄어들었다. 흡연자들을 구석진 장소로 몰아내고 있는 느낌이다. 사실 나 같은 비흡연자들은 도서관 앞마당 벤치나 뒤쪽 등나무 휴게소 벤치에 앉아 휴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누가 옆에서 담배를 피우면 참 힘들다. 길거리를 걷다보면 여기 저기 흡연 지정 장소가 마련되어 있는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담배에 굶주린 사람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마주 앉아 정답게 맞담배를 피우고 있다. 20대 초의 젊은 여성과 60대 아저씨가 서로 멀뚱멀뚱 바라보면서 입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는 모습을 보면 참 세상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 파리에서는 자연스럽게 보이던 그런 풍경이 서울에서는 왜 어색하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풍경 # 81 서울과 파리의 조명

서울의 야경은 파리에 비해 훨씬 화려하다. 강남이나 강북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위치한 건물들은 외벽을 네온사인을 비롯한 여러 가지 조명시설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래미안이나 자이 같은 아파트 단지들은 건물의 꼭대기에 예술적인 조명장치를 설치해서 그곳이 문화적으로 수준 높은 사람이 사는 아파트임을 과시한다. 파리 사람들이 서울에 오면 화려한 전광판과 건물의 조명 장식에 놀란다. 샹젤리제 거리의 크리스마스 조명 장치는 그 화려함과 심미성이 빼어나지만 대부분의 파리 야경은 다소 어둡고 은은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매년 10월 열리는 파리의 ‘백야 축제(La Nuit Blanche)’에는 유서 깊은 건물의 외벽이나 안마당에서 밤새 다양한 조명 예술이 펼쳐진다. 광고와 보안을 위해 너무 밝게 만들어놓은 서울의 거리에는 그런 축제가 어울리지 않을 듯하다. 파리 사람들이 서울에 오면 실외 조명만이 아니라 실내조명에도 놀란다. 파리의 아파트는 일단 황색의 백열등으로 조명을 하며 여러 곳에 스탠드를 설치해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여러 개를 켜서 밝은 조명을 하기도 하고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간접 부분 조명을 좋아하는 파리사람들이 서울의 아파트 거실 천장에 붙어 있는 흰색 형광등이 만드는 지나치게 차갑고 밝은 분위기에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 아파트의 실내조명은 어쩌면 부족한 조명 아래 어둡게만 살아서 밝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가난한 시절의 유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급 아파트들은 이미 형광등 대신 은은한 부분 조명장치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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