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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뛰는 전문건설 ①

“건설경제 민주화 새 정부 적극 나서라”

일감은 줄고 原請은 쥐어짜고…위기의 전문건설업

  • 배수강 기자│bsk@donga.com

“건설경제 민주화 새 정부 적극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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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관리 ‘러시’ 이유

“2000년 중반 이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경기 침체로 상위 100대 종합건설업체 중 21개사가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전문건설업계로 이어져 연쇄부도가 되풀이되고 있다. 하도급 대금 미지급, 초저가 하도급, 불공정특약 강요 등 불공정 하도급행위로 전문건설업계는 파산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전문건설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은 것은 ‘대형건설사의 법정관리행’ 탓이 컸다.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려 한 장 대표의 꿈이 물거품이 된 결정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정관리는 2006년 4월 통합도산법(회사정리법, 파산법, 개인채무자 회생법을 통합한 법으로, 정식 명칭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5년 사이 10배 급증(2006년 76개사→2011년 712개사)했다. 2012년에는 대형건설사들의 법정관리 신청이 잇따랐다. 5월 풍림산업(시공능력 29위)을 시작으로 우림·벽산건설(71·28위), 삼환기업(31위), 남광토건(35위), 극동건설(38위) 등 대형건설사들이 잇따라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공제조합은 올해 6개 대형 건설사의 법정관리로 1250개 전문업체가 2500여억 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했다. 그렇다면 대형건설사들이 잇따라 법정관리행을 선택하는 이유는 뭘까.

과거 법정관리는 경영권을 뺏고 개인 자산도 몰수해 대주주에게는 경영활동의 종말을 알리는 제도였다. 우성, 한신공영, 청구, 우방건설 등이 이러한 과정을 겪었다. 이 때문에 부실기업들이 법정관리보다는 은행 등 채권단의 감독 아래 자율적으로 채무조정을 하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선호했다. 하지만 2006년 통합도산법 시행 이후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도 경영권이 보장됐다. 통합도산법이 채택하고 있는 ‘기존관리인 유지제도(DIP)’는 중대한 위법 사실(경영층 법인재산 유용·은닉, 중대한 부실경영 책임)이 없으면 법원이 기존 대주주를 법정관리인으로 선임해 경영권과 지분을 보장해준다. 대주주들에게는 워크아웃보다 매력적이다. 하도급업체에 대한 상거래 채무도 동결돼 더 많은 빚을 탕감받을 수 있게 됐다. ‘신동아’ 취재 결과 통합도산법 제정 이후 법정관리를 신청한 100위권 내 대형건설사 중 90%는 기존 대표이사가 그대로 관리인으로 선임됐다.

한 전문건설업체 대표 Y씨는 법정관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남광토건의 법정관리로 우리 회사는 30억 원 이상 자금이 묶였다. 못 받는다고 봐야 한다. 이 때문에 다른 공사도 할 수 없다. 법정관리는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빚을 탕감받고, 법정관리인의 지위를 이용해 하도급 협력사의 피해는 ‘나 몰라라’ 하는 도덕적 해이의 다른 말이다.”

그의 말처럼 각 현장과 공정별로 공사가 이뤄지는 건설산업의 특성상 대형건설사 한 곳당 하도급 협력업체 수는 수백~수천 개사에 달한다. 대형건설사 한 곳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수많은 하도급사가 연쇄도산의 위험에 빠지는 구조다.

전문건설협회에 따르면 원도급사 법정관리로 피해를 본 하도급업체들은 2011년 415곳(계약액 4628억 원)에서 2012년 2942곳(계약액 3조6195억 원)으로 7배 이상 급증했다. 이 중 상당수 업체는 공사대금을 제때 받지 못해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감도 날로 줄고 있다. 2008년 7.1%였던 전문건설업체 1개사당 영업실적(공사계약액) 증가율은 이듬해부터 감소세로 돌아서 △2009년 -0.4% △2010년 -1.1% △2011년 -5.2% 등을 기록하는 등 매년 감소 폭이 커지고 있다.

특히 법정관리는 상거래채권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워크아웃과 달리, 상사채무까지 모두 동결·감면대상이 돼 그 피해는 하도급업체들이 떠안아야 한다. 실제 LIG건설의 하도급업체 상사채무 변제안은 ‘원금 30%는 10년 분할상환, 50%는 15년 만기 무이자 회사채 지급’ 방식이었다. 동양건설산업은 ‘원금의 61%는 10년 분할상환, 39%는 출자전환’방식이었다. 당장 돈이 급한 하도급업체에 ‘10년간 이자는 내지 말고 원금만 분할상환하라’는 것이다. 최근 하도급 대금 21억 원을 받지 못해 도산한 K씨의 말이다.

“10년 상환은 받지 말라는 얘기다. 출자전환도 우습다. 언제 휴지조각이 될지 모르는 주식을 하도급사가 왜 가지고 있나. 이런 식의 변제안은 하도급업체의 희생만 강요한다. 게다가 종합업체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그 하도급업체는 ‘왕따’가 된다. 다른 종합업체들이 법정관리 업체의 협력사라는 이유로 수주에 참여시키지도 않는다. 낙찰을 받았더라도 일하지 말라고 한다. 최근 전문업체의 잇따른 부도도 이 때문이다.”

“건설경제 민주화 새 정부 적극 나서라”
건설업계 두 바퀴

더욱 큰 문제는 이 경우 하도급업체 근로자는 임금을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채무자의 근로자 임금과 퇴직금, 재해보상금은 공익채권으로 분류해 우선 변제받을 수 있다. ‘건설산업기본법’에는 근로자의 임금은 압류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원도급사에만 해당한다. 하도급업체 직원과 건설근로자들은 법정관리 원도급사로부터 공사대금이 회수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는 “법정관리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법정관리 악용을 막기 위해서는 ‘기존관리인 유지제도(DIP)’를 기업이 부실화하기 전에 신청하거나 채권단이 동의할 때로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도급 협력업체의 상거래 채권을 공익채권으로 분류해 우선 변제하도록 하고, 하도급업체 근로자의 3개월 치 임금 정도는 보호해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 발주자가 하도급 대금을 직접 지급할 수 있는 요건에 법정관리를 명문화할 것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표 회장은 “고사 직전의 전문건설업체를 살리려면 새 정부가 지역도로·중소하천 정비 같은 생활친화적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집중투자하고, 불공정한 하도급 제도를 과감하게 정비하는 등 건설 경제민주화를 이뤄야 한다”며 “건설은 협력이 기본인 만큼 ‘유복동향 유난동당(有福同享 有難同當)’이란 말처럼 행복한 일은 함께 나누고 어려운 일은 함께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원청-하도급사의 불공정 관행이 만들어진 데는 전문건설업체의 책임도 있다. 각종 인허가 비리나 정치권 비자금 문제, 날림 공사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도 상존한다. 이에 대해 대회장에서 만난 경기지역 K건설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욕을 하면서도 일을 받아야 하니까 원청회사와 적당히 타협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때는 그나마 경기가 좋았다. 폭발 직전인 오늘날과는 거리가 멀다. 원청 종합건설사와 하도급 전문건설사는 흔히 ‘건설업계의 두 바퀴’라고 하는데, 이제 전문건설사라는 바퀴는 더 이상 굴러가지 못할 상황이다. 찌그러진 바퀴를 펴지 않으면 영원히 망가질 수 있다. 찌그러진 바퀴를 펴야 할 마지막 기회다.”

신동아 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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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강 기자│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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