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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정윤수의 힐링 healing 필링 feeling

다랑쉬오름 품고 新生을 도모하다

이타미 준, 안도 타다오의 濟州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다랑쉬오름 품고 新生을 도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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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타미 준의 또 다른 걸작인 포도호텔로 발길을 옮겼다. 신자도 아니면서 방주교회 안팎에 꽤 오래 머물렀으므로 이미 저녁 시간마저 다 넘겨 야음이 세상에 드리워진 다음이라 한라산 중턱의 포도호텔을 찾기란, 내비게이션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타미 준은 이 호텔을 여느 관광지 호텔처럼 우악스럽게 주변을 압도하는 양상으로 짓지 않았다. 만약 그러했더라면 호텔을 찾기가 쉬웠을지 모른다. 야밤에도 경광등처럼 네온사인이 번쩍거린다든지 고층의 숙소마다 켜놓은 불빛이 한순간에 제 위치를 일러줬을 테니까.

그러나 포도호텔은 한라산의 중턱에, 그 산의 부드러운 곡선에 그대로 잇닿아서, 그저 조금의 땅을 슬쩍 빌려서 살며시 들어앉힌 듯, 낮은 지붕의 단층으로 지어진 덕분에, 찾기는 쉽지 않았어도 들어설 때는 오래 떠나온 고향의 옛집에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이타미 준의 섬세한 지시에 따라 내부의 배치나 장식이나 조명도 결코 호사스럽지 않다.

이튿날, 그러니까 2013년의 첫 아침에 숙소를 나와 그곳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은 채, 일부러 게으름을 피우며 숙소의 안팎을 소요하면서 그는 깊은 밤에는 미처 볼 수 없었던 이타미 준의 ‘디테일’을 새삼 확인했다. 중산간의 억새마저 이 인공의 건축물과 제격인 듯 어우러지니 이 지역의 독특한 산세와 그 색깔들, 그리고 지천으로 널려 있는 현무암과 숙소는 스스럼없이 조화를 이뤘다.

이런 공간 자체가 힐링을 준다고 하면, 엄살일 것이다. 힐링이 그렇게 가볍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비행기를 타고 돈과 시간을 써가며 멀리 떠나고 돌아오는 번거로움을 가질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각박했던 대도시에서의 시공간 감각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의 산책은 움켜쥐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들만큼이나 애틋했던 시간을 가만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든다. 힐링 그 자체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시작은 되는 공간이다. 제주의 지세와 기세를 거스르지 않았던 건축가 이타미 준은 2011년 6월 26일 타계했다.



다랑쉬오름 품고 新生을 도모하다

제주 피닉스아일랜드의 아고라.

안도 타다오의 치유 방식

제주의 남서쪽에 이타미 준의 유산이 있다면 동남쪽에는 안도 타다오의 쾌작이 있다. 섭지코지의 피닉스아일랜드 부지 안에 위치한 안도 타다오의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가 그것이다. 자연을 압도하지 않고 자연의 성질과 흐름과 빛에 조응하려 한 건축물이다. 이러한 설명 자체가 이제는 다소 진부한 감이 있는데, 그럼에도 이 명상의 공간을 설명할 다른 언어는 불필요하다.

외관은 노출 콘크리트다. 언뜻 보기에 차갑다. 그러나 만약 그런 건물의 외관을 색색의 페인트로 칠해버린다면 오히려 구차한 장식이 되고 만다. 마치 무위의 자연적 공간을 조심스럽게 구분해 그 안쪽의 일부를 인위로 사용하겠다는 정도의 최소한의 목적으로 무채색의 노출 콘크리트가 작동하는 것이다. 직선으로 뚝뚝 절연해 공간, 그 안쪽으로 들어서면 왜 이곳을 ‘지니어스 로사이’라고 명명했는지 금세 느끼게 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제주의 상징인 현무암이 곳곳에 놓여 있다. 거대한 무덤이나 비의적인 모뉴멘트처럼 군집을 이루기도 하고 작은 이정표처럼 군데군데 흩어져 있기도 하고 주의 표지판처럼 방문자의 동선을 유도하기 위해 놓여 있기도 하다. 그야말로 현무암의 정원이다. 그런 정원의 사방으로 단지 공간을 구획하기 위해서라는 듯 무뚝뚝하게 노출 콘크리트가 담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 담 언저리로 억새가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알려주려는 듯 흔들리고 있다.

건축가는 방문자들에게 바람과 물과 성산의 일출봉을 보여준다. 아, 물론 그것들은 꼭 ‘지니어스 로사이’가 아니더라도 제주 어디에서나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재구성하고 재배치하고 재편집하면 더욱 각별해진다. 제주의 현무암과 억새와 물을 느끼면서 건축가가 공들여 배치한 동선을 따라 들어가면 긴 직사각형의 프레임을 만나는데, 그 프레임 안에 성산 일출봉이 담겨 있다. 노출 콘크리트 벽에 파놓은 긴 직사각형이 하나의 미술품 액자 혹은 카메라 렌즈 프레임의 역할을 하고 그 인위의 시각적 틀로 성산 일출봉을 ‘새롭게’ 보게 된다.

피닉스 아일랜드라든지 그것이 위치해 있는 섭지코지로 이동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아니 그럴 것도 없이, 이 한반도의 해맞이 터로 유명해서 직접 순례했거나 텔레비전의 송년 영상이나 ‘애국가’ 영상으로도 수십 번씩은 보았을 바로 그 성산 일출봉을 노출 콘크리트의 직사각 프레임을 통해 다시 볼 때, 성산 일출봉은 새롭게 보인다. 아, 저곳이 제주의 영기가 서린 성산 일출봉이구나 하는 감각적인 탄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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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타다오의 쾌작 ‘지니어스 로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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