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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 동서양의 접점 -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 ④

사유와 사유의 교류, 서양철학을 낳다

풍요와 여가의 땅 밀레투스

  • 임성진|철학자 limsj20@daum.net

사유와 사유의 교류, 서양철학을 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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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세계가 생겨난 기원이라는 사유는 세계의 기원이 어떠했고, 현재의 세계가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주목한 것이다. 탈레스는 세계가 태초에 물에서 나왔는데, 세계는 여전히 물 위에 떠 있고, 물은 지진과 같은 자연 현상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는 구성요소로서의 물이라는 생각과 기원으로서의 물이라는 생각을 함께 가졌을지도 모른다.

탈레스는 최초의 서양철학자지만 근원적 질료인 물에서 다른 사물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설명하지 않았고, 땅을 받치고 있는 물은 어떤 것으로 받쳐져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았다. 그의 제자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보다 더욱 정교한 주장을 펼쳐 스승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그노몬을 바빌로니아에서 도입했고 해시계 위에 그노몬을 세워 지점과 분점을 표시했으며 시간을 알려주는 계기도 만들었다. 그는 또 땅과 바다의 경계를 처음으로 그렸고 천구를 만들었으며 처음으로 지도를 내놓았다. 그는 ‘자연에 관하여’ ‘땅의 회전’ ‘붙박이별에 관하여’ ‘천구’ 등의 책을 썼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만물의 근원을 ‘아페이론’(무한정한 것)이라고 말한다. 아페이론은 물, 불과 같은 질료와는 다르다. 이것은 영원하고, 늙지 않으며, 모든 세계를 둘러싸고, 하늘과 그 속의 세계를 생겨나게 한다. 아페이론은 공간적 한계를 갖지 않는 무한히 큰 것이고, 시간적 한계도 없으며, 특정한 것으로 정해져 있지도 않다. 이것은 물도 불도 아니고, 뜨겁지도 차갑지도, 무겁지도 가볍지도, 축축하지도 건조하지도, 밝지도 어둡지도 않다. 이것은 신적인 것이고, 사멸하지 않고 파괴되지 않으며, 영원히 운동하는 것이기에 세계를 생겨나게 한다.

만물의 근원을 사유하다



우주는 아페이론에서 대립자들이 떨어져 나오면서 발생한다. 우주의 발생에서 주요 대립자는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다. 대립자의 도입은 근원적 질료인 물에서 다른 사물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설명하지 않은 탈레스가 갖고 있는 한계를 넘어설 실마리를 준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을 산출하는 것이 아페이론에서 분리돼 나온다고 설명한다.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은 동등한 힘을 가지고 동시에 산출되는 까닭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압도하지는 못한다.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의 구체적인 모습은 불꽃과 공기다. 불꽃은 껍질이 나무를 둘러싸듯 땅 주위의 공기(짙은 안개)를 감싸고 자란다. 불꽃이 부서져 둥근 것들로 될 때 해와 달, 별이 나타난다. 땅 주위의 공기인 짙은 안개는 인간이 숨을 쉬는 공기와 인간이 밟는 땅으로 분화하는데, 축축한 땅은 태양에 의해서 마르고 남아 있는 습기가 바다를 이룬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생물의 기원에 대한 설명도 제시했다. 더 단순한 것에서 더 복잡한 것이 생기며, 생겨나는 것은 어떤 것 속에 둘러싸여 있다가 밖으로 터져 나와 존재한다. 최초의 생물은 가시투성이 껍질로 싸여 있다 나중에 껍질을 터뜨리고 나왔으며 사람도 물고기 같은 생물 속에 갇혀 있다 성장한 다음 껍데기를 터뜨리고 나온다. 사람이 물고기 같은 생물 속에서 길러졌다는 발상은 최초의 생물이 축축한 것에서 생겨났다는 사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 사람이 어느 정도 성장하기 전에는 무기력하게 존재한다는 점을 설명하는 착상의 기발함을 보여준다.

철학의 탄생 덕분에 신에게 의존하지 않는 합리적, 과학적 사고를 통해 여러 자연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됐다. 밀레투스에서 탄생한 철학은 터키 서부 이오니아 지방으로 전파됐고 곧이어 남부 이탈리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이오니아에선 이오니아 학파가 형성됐으며 이탈리아 남부에선 엘레아 학파가 꾸려졌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년)가 등장하기 전의 철학자를 보통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또는 자연 철학자라고 일컫는다. 이들은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들이 인간을 중심으로 한 철학을 하기 전까지 자연을 중심으로 한 철학을 했다.

철학적 사유가 발전한 것은 탈레스가 기원전 6세기에 밀레투스에서 서양철학을 탄생시켰고, 그 뒤를 이어 아낙시만드로스가 철학의 기반을 어느 정도 마련한 데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신동아 201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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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진|철학자 limsj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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