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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재구성 ⑦

왜 그녀의 후손은 범죄자가 되었나

우생학·골상학의 시대

  • 이창무│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형사사법학 jbalanced@gmail.com

왜 그녀의 후손은 범죄자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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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형 얼굴이 따로 있다?

이렇듯 미흡한 점이 많았는데도 덕데일의 연구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까닭은 뭘까. 19세기 말, 20세기 초는 과학의 시대였다. 합리적 이성이 인류가 숙원하는 과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믿는 시대였다. 정치적, 이념적 주장도 과학적 근거가 필요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유전에 대한 관심 또한 컸다. 1866년 멘델이 유전법칙을 발견하고 1900년 무렵 더프리스, 코렌스 등 유럽의 과학자가 잇달아 멘델의 유전법칙을 재발견하면서 유전의 과학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범죄가 대를 이어 유전되는지에 대한 논쟁은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뜨겁게 진행됐다. 19세기 중반 유럽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으로 인해 세상이 뒤집혔다. 유럽을 1000년 넘게 지배해온 기독교적 창조론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진화론을 둘러싼 논쟁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점에 비춰보면 당시 사람들의 충격이 어느 정도였을지 가늠해볼 수 있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범죄 원인을 진화론 관점에서 풀어보려는 시도도 생겨났다.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 출신의 외과의사 체사레 롬브로소는 사형집행을 받고 숨진 사형수들을 부검하는 과정에서 색다른 점을 발견했다. 사형수들의 두개골 구조가 일반인과 달랐던 것이다. 뭐가 다르고 왜 다른지를 꼼꼼히 찾아보던 롬브로소는 나름대로 놀라운 이유를 밝혀냈다. 사형수들의 두개골은 대부분 진화가 덜 된 구조를 갖고 있었다.

“범죄자는 진화가 덜 돼 있다!” 충격적 발견이었다. 정부가 계속 형량을 높이고 처벌을 강화하는데도 범죄가 늘어나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바로 이런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범죄자는 죄를 저지르면서 처벌을 생각하지 않는다. 왜? 진화가 덜 됐으니까. 짐승이 사람을 물 때 이유를 캐묻지 않는 것처럼 진화가 덜 된 사람은 이성보다는 감정과 본능이 앞서기 때문에 범죄 충동이 억제되지 않는 것이라고 롬브로소는 생각했다.



롬브로소는 나아가 범죄형 얼굴이 따로 있다고 주장했다. 진화가 덜 된 인간의 얼굴형이 바로 범죄형 얼굴이다. 교도소에 수감된 수천 명의 재소자 얼굴을 분석한 결과 공통된 특징이 있었는데 이것이 진화가 덜 된 인간의 얼굴형이라는 것이다. 큰 턱, 강한 턱선, 튀어나온 이마, 긴 팔, 날카로운 눈빛, 크고 앞쪽으로 기운 귀 등이 이들의 공통된 특징이었다.

그런데 롬브로소가 미처 간파하지 못한 범죄자들의 또 다른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이들 대부분이 이탈리아 남부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북부와 남부는 지금도 지리적 풍토와 문화, 사람들 생김새가 다르다. 북부 사람은 주로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겼다. 반면에 남부 사람들은 북아프리카인과 닮았다. 롬브로소는 남부와 북부 사람들의 생김새나 두개골 구조 차이를 진화의 차이로 설명하려 했던 것이다.

과학은 만능의 무기가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남부 출신 범죄자가 많았던 데는 남북 간 경제력 차이가 크게 작용했다. 로마 시대 때만 해도 남부 이탈리아가 로마제국의 중심이었으나 중세 도시국가 시대 이후 북부 이탈리아가 유럽의 경제, 문화 중심지로 떠오른다. 이탈리아가 오랜 분단을 딛고 통일을 이룬 해가 1861년이다. 1000년 넘게 다른 나라로 살아오다 통일이 됐으니 이질감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아직까지 북부 지역에서는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이 있다. 국가 재정의 상당 부분을 북부 이탈리아가 제공하는데 복지 서비스의 혜택을 남부가 똑같이 챙겨가니까 화가 치민다는 것이다.

19세기 이탈리아가 통일될 무렵 경제·사회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던 북부 지역과 다르게 남부 지역은 먹고살기 어려울 만큼 궁핍했다. 동·서독 통일 때 나타난 것처럼 많은 남부 이탈리아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 북부로 몰려들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나면 범죄를 저지를 소지가 커진다. 남부 출신이 북부 출신에 비해 성격이 격정적이라는 점도 살인과 같은 충동적인 범죄를 많이 저지르는 요인이 됐다. 북부 이탈리아에서 남부 출신 범죄자가 득실거린 이유는 따로 있는 것이다.

롬브로소가 자신의 주장을 책으로 펴낸 게 1876년이다. 통일된 지 불과 15년이 지났을 때다. 독일의 경우 분단된 지 50년도 되지 않아 다시 통일됐지만 통일 후 2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국민 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1000년 넘게 따로 살아오다 갑자기 통일돼 10년 남짓 지난 시기의 대립과 갈등은 엄청났을 것이다.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의 부유한 집안 출신이던 롬브로소는 이런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범죄 원인이 진화 탓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덕데일이나 롬브로소의 연구는 결과의 타당성, 신뢰성 여부를 떠나 당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범죄와 같은 사회현상을 과학이라는 시대의 무기를 갖고 해석하려 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는 과학으로 인류의 모든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과 희망이 세계를 흥분시킨 시대였다. 하지만 범죄자에 대한 강제 불임을 주장하는 등 확실하게 입증되지 않은 과학에 기반을 둔 어설픈 이론이 인류 문명에 위협으로 다가왔다. 우생학적 주장은 때로는 선민(選民)주의를 부추겨 다른 인종이나 민족을 혐오하거나 박해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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