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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재벌과 선진국은 양립할 수 없다”

경영전략 대가 조동성 서울대 교수의 재벌개혁론

  • 정현상 기자│doppelg@donga.com

“재벌과 선진국은 양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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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당선인은 선거 중에 특히 민생을 많이 강조했지요.

“저는 그게 아주 설득력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선거가 끝난 상황이고, 시급성보다 중요성의 차원에서 근본적 해법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지배구조 문제, 시장 왜곡 문제를 해결하면 소득 불균형에서 오는 아픔이 훨씬 덜해집니다. 시장의 정의나 형평성이 좀 갖춰지면 국민도 심리적으로 상당히 만족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민은 더 많은 걸 요구하게 돼요.”

독점 통해 유지된 재벌

▼ 재벌 문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가요? 영어에도 복합기업(conglomerate)이나 그룹과는 다른 뜻으로 ‘Chaebol(재벌)’이라는 단어를 쓰는데요.

“한국 재벌의 독특한 탄생 배경이 있긴 하지만 재벌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후진국에서 개도국으로 성장할 때 국가 경제의 핵심은 돈입니다. 돈이 있어야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어요. 특히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데, 돈이 흩어지면 그게 이뤄지지 않지요. 그래서 필요한 자원의 집적을 가능하게 한 ‘패밀리 집단’이 등장하는데, 그게 재벌입니다. 영국의 로스차일드나 켄트, 미국의 카네기와 록펠러, 일본의 미쓰이와 미쓰비시가 다 재벌입니다. 한국의 삼성, 현대와 다를 게 없어요.”



▼ 선진국에서는 재벌이 어떤 형태로 존재합니까.

“선진국 사례를 보면 개도국과 중진국까지 재벌체제가 유지되다가 선진국에 진입하면 재벌체제가 해체됩니다. 저는 재벌과 선진국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선진국이 되려면 재벌을 포기해야 하고, 재벌체제를 유지하려면 선진국이 되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배경 설명을 좀 더 할게요. 개도국에서 재벌은 경쟁에서 이겨서 유지되는 게 아니라 독점을 통해서 유지됩니다. 독점은 권력기관이 비호하면서 유지돼요. 예컨대 정부가 발주하는 어떤 프로젝트에 개별 기업들이 참여의사를 표시하면 낮은 가격에 좋은 조건을 제시해서 공사를 따내는 게 경쟁입니다. 그런데 독점은 권력기관이 개입해 그걸 하지 못하게 막아서 이뤄집니다. 그런 체제로는 선진국이 될 수 없습니다. 개도국이 되면 재벌 기업들은 돈보다 선진국 기업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이 더 필요합니다. 경쟁력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고 시장경제에서 경쟁을 통해서만 생길 수 있습니다.”

▼ 선진국에선 재벌이 어떻게 해체됐습니까.

“재벌 해체 과정엔 4가지 패턴이 있습니다. 첫째, 재벌이 승계되다 3, 4대에 가면 능력 있는 자손이 생겨나지 않아 사라지는 경우입니다. 둘째, 독점금지법 등을 통해 재벌을 규제하는 겁니다. 1897~1912년 법정 투쟁을 통해 미국의 핵심 재벌이 해체됐습니다. 셋째, 일본의 경우 재벌이 군부와 결탁해 군벌이 됐고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면서 12개 재벌이 해체됐습니다.”

▼ 우리나라에선 법을 통해 바꿔나가는 방식이 가능할까요.

“문제는 미국식으로 법을 통해 바꿔나가는 것은 상당히 시일이 오래 걸린다는 점입니다. 미국도 15년이나 걸렸으니까요. 좀 더 이상적인 네 번째 방법은 재벌 총수가 스스로 상황을 판단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겁니다.”

재벌이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재단 설립이다. 대표적인 예가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이다. 이 기업은 스웨덴 전체 기업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거대 그룹이지만 투명한 공익재단을 통해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어 그룹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다.

▼ 우리나라도 재단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게 가능한가요.

“우리나라는 하나의 재단이 소유할 수 있는 지분이 5%로 제한돼 있습니다. 그리고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재단이 많아서 이미지가 좋지 않아요. 그러나 재단이 벌어들이는 수익을 개인이 착복하지 못하게 하면서 재단 운영을 건전화할 수만 있다면 스웨덴 모델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미국의 재벌들도 록펠러 재단이나 카네기 재단처럼 재단을 통해 가문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생물학적 승계 욕구도 합법적으로 채워줄 수 있습니다.”

▼ 재벌이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으로 또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제가 2011년 하버드대 경영학 대가인 마이클 포터 교수와 서울에서 만나 대담을 한 적이 있어요. 포터 교수는 기업이 ‘공유가치창출(CSV)’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분입니다. 포터 교수는 선진국 기업이 후진국 커피 농장에 교육과 자금 지원을 통해 윈-윈(win-win)하는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좀 더 큰 틀에서 CSV를 보고 싶습니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 돈을 버는 것이 곧 CSV입니다. 국내 재벌도 지배구조를 바꾸고 기업과 사회의 공유가치 창조에 나선다면 그것이 곧 패러다임 전환입니다.”

하이브리드 스탠더드

지난해 초 총선을 앞두고 잠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했던 조동성 교수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6개월간 연구년을 보내고 있다. 지난 몇 개월 베이징어언대학에서 하루 4시간씩 중국어를 배웠고, 사회책무와 공공성을 강조하는 중국 기업의 경영을 연구하는 등 중국 배우기에 열심이다. 그는 장기적으로 미국 스탠더드와 중국 스탠더드가 합쳐지는 ‘하이브리드 스탠더드’가 글로벌 스탠더드로 정착할 것이라며 거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걸프오일과 보스턴컨설팅그룹을 거쳐 1978년 최연소(29세) 서울대 교수 발령을 받고 귀국했다. 경영전략부터 국가경쟁력, 경영디자인, 윤리경영, 창조경영까지 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선도해왔다. 2008년엔 자기계발소설 ‘장미와 찔레’로 서울문학인 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등단했다.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마음속 열정까지 시들게 하진 못한다’라는 새뮤얼 울만의 시구를 좋아하는 ‘젊은’ 학자다.

신동아 201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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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상 기자│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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