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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힐링 healing 필링 feeling

영하 17도 山中에서 새가 되어 날다

월정사의 눈발 흩날리는 새벽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영하 17도 山中에서 새가 되어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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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전에는 부처님 대신 문수동자와 문수보살이 모셔져 있다. 그런 까닭인지, 신 교수가 쓴 현판 글씨 ‘문수전(文殊殿)’ 세 글자는 나뉘어 있지 않고 서로 몸을 잇대어 있다. 세상은 나뉘어 있지 않음을, 삼라의 만상이 관계 맺어져 있음을 글씨는 말하고 있다. 10여 년 전, 지금은 월정사 주지로 있는, 당시 상원사 주지 정념 스님의 부탁으로 현판 글씨를 쓴 신 교수는 그때의 남다른 생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보살이다. 불자가 아닌 나로서는 ‘지혜’의 의미를 현판에 어떻게 담아야 할지 난감하였다. 달포 이상 장고했다고 기억된다. 생각 끝에 결국 세 글자를 이어서 쓰기로 했다. 분(分)과 석(析)이 아닌 원융(圓融)이 세계의 본 모습이며 이를 깨닫는 것이 지혜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무리 작은 미물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짧은 찰나라 하더라도 그것이 맺고 있는 중중(重重)의 인연을 깨닫게 되면 저마다 시공을 초월하는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다. 꽃으로 가득 찬 세상은 얼마나 엄숙한 화엄(華嚴)의 세계인가. 지혜란 바로 그런 깨달음일 터이다. 불가의 연기론(緣起論)이며 나로서는 ‘관계론’의 뜻을 담는 것이기도 했었다. (신영복, ‘변방을 찾아서’ 중 ‘지혜, 시대와의 불화’에서 인용)



눈이 밝지 아니하여 명당을 셈하여 짚어볼 줄 모르고 산세의 높고 낮음에 대해 운운할 문장도 없거니와, 그럼에도 이만한 풍경에 올라서고 보면 ‘참으로 좋구나!’ 하며 숨 한 번 들이쉬게 된다.



그 자체로 그런 풍모인 덕분에 상원사 오르는 길이나 경내에 ‘번뇌가 사라지는 길’이라든지 ‘느림’이라든지 하는 안내 문구는 차라리 군더더기에 가까웠다. 힐링이라는 낱말조차 남루하게 만드는 폭설 속 ‘힐링’의 골짜기다.

기묘하고 에로틱한 달(月)의 정(精)

영하 17도 山中에서 새가 되어 날다

월정사 템플스테이는 내용이 알찬 것으로 유명하다.

상원사에서 조심조심 내려오니 겨울 해는 어느덧 골짜기의 서편으로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다행히 보름이다. 달이 벌써 세상을 달리 비추고자 떠올라 있었다. 오호라 월정사라! 달(月)의 정(精)이란 무엇인가. 불가의 거룩한 뜻이 대찰의 이름을 빌려 붙었겠으나 세속의 마음으로 ‘달의 정’을 언뜻 달리 생각하니, 기묘하고 에로틱하다.

최근에 힐링과 멘토가 크게 유행하고 그 바람에 산야 도처에 힐링캠프니 치유센터니 명상의 집 같은 곳이 웃자라는 세태지만, 월정사의 템플스테이는 이러한 트렌드 상품보다 역사가 더 깊고, 그 내용이 알찬 것으로 유명하다. 프로그램이 여느 사찰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발우공양에 스님과 차 마시며 대화하고 참선과 예불을 드리며 일기가 좋을 때는 암자를 순례하고 산사 아래의 전나무 숲길을 걷고 명상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는 대체로 1박2일이나 2박3일의 짤막한 ‘체험형 프로그램’이다. 이보다 더 진지한 것으로 아예 한 달가량 세속과 절연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스님처럼 머리를 깎고 30일 동안 수행하는 단기 출가학교도 있다.

최근에 절집을 찾아 하룻저녁이라도 마음을 편안하게 내려놓고자 하는 세속의 사람들을 위해 템플스테이의 시설을 개선해 이전보다 찾는 이가 더 많아졌다. 때마침 평창스페셜올림픽이 열려 군내의 가장 큰 사찰인 월정사의 템플스테이도 이 기간에는 헝가리에서 찾아온 스페셜올림픽 참가자와 그들을 돕기 위한 국내의 자원봉사자를 위한 숙소로 제공됐으니 이곳의 시설이 규모에서나 내실에서나 상당히 알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월정사와 더불어 마곡사, 범어사, 용문사, 금산사 등의 템플스테이가 겉모습만이 아닌 그 내실 덕분에 찾는 이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월정사는 템플스테이뿐만 아니라 천년의 숲길 걷기, 한암대종사 수행학림, 종교화합 축구 대회, 산사 음악제, 청소년 비보이 배틀, 조선왕조실록 반환운동 같은 다양한 종교 문화 활동을 벌여왔다. 상원사 청량선원 생활 10년 등 선사로 소문난 정념 스님이 월정사의 주지를 맡은 이후로 생긴 풍경이다. 정념 스님과 더불어 월정사의 한주(閒主·결재 대중의 모범이 되는 스님) 스님으로 있는 현기 스님 또한 월정사의 기풍을 사회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49재를 치른다든지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종교활동에 참여한다든지 사찰 밖의 고명한 학자 지식인 언론인 등과 ‘관계맺음의 사회’를 도모한다든지 하는 일이 두 스님에 의해 아름답게 펼쳐져왔다.

월정사의 템플스테이는, 우선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사찰 내의 몸가짐이며 마음가짐을 스님들로부터 배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경내에서 주의해야 할 행동이나 언행, 사찰 내 각 전이며 실의 의미와 쓰임새, 산중의 새벽에서 저녁에 이르는 일, 월정사의 역사와 문화 등에 대해 먼저 배운다.

익히 듣던 바대로, 템플스테이의 취침 시간은 저녁 9시이고, 새벽 3시30분이면 일어나야 한다. 평소 도심지에서 번잡한 약속을 처리하고 밀린 일을 마무리한 후 새벽까지 리모컨을 놓지 않고 영화와 잉글랜드 축구 등을 지칠 때까지 보다가 곧장 쓰러져 잠에 들었던 나로서는 9시 취침 새벽 3시 30분 기상은 지레 겁나는 일이었다.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며 몰래 이불 뒤집어쓰고 스마트폰을 눌러대다가 차라리 밤을 하얗게 지새버릴까 싶었으나 차라리 그 전날에 아예 잠을 줄이고 가급적 피로에 피곤을 누적해 저녁 9시를 맞이하면 그나마 잠에 들겠지 하는 새로운 ‘시차 적응 전략’을 세웠는데, 놀랍게도 그 작전이 맞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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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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