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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로 달러 뿌려 금융위기 불길 잡다

벤 버냉키 美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 하정민│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헬리콥터로 달러 뿌려 금융위기 불길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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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가 발휘한 ‘헬리콥터 벤’

2012년 9월부터 시작된 3차 양적완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연준은 3차 양적완화 실시 후 매달 400억 달러 상당의 모기지담보증권을 사들이고 있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다. 현재 8%를 넘나드는 미국의 실업률은 2008년 금융위기 이전 4~5%의 2배 수준이다.

2011년 8월에는 양적완화와는 다른 묘한 방식으로도 통화량을 늘렸다. 만기가 짧은 단기채권을 팔아 만기 6년 이상의 장기채권을 매입하는 소위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를 실시한 것이다. 4000억 달러 규모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는 급격한 통화량 증가 부담을 지지 않으면서 기업들의 조달금리를 낮춰 산업계의 자금순환을 원활히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활용됐다.

3차례의 양적완화로 미국 경제는 1920년대 대공황과 같은 초유의 파국은 면할 수 있었다. 무지막지해 보여도 이렇게 돈을 많이 뿌려놓으면 신용도가 낮은 가계나 기업도 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있고, 이자 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에 당장 손에 쥔 돈이 없어도 저축보다는 소비를 늘릴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를 무제한 찍어낼 수 있는 미국 중앙은행 수장이기 때문에 펼칠 수 있는 정책이긴 하지만 버냉키가 금융위기 후폭풍 진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금융위기를 예언한 것으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또한 “양적완화는 기존 경제학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변칙적이고 미친 정책이지만 금융위기 동안 연준이 보인 대응방법은 올바른 것이었다”며 “나는 버냉키 의장의 연임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모든 정책은 양면성이 있다. 연준 수장 버냉키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에게 ‘제2의 대공황’을 예방한 공로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버냉키는 통화정책 결정 과정에서 전임자 그린스펀과는 달리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그린스펀이 선문답 같은 애매한 간접화법으로 금융시장에 혼란을 야기하고 다소 독선적으로 연준을 운용한 것과 대조적으로 버냉키는 직설적이고 솔직한 소통을 선호했고 원칙과 합의를 존중했다. 그는 100년을 헤아리는 연준 역사상 처음으로 매 분기 통화정책회의 기자회견을 정례화한 의장이기도 하다.

3연임 여부에 촉각

하지만 양적완화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경기부양 효과는 제대로 내지 못하고 물가 상승과 달러 가치 하락만 부채질할 것이란 지적이다. 달러화는 세계 거래의 중심통화(기축통화)다. 양적완화로 인해 기축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달러화로 표시된 원유나 곡물 등 원자재 가격이 뛰어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공산이 크다.

또 초저금리의 장기화는 저축률의 과도한 둔화와 이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경제 전반을 왜곡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가계부채 증가로 인한 양극화 심화로 서민 계층을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 10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로 고민 중인 한국도 이 대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달러 약세가 세계 환율전쟁(currency war)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통화전쟁은 각국이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자국 통화가치 하락(평가절하·devaluation)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총성 없는 경제전쟁’이다.

수출 증가와 자국 내 일자리 확보를 겨냥한 각국의 통화전쟁은 미국의 양적완화 이후 점점 격렬해지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엔 약세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정책, 즉 ‘아베노믹스’를 노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도 설립 319년 만에 최초로 외국인 총재를 임명하고 파운드화 하락 정책 추진을 본격화할 태세다. 자국 통화가치 급등으로 인한 수출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한국, 중국, 브라질 등 신흥국도 자국 통화 강세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세계경제계는 이제 버냉키 의장의 3연임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06년부터 4년 임기의 연준 의장으로 일해온 그의 두 번째 임기는 2014년 1월 31일 끝난다. 지난해 미국 대통령선거가 한창일 때 양적완화에 반대하던 미트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가 “내가 대통령이 되면 버냉키 의장을 교체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진 그의 3연임 포기설은 올해 들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유명 이코노미스트 린 리저는 “버냉키 의장이 이번 임기를 마치면 학교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반면 일부 전문가는 그의 연임을 점치기도 한다. 아메리프라이즈 파이낸셜의 러셀 프라이스 이코노미스트는 “지금은 통화정책이 사상 최고로 복잡한 시점이므로 이 이례적인 조치를 처음으로 고안한 버냉키보다 연준 의장직을 더 잘 수행할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만약 버냉키 의장이 올해 말 사임한다면 세계 금융시장은 상당한 혼란에 휩싸일 공산이 크다. 프라이스 이코노미스트의 말대로 세계경제가 아직 위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양적완화 자체가 유례없는 정책인 만큼 이를 주도해온 버냉키의 부재는 큰 변화를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할 때 그의 3연임 여부에 관계없이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바로 버냉키가 1914년 설립된 FRB의 100년 역사상 호불호가 가장 극명하게 갈리고 정책 찬반논란이 큰 의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신동아 2013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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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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