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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동서양의 접점 |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

기하학으로 드러낸 기독교 황제의 절대적 神觀

‘거룩한 지혜’의 판테온 하기아 소피아

  • 송유레|경희대 철학과 조교수·서양고대철학 euree_song@naver.com

기하학으로 드러낸 기독교 황제의 절대적 神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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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으로 드러낸 기독교 황제의 절대적 神觀

하기아 소피아의 웅장한 외관.

기독교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콘스탄티노플의 대성당은 세계의 창조 원리를, 창조주의 거룩한 지혜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프로코피오스는 대성당이 주는 거룩한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누군가 기도하기 위해 이 성당에 들어간다면 인간의 능력이나 기술이 아니라 신의 능력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의 정신은 신을 향해 드높여지고, 창공을 노닐며, 신이 멀지 않게 기꺼이 스스로 고르신 집에 거하심을 믿게 된다.”

구약 창세기에 창조주가 수학적 원리에 따라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프로코피오스가 하기아 소피아의 설계에 적용된 ‘거룩함의 기하학’을 이해했기 때문에 거룩함을 느낀 것도 아니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조물주의 우주 제작 신화를 제시한다. 여기에서 조물주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기독교의 창조주와는 달리, 혼돈에서 질서를 만들어내는 신적 장인(‘데미우르고스’)이다. 중요한 점은 신적 장인이 질서를 만들기 위해 수학적 원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플라톤의 조물주는 수학자다. 이 신화는 수학적 원리를 통해 우주의 질서와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견해를 암시한다.

‘우주’를 의미하는 희랍어 ‘코스모스’는 원래 ‘질서’를 뜻하지만 ‘장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대 희랍인들은 질서를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질서를 아름다운 것일 뿐만 아니라 신성한 것으로도 보았다. 그들은 별들의 운행이나 계절의 변화에서 발견되는 규칙성에 감탄했다. 일식과 월식 같은 천문 현상에 매료됐고 밤낮을 번갈아 가며 하늘에 떠 있는 저 기하학적 도형의 물체를 신이라 불렀다.



고대의 플라톤주의자들은 우주의 아름답고 신성한 질서를 유지해주는 보다 근원적인 신성이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만물의 수학적 질서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수학적 질서에서 궁극적 신성을 예감했다. 그들에게 수학은 신학의 모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신성한 수학’을 통해-그것을 믿든 말든- 하기아 소피아를 설계했던 건축가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들이 표현하고자 한 거룩한 지혜에 다가갈 수 있다.

프로코피오스는 ‘건축물에 관하여’에서 하기아 소피아를 다루기 전에 황제의 업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불협화음으로 동요된 나라를 넘겨받아 크게 확장했다. 그 뿐만 아니라 예부터 위협이 된 이민족들을 몰아냈다. 그의 치세에 많은 나라를 수월하게 로마 제국에 병합했다. 신에 대한 믿음이 잘못된 길에서 방황하고 여러 방향으로 갈라졌음을 알게 된 그는 방황으로 이끄는 길을 파괴하고 하나의 신앙이라는 반석 위에 세웠다. 또한 법률이 필요한 것보다 많이 생겨서 혼탁해지고 서로 모순을 일으켜 혼란에 빠지자 수많은 말장난과 속임수를 제거했다. 반역을 꾀한 자들을 사면했고, 부(富)를 풀어 주린 이들의 배를 불렸으며, 그들을 함부로 다룬 운명을 제압해 온 나라를 행복한 삶과 결혼시켰다.”

동로마 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고대 후기에서 비잔틴 중세로의 이행기를 살았다. 실질적으로 비잔틴 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그는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피레네 지역까지 옛 로마 제국의 영토를 대부분 수복했고, 1000년 동안 축적된 로마법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해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편찬했다. 이 법전은 16세기 이래 ‘로마법대전(Corpus Iuris Civilis)’으로 불리며, 유럽 법제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옛 로마 제국의 영광을 되찾으려 한 ‘로마’ 황제라고 할 수 있지만 종교 측면에선 비잔틴 황제가 된다. 그는 국가와 교회가 조화를 이루는 기독교 제국의 거룩한 황제가 되길 원했다. 그는 황제의 신성화를 통해 비잔틴 중세를 연다.

거룩한 황제를 꿈꾸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4세기 이래 로마 제국에서 국가와 교회의 경계선은 분명치 않았다. 당시 신학자인 카이사레이아의 주교 에우세비우스는 ‘기독교 제국’의 이념을 전개하면서 로마 제국을 천국의 모상으로, 황제를 신의 대리인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비롯한 이후의 황제들은 로마 제국의 전통에 따라, 적어도 명목상으론 그들이 로마 민중(Populus Roma-nus)의 대리인임을 잊지 않았다.

유스티니아누스는 민중의 대리인이길 거부하고 신의 대리인이길 선택한 첫 번째 황제다. 그는 권력이 민중이나 군대가 아니라 신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었다. 527년, 황제의 대관식은 예전처럼 히포드롬 (마차 경주장)에 모인 민중 앞에서가 아니라, 민중을 제외한 채 황궁에서 거행됐다. 542년엔 오랜 전통의 원로원이 폐지된다. 새로운 황제는 신의 명령에만 복종하며, 지상의 제국을 신국(神國)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초기 유스티니아누스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바르베리니 상아 판화가 황제관(觀)의 변화를 보여준다. 완전 무장을 한 채 이민족을 복속시키고, 제국의 중앙 권력을 쟁취한 황제가 십자가를 든 그리스도와 그를 에워싼 두 천사 아래에 서 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로마 제국의 기독교화를 위해 96개의 교회를 건축했다. 유통되던 금전(金錢)에 승리의 여신 대신 천사를 새기게 했으며, 선교 활동을 대대적으로 지원했다. 소아시아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에페소스의 요한네스는 (과장을 섞어서) 7만 명을 개종시키고 100개의 교회와 12개 수도원을 창설했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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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레|경희대 철학과 조교수·서양고대철학 euree_s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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