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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재구성

“나는 이용당했을 뿐 …” 누가 오스왈드를 쏘았나

케네디 암살과 음모론

  • 이창무│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형사사법학 jbalanced@gmail.com

“나는 이용당했을 뿐 …” 누가 오스왈드를 쏘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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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암살 석 달 뒤인 1964년 2월 오클라호마 주 호미니에 사는 셜리 마틴이라는 여성이 네 자녀를 자동차에 태우고 7시간 동안 차를 달려 댈러스에 도착했다. 겨드랑이에 녹음기를 몰래 감춘 채 아이들을 앞장세우고 케네디 암살의 진실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마틴은 케네디 암살과 관련한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 50여 명과 인터뷰를 했다. 그중에는 케네디의 시신이 도착한 병원에서 마지막 미사를 집전한 신부, 암살범 오스왈드와 같은 아파트에서 살던 여자, 암살 현장 바로 옆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가구 판매원도 있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는 케네디 죽음의 진실을 밝히라는 신의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캘리포니아 주 베벌리힐스에 사는 매기 필드도 암살의 진실을 캐는 일에 나섰다. 그는 자신의 넓은 집을 온통 케네디 대통령 암살과 관련된 자료 스크랩, 파일박스로 채웠다. 목격자와 주요 정보원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차트만 75개나 됐다.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회계사 릴리언 카스텔라노는 댈러스의 하수구 지도를 열심히 살펴봤다. 혹시 다른 암살범이 빗물 배수관에 숨어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뉴욕의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분석요원으로 일하는 한 여성은 정부가 6개월 동안 발표한 암살 관련 내용에 대한 문제점을 하나하나 꼬집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정부가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 일원인 레이먼드 마커스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이 정부의 거짓 발표를 믿고 있으며 정부의 거짓말은 결국 우리 모두를 죽일 것이다.”

고위 관료도 음모론에 기울어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을 파헤치려 나선 사람들은 정부와 권력기관이 공모해 거짓을 발표하고 은폐하려 하지만 이런 음모를 그들 스스로 밝혀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일반 국민이 국가 안보에 관한 비밀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이들은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 서로가 가진 정보를 교환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진실을 원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면서 하루에도 몇 시간씩 전화기를 붙들고 서로를 독려하며 숨은 정보를 캐내려고 애썼다.



음모론적 시각을 가진 것은 일부 시민만이 아니었다. 정부 최고위직 인사들도 이러한 주장에 솔깃해 귀를 기울였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이후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린든 존슨 대통령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순간 떠오른 생각은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언제 미사일이 날아올까?’였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런 생각을 했다.” 대통령 암살에 소련이 개입됐다고 여긴 것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은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데다 핵전쟁의 공포가 극에 달하던 때인 만큼 이런 음모론적 생각은 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케네디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당시 법무장관은 결이 다른 음모론적 생각을 떠올렸다. 내부 소행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는 쿠바의 카스트로를 축출하려는 CIA와 미국 내 망명 쿠바인이 손잡고 케네디를 암살했으리라 생각했다. 케네디가 피그만 침공을 비롯해 카스트로 축출에 미온적이었던 데 대한 원한과 복수심에서 암살을 계획했다는 것이다. 로버트 케네디는 당시 CIA 국장 존 매콘에게 CIA가 암살 사건에 개입했는지 추궁했다. 물론 매콘 국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강력하게 부인했다.

부통령이나 장관 등 정부 고위급 인사들은 케네디 행정부가 해외에서 암살공작을 꾸민 기밀사항을 잘 알기에 음모론적 추측을 했을 법도 하다. 케네디 암살과 해외 암살 사건 공작 사이에 어떤 관련성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것이다. 아이젠하워 행정부, 케네디 행정부에서 CIA는 최소 8번 이상 카스트로 암살 공작을 주도한 바 있다. 카스트로를 반대하는 쿠바인을 이용하거나 마피아 청부살인 업자를 고용해 목숨을 노렸다. 케네디가 총에 맞던 바로 그 순간에도 프랑스 파리에서는 CIA 요원이 카스트로 암살에 쓰일 독침 만년필을 쿠바 반체제 인사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미국 정부 고위 관료 처지에서 케네디 암살에 쿠바인이 연루됐으리라는 심증을 갖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케네디가 암살되자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J. 에드거 후버 국장은 직속상관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에게 암살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조금 뒤 오스왈드를 붙잡았다고 보고했다. 오스왈드에 대해서는 쿠바의 카스트로를 추앙하는 공산주의 신봉자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후버 국장은 사건을 보고받은 후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짓는 것이 국가와 FBI, 그리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만약 암살 배후가 존재한다면 언론과 국민은 바로 FBI에 수사 착수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후버가 가장 염려했던 것은 만약 수사 결과 암살 배후로 소련이 드러난다면 국민 여론이 소련에 대한 보복을 요구할 테고 이는 곧 핵전쟁을 의미한다는 점이었다. 음모론이 불거지면 결국 소련과의 관계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후버가 미처 계산하지 못한 게 있었다. 무능한 댈러스 경찰이었다. 오스왈드를 체포한 댈러스 경찰은 언론인은 물론 일반 시민도 경찰서 건물을 마음대로 출입하게 허용했다. 과거 경찰 정보원이었고 나이트클럽 주인이었던 잭 루비 역시 오스왈드가 구치소로 이감되는 통로 앞에 서 있었다. 미국 전역에 생방송으로 TV 중계가 이뤄지는 가운데 오스왈드는 “나는 단지 이용당했을 뿐”이라고 외쳤다. 그때 잭 루비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오스왈드 바로 1m 앞에서 권총으로 그를 사살했다. 수백만 명이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어 잭 루비가 마피아와 관련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음모론은 날개를 달았다. 사건의 배후가 오스왈드의 입을 막고자 잭 루비를 시켜 살해했다는 추측이 난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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