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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스타로 만든 ‘애마부인’ 배우 인생에 독(毒) 됐다”

배우로 돌아온 원조 섹시 아이콘 안소영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날 스타로 만든 ‘애마부인’ 배우 인생에 독(毒)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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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별한 부녀의 정

대학 진학을 거부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 무렵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는 “아버지는 자신의 사업 실패로 딸이 기죽지 않기를 바라셨고, 저는 과분한 사랑을 베풀어준 아버지께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 부녀 사이가 각별했군요.

“엄마하고는 별로 안 친해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랑만 친했어요. 가슴에 몽우리가 생겨 아플 때도, 생리를 시작했을 때도 엄마가 아니라 아버지한테 얘기했을 정도로. 그래서 엄마를 계모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죠.”

▼ 아버지가 큰딸만 예뻐해서 동생들이 서러웠겠네요.



“세 살 터울의 남동생이 둘 있는데 걔네가 저 때문에 설움 좀 받았죠. 제가 숟가락을 들어야 동생들이 밥을 먹을 수 있었거든요. 그 정도로 아버지가 저를 공주처럼 떠받들었어요.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딸에게 실망을 줬다는 생각으로 힘들어하셨죠. 사업을 다시 일으켜 돈을 많이 벌 때까지 시집가는 것도 원치 않으셨어요. 시어른에게 해온 거 없다고 구박받는 게 싫어서요. 악착같이 돈 벌어 아버지 재기를 도우려고 했는데 ‘애마부인’이 흥행에 성공하고 얼마 후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그가 배우가 된 걸 못마땅해 했지만 몰래 극장을 찾아가 ‘애마부인’을 봤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어머니에게서 그 얘기를 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아버지가 원하던 대학엔 끝내 안 갔습니까.

“대신 드라마센터를 잠깐 다녔어요. 수료는 안 하고 청강생으로…. 배우학원 같이 다니던 선배님들이 ‘대학 안 갈 거면 분위기라도 익히라’며 권했어요. 서울 남산에 있던 2년제 학교인데 연극, 영화를 전문적으로 가르쳤죠. 지금은 서울아카데미로 바뀌었어요.”

스크린에 데뷔하기 전부터 그는 연극·영화계에서 유명했다. 중고교 시절 영화촬영장을 쫓아다니고 배우학원을 6년이나 다닌 열정을 높이 사 좋은 길로 끌어주려는 선배가 적잖았다. 그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배출한 극단 신협의 회원이 된 것도 배우 박암(1924~1989) 선생의 강력한 추천 덕분이다. 그는 “연극계 선배님들은 내 꿈이 영화배우라는 걸 알았다. 언젠가 떠날 놈인 줄 알면서도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했다.

“날 스타로 만든 ‘애마부인’ 배우 인생에 독(毒) 됐다”

‘애마부인’의 명장면. 안소영은 안장 없는 말을 타다 하혈을 했다고 한다.

상처 받은 영혼

임권택 감독도 영화를 향한 그의 남다른 집념을 높이 평가했다. 임 감독은 그가 눈에 띌 때마다 “내가 저놈을 반드시 키워야 돼”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임 감독이 그를 ‘내일 또 내일’에 출연시킨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흥행하지 못해 임 감독은 자기 세계로, 그는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3년 뒤 그의 ‘애마부인’ 출연 소식은 임 감독에게 충격을 안겼다.

“감독님은 내가 감독님에 의해 배우가 될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근데 ‘애마부인’으로 딱 떠버리니까 크게 실망하셨죠. ‘왜 그렇게 서둘렀니? 시간을 갖고 기다리지…’ 그러셨죠.”

1982년 ‘애마부인’으로 제18회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받은 그는 이를 계기로 다양한 연기에 도전하려고 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애마부인’이 뜨자 더는 광고 출연제의가 들어오지 않았고, 그와 알고 지내던 감독들은 그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워 ‘19금’ 영화를 마구 쏟아냈다. 1982년에만 8편의 영화를 찍은 그는 “내 이름을 팔아 제작비를 투자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 이후에도 계속 에로영화만 들어왔나요.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땐 에로영화가 아니었는데 결국 찍다보면 또 그런 영화가 되더라고요. ‘애마부인’ 이미지에서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제자리를 맴도는 기분이었어요. 스태프들도 은근히 비아냥거렸어요. 거리를 지날 때도 ‘한번 벗어봐라, 가슴이 얼마나 큰지 보자’는 말을 숱하게 들었어요. 이런 생활에 환멸을 느껴 영화계를 떠났어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을 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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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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