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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식이’가 닭갈비를 만든다고?

중년남성 요리강좌 인기몰이

  • 박은경 |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삼식이’가 닭갈비를 만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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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 때마다 밥 타령을 늘어놓았다가는 ‘잘 차려진 밥상’ 대신 ‘이혼청구서’를 받기 십상인 게 요즘 남편들이다. 은퇴전문가들은 해마다 황혼이혼이 증가하는 이유를 ‘은퇴남편 증후군’에서 찾는다. 하루 종일 남편 없는 집에서 혼자 지내기를 수십 년간 해온 아내가, 남편이 집에 들어앉게 되면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 부부싸움을 부르는 은퇴 남편 유형으로는 세 가지가 꼽힌다. 꼬박꼬박 점심식사 챙겨줘야 하는 남편, 잠옷바람으로 거실에서 빈둥거리며 TV만 보는 남편, 하루 종일 아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시시콜콜 잔소리하는 남편.

정문채 씨는 “요즘 남자 직원 중엔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아 요리를 주제로 대화하다보면 소통이 잘되고 제품 개발에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집에서 요리하면서 아버지로서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는 “지난 주말 아내와 딸, 아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하나씩 따로 만들어줬더니 딸이 친구들에게 자랑하겠다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갔다. 나이 들면 축구나 등산은 몸에 무리이고, 골프는 돈이 많이 든다. 요리는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어 노후 준비로 최고”라고도 했다. 공인회계사 이상엽 씨는 지난해 민간기업에서 마련한 ‘행복남요리교실’에 참여했다. 그는 “요리를 배우면 나이가 들어 아내가 내게 의지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요리를 배웠다”고 했다.

강남구청 이외에도 여러 지자체와 민간기업들이 중년남성을 위한 요리강습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서초구 양재동 서초문화원의 ‘아버지요리교실’은 강좌를 개설한 지 벌써 3년째다. 정원 25명으로 3개월씩 진행하는데, 역시 은퇴 전후의 50, 60대가 주축이다. 양천구청도 한 달짜리 ‘아버지요리교실’을 매해 서너 차례 열고 있다.

영등포구 시니어행복발전센터가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한 ‘쿠킹 마이 라이프(Cooking My Life)’는 ‘은퇴남성의 가사 자립’을 목표로 내걸었다. 50세 이상만 참가할 수 있다. 주로 된장국, 김치찌개, 두부조림, 겉절이처럼 평소 자주 먹는 음식과 닭찜, 해물탕 등 특별요리를 가르쳐준다. 무역업체를 경영하다 은퇴한 뒤 ‘쿠킹 마이 라이프’에 참가했다는 서병원 씨는 “자격증 취득 위주로 가르치는 사설 요리학원과 달리 구청 프로그램은 가정식 요리를 배울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며 “수강생 대부분이 요리 초보자인 남자임을 감안해 강사가 쉽고 꼼꼼하게 가르쳐줘 좋다”고 했다. 그는 강습 때 받은 레시피를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히 보관한다고 한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의 지자체 중에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 갈수록 느는 추세다. 민간기업과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도 남성요리강좌가 속속 개설되고 있다. 샘표 식문화연구소 지미원은 수년째 ‘남자들의 맛있는 수다 쿠킹 클래스’를 열고 있다. 매번 주제가 다른 특강 형식으로 1회 강습으로 끝나기 때문에 긴 수강기간을 부담스러워하는 남성들에게 인기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담당자는 “요즘은 나이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요리에 관심 갖는 남성이 많다”며 “한식이나 밑반찬 만들기 등 가정에서 쉽게 해먹을 수 있는 요리강습에도 중년남성들이 찾아온다”고 전했다. 샘표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 있는 유병현 씨는 “요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주말에는 나들이 대신 온 가족이 함께 장을 봐와서 요리한다. 요리를 놀이처럼 즐기면서 대화도 많이 나눈다”고 했다. 요리를 매개로 한 팀워크(조직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기업들도 있다. 산악등반 등 극기훈련 프로그램은 나이 많은 임원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힘들어 직책과 나이를 떠나 함께 어울리고 소통할 수 있는 요리 프로그램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4년째 강남구청의 요리교실을 맡아온 이우현 강사는 “남성 대상 요리교실은 주부 대상 요리강습과 다르다”고 말한다. 수강생 대부분이 요리 초보이자 살림에 문외한이다보니 어떤 재료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양념의 종류엔 뭐가 있고 각각의 쓰임새는 어떻게 다른지 등 기초부터 하나씩 꼼꼼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

“남성 수강생들은 이해가 안 되면 그냥 넘어가지 않아요. 시금치를 데칠 때 왜 소금을 넣어야 하는지, 생선 요리에 왜 술이 들어가는지 일일이 설명해줘야 해요.”

그의 수강생들은 전현직 기업체 CEO나 임원부터 법조인, 의사, 교사, 금융계 종사자 등 매우 다양하다. 6개월에서 1년 가량 꾸준하게 배우는 사람도 많고, 3년째 배우는 수강생도 몇 명 있다고 한다. 싱크대에서 조리도구를 꺼낼 때마다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구부리다보니 아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다는 한 수강생은 아내를 위해 수백 만 원을 들여 주방을 개조해줬다고 한다. 그는 “맛을 타박하거나 요리가 뭐가 어려우냐고 했던 남편들이 정말 반성을 많이 한다”며 웃었다.

지난해 ‘행복남요리교실’을 처음 개설한 쿠킹앤 한희원 대표는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했다. 요리를 통해 아내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하고 새로운 교우 관계도 쌓으라는 취지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이상엽 씨는 지난해 한 송년모임에서 동기 수강생 몇몇과 직접 뷔페 음식을 마련해 손님을 대접한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는 “주방에서 요리하면서 사춘기 아들과의 대화도 많아졌고, 아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훨씬 부드러워졌다”며 “아들이 곧잘 설거지를 도와줘 아내가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이제 그의 꿈은 은퇴 후 요리를 통해 사회봉사를 하는 것이다.

“요리=커뮤니케이션”

“요리교실 동기들과 함께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그들에게도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을 권리가 있으니까요.”

요즘 서점에선 남성을 위한 요리책도 눈에 꽤 많이 띈다. ‘장보는 남편 요리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부엌’ ‘아내가 샤워할 때 나는 요리한다’ 같은 제목을 달고 있다. 교보문고 요리책 코너 담당자는 “40, 50대 중년남성들이 부인과 함께 와서 요리책을 사가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 TV에 남성들이 요리하는 모습이 자주 나오니까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했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이제 남자들도 적응해야지요. 집안일은 부부가 서로 도와줘야 아내가 은퇴 남편을 짐스럽게 여기지 않고, 남편도 스스로 떳떳하지 않을까요. 요즘 가정에서 아버지의 순위가 애완견보다 밀린다고 하는데, 남자들이 직접 요리한다면 강아지보다는 순위가 올라가지 않을까요?” (이상엽 씨)

신동아 201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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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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