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호

“김 父子 동상 타격 발언은 도대체 누가 한 겁니까”

개성공단에 ‘초코파이’공급하는 이임동 (주)개성 대표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3-04-18 15: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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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父子 동상 타격 발언은 도대체 누가 한 겁니까”
    사극을 놓치지 않고 보는 51세 남자. 바다 냄새 맡으며 청춘을 보냈다. 해군 함장으로 영해를 지켰다. 2006년 중령으로 전역한 후 개성에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이임동 ㈜개성 대표. 4월 14일 드라마 ‘대왕의 꿈’에선 김춘추(최수종 분)가 백제와의 전쟁을 선언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의 뇌리에 공연한 생각이 든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는 것은 아니겠지….’ 낙천적이라고 자부해왔는데, 요즘엔 불안할 때가 많다. ㈜개성은 개성공단 입주업체에 초코파이를 공급해 돈을 번다. 임가공으로 생필품도 제조해 한국시장에 들여온다. 4월 14일 자정이 가까운 시각, 그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갑갑하죠, 뭐…. 개성공단 남측 근로자 나가란 소리는 아직 안 했으니까…. 15, 16일이 태양절(김일성 생일·4월 15일) 연휴니까 지켜봐야죠.”

    ▼ 회사 사정은 어떻습니까.

    “임가공으로 생산하는 물품과 관련해 원부자재 2주치가 개성 공장에 들어가 있는데, 생산이 이뤄지지 않아 납기를 못 맞추게 됐어요. 발주처에 위약금을 물어줘야 할 판이에요. 게다가 자금 구하러 다니고 있어요. 상황이…. 북측이 공단 통행을 막기 전 개성에 들여놓은 초코파이 값을 제과회사에 지불해야 하는데, 이 와중에 입주업체들에 초코파이 값 내놓으라고 닦달할 수도 없고 아주 난처합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중 큰 곳은 월 100억 원을 손해 보게 생겼다면서 울먹이고 있어요.”



    “언론도 北 자존심 덜 건드려야”

    3월부터 남북 간 ‘기(氣) 싸움’이 벌어졌다. 북측의 협박이 나오고 남측이 받아치면 북측은 ‘더 센’ 표현을 찾아내 도발했다. 3월 30일 중앙개발지도총국 대변인 담화에서 북측은 처음으로 개성공단 폐쇄 협박 카드를 꺼냈다.

    “괴뢰 역적들이 개성공업지구가 간신히 유지되는 것에 대해 나발질을 하며 우리의 존엄을 조금이라도 훼손하려든다면 공업지구를 가차 없이 폐쇄해버리게 될 것이다.”

    북측이 ‘존엄’이라는 단어를 쓴 것에 그는 주목했다. 북측에서 ‘존엄’은 자존심이라는 낱말과는 차원이 다르다. 평양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최고존엄’에 대한 비난이 군사적으로 공격을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보복해야 할 행위라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북측은 4월 3일 ‘말로 하는 보복’이 아닌 행동에 나섰다. 개성공단 통행제한 조치를 시행한 것. 이 대표 역시 3월 29일 이후 개성에 들어가지 못했다.

    “3월 29일 개성에 들어가 초코파이 배송을 했어요. 임가공 제품을 맡긴 공장에서 생산 관리도 했고요. 세금 관련된 업무도 봤고요.”

    ▼ 앞으로 개성 출입을 못할지도….

    “남북관계의 미래를 생각할 때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되죠.”

    ▼ 3월 29일 개성공단 분위기는 어땠나요.

    “이해가 안 가는 게, 명절을 앞둔 축제 분위기라고나 할까. 북한에서 4월은 노는 달이에요. 주민에게 이런저런 물품도 제공되고요. 4월 4일이 청명절, 15·16일이 태양절 연휴, 25일은 북한군 창건일이고요.”

    이 대표는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해버리게 될 것”이라고 발표한 지 사흘 뒤이자 개성공단 통행제한 조치를 발표하기 하루 전인 4월 2일 “휴일이 많은 이달에 북측이 예전에 했던 방식으로 통행제한 조치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2009년 3월 3차례에 걸쳐 통행을 차단한 전례가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언론이 개성공단이 북한의 돈줄이라니 달러박스라서 절대로 못 닫는다니 하고 보도하니 북측이 더 발끈하는 겁니다.”

    ‘최고존엄’이 뭐기에…

    ▼ 아니, 대한민국 언론이 북한 눈치 보느라 객관적인 보도도 못합니까? 그건 아니죠.

    “그렇긴 해도…, 상황이 이럴 때는.”

    남북 간 ‘기 싸움’은 북측 기관의 대남 협박 및 도발 발언을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후 그에 대응한 정부, 국군의 발언을 한국 언론이 전하면 북측이 더 센 말을 찾아 맞받아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일성, 김정일 동상을 정밀 타격하겠다는 발언은 도대체 어느 군인이 한 겁니까. 그게 실익이 있는 구상입니까. 전략, 전술을 아는 군인이 할 소린가요. 군이 바로 서 있다면 연평도에 폭탄이 떨어졌을 때 타격원점을 제대로 공격했어야죠. 일이 터졌을 때는 한심하게 대응하더니 뒤늦게 말로만…. 군사적으로 고려할 만한 가치가 없는 발언을 해 북측을 더 자극했어요.”

    한 일간지는 3월 25일자 2면에 ‘군(軍), 제2 천안함 땐 김일성 부자 동상 정밀 타격’ 제하의 기사를 보도했다. 국방부 공식브리핑에서 나온 발언은 아니다. 북한은 3월 26일 최고사령부 명의로 ‘1호 전투 근무 태세’와 관련한 성명을 내놓았다. 같은 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우리의 최고존엄을 감히 건드린 자들을 반드시 징벌할 것’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놓는다. 논평은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거칠었다.

    “괴뢰군부 깡패들이 평양을 비롯한 공화국의 대도시에 정중히 모신 우리의 최고존엄의 상징인 수령영생, 수령칭송의 기념비들을 미사일로 정밀타격할 계획을 짜놓았다고 한다. 악독한 괴뢰군부 깡패들은 이러한 파괴계획이 북 주민에게 엄청난 심리적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줴치면서 위성사진 등을 통해 정밀분석한 데 따라 이른바 ‘제거 우선순위 목록’까지 작성해놓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괴뢰정부 관계자도 괴뢰군이 ‘동상을 공대지, 지대지 미사일로 타격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안다’고 실토하였다. 이 얼마나 천벌을 받을 악귀들의 천인공노할 흉계인가. 지금 우리 군대와 인민은 우리의 최고존엄을 감히 해치려는 괴뢰 역적패당의 극악무도한 범죄책동에 분노의 치를 떨며 복수의 피를 끓이고 있다. 역대 괴뢰역적들치고 동족대결에 환장하지 않은 자가 없었지만 현 괴뢰군부 깡패들처럼 무지막지한 대결광신자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개성공단은 통일 실험장”

    4월 4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군이 북한의 국지도발 시 김일성 부자 동상을 미사일로 정밀 타격할 계획이 있느냐’는 진성준 민주통합당 의원의 질의에 “우리 군은 동상을 타격할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그것에 언급한 바가 없다. 언론 보도에 대해 자중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언론을 통한 남북 간 말싸움이 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어요. 북한이 먼저 거친 말을 하더라도 점잖게 대응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 대표는 2006년 9월 중령으로 전역하면서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0년 6월 4년간 일한 협회를 그만두고 ㈜개성을 창업했다. 북한에 맞서 바다를 지키던 군인이 북한에서 돈 버는 기업가로 변신한 것.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첫 번째 핵실험이 있었던 날 첫 출근했어요. 바다를 지킬 때는 교전이나 전쟁을 하면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지에만 관심이 있었죠. 남북경협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기업인도 국가를 지킬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개성공단은 남측의 자본과 북측의 노동력이 손잡고 제품을 생산하는 경제적 공간만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 정치·사회·문화적으로 기여하는 게 많습니다. 남북이 통일을 실험하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통일은 개성공단 같은 남북 간 상생 모델이 한반도 전역으로 확장되는 형태로 이뤄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성공단이 통일의 실험장인 겁니다.”

    그가 북한에 공급하는 초코파이도 상징적 의미가 적지 않다. 초코파이는 간식뿐 아니라 생산성 증대 혹은 초과 근무 대가로 지급된다. 자극 요인을 고민하던 기업주에게 단비처럼 등장한 것. 북측 근로자에게 제공되는 초코파이는 매달 600만 개쯤 된다. 생산자(롯데제과, 오리온)→한국 중간상(㈜개성 등)→개성공단 입주기업→북한 근로자→북한 중간상→장마당→주민 순서로 유통된다.

    “현금 수송차 진입도 막아”

    “지금껏 지켜본 것 중 상황이 가장 심각해요. 2008년 12월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법인장들 모아놓고 개성공단 폐쇄를 언급했을 때도 지금처럼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어요.”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2008년 12월 국방위원회 정책국장 직함으로 개성공단을 찾아 “남측이 개성공업지구(개성공단)에서 철수할까 봐 우리가 고민하는 줄 아는데 우리는 그런 고민이 전혀 없다. 우리는 개성공업지구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철 총국장이 내려왔을 때 현장에 있었거든요. 김 총국장이 폐쇄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나중에 공장을 돌면서 ‘우리 인민들 잘 부탁한다’ ‘혹독하게 일 시키지 말아달라’고 했어요. 없애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들었죠. 연평도, 천안함 때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돌아갔고요.”

    4월 8일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겸 통일건설부장이 개성공단을 다녀간 후 성명을 냈다. 성명의 요지는 △북한 근로자 철수 △가동 중단 △폐쇄 검토 이렇게 셋이었다. 이튿날부터 개성공단에서는 조업이 중단됐다. 북한은 북측 근로자의 월급날(10일)을 앞두고 현금 수송차의 공단 진입도 막았다고 한다.

    “개성공단은 남북관계의 별천지였습니다. 불황 무풍지대였고요. 냉랭한 남북관계에 아랑곳하지 않고 매출액, 생산액이 상승했습니다. 게다가 남북관계의 최후의 보루였죠. 그런 개성공단이 위기에 처한 겁니다.”

    개성공단은 북한에 현금 원조를 해주는 측면이 큰 금강산 관광과는 성격이 다르다. 경제학 다수설은 독재국가에 대한 현금 원조 효용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개발 지원과 달리 정치체제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고, 경제발전이나 제도 변화를 이끌기보다 엘리트 집단의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것.

    개성공단은 남북이 윈-윈 하는 곳이다. 개성공단 생산액은 2005년 1491만 달러를 기록한 후 2년 후인 2007년 1억8478만 달러로 10배 넘게 성장했고, 2012년에는 4억695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한국 중소기업엔 단비 같은 곳.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개성공단 임금은 중국 칭다오공단의 3분의 1, 베트남 떤투언공단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 시화공단과 비교하면 1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토지 가격도 중국의 4분의 1, 베트남의 6분의 1. 육로로 원부자재를 옮길 수 있는 터라 외국 공단에 비해 물류비용도 저렴하다.

    개성공단은 한국인의 일상에도 깊이 스며들어와 있다. ‘Made in Korea’ 양말의 70%가 개성에서 나온다. 갤럭시 양복, 빈폴 셔츠, K2 등산화, 프로스펙스 W 워킹화 등의 라벨에 찍힌 ‘Made in Korea’는 한국이 아니라 개성에서 생산된 것을 가리킨다. 현대차, 기아차의 자동차 부품, 삼성 스마트폰의 부품도 개성에서 생산된다.

    “부부싸움도 한 이불에서 해야”

    개성공단을 폐쇄하면 남북 모두 손실이 크다. 북한은 5만4000명의 근로자를 배치할 곳이 마땅찮다.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이 확보하는 현금은 노동자 임금을 포함해 지난해 기준으로 9000만 달러가량이다. 북측이 개성공단을 폐쇄한다면 향후 외자 유치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의 피해도 만만찮다. 공단이 폐쇄되면 공단 내 123개 기업뿐 아니라 수많은 협력업체가 피해를 본다.

    개성공단은 또 남북 간 화해 협력의 장이며 시장경제의 가치를 전파하는 기능도 한다. 생산성과가 좋은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초코파이가 시장경제의 우수성을 알리는 첨병 노릇을 하고 있음이 잘 알려져 있다.

    북한은 최근 중국으로 근로자를 파견하고 있다. 한국이 1960~1970년대 독일에 광부, 간호사를 파견한 것과 비슷한 형태다. 중국 기업이 지급하는 임금은 1인당 월평균 250달러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는 1인당 월평균 144달러의 임금을 받는다. 일각에선 “북측이 개성공단 재가동협상에 나서면서 토지 임대료와 임금을 올려달라고 할 소지가 크다”고 예측한다.

    벚꽃은 흩날리는데, 가슴은 싸늘하다. 이 대표가 4월 15일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개성공단은 남북이라는 부부가 낳은 자식이에요. 양쪽 다 자식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부부싸움도 한 이불에서 해야죠. 개성공단과 관련해선 잘난 쪽이 못난 쪽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존심도 될 수 있으면 건드리지 말고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2006년과 비교하면 북한 여공 얼굴색이 크게 바뀌었어요. 성격도 활달해졌고요. 시쳇말로 ‘때깔’이 좋아진 겁니다. 북한 주민이 그래도 믿는 게 같은 동포인 한국 사람이에요. 개성공단을 통일의 실험장으로 더욱 크게 키워야 합니다. 남북의 당초 합의는 1단계 3.3㎢에 이어 2단계 5.0㎢, 3단계 11.6㎢로 공단을 확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입주기업 2000개, 근로자 수 35만 명, 160억 달러 매출이 원래 계획이었어요. 합의, 약속은 지키자고 하는 겁니다. 남북 모두 그간의 약속과 합의를 지켜야 해요. 개성공단을 당초 계획대로 키우고 국제화에도 나서는 게 남북 모두에 득이 되는데, 왜들 이렇게 싸우는지…. 정치 놀음, 권력 놀음이란 게 원래 그렇겠지만요.”

    이 대표의 언급에는 기업가로서의 이해(利害)가 녹아들어가 있을 것이나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의 꿈은 북한에서 평양, 남포, 함흥, 원산, 신의주, 나진을 누비면서 비즈니스 컨설팅을 하는 것이다. 그날은 언제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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