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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동서양의 접점 |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

우리는 이미지의 마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비잔틴 제국의 성상파괴운동

  • 박배형|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미학 baipark2000@hanmail.net

우리는 이미지의 마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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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지의 마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만물의 지배자 예수 그리스도’, 12세기경, 모자이크, 팜마 카리스토스 수도원, 이스탄불(위) ‘성모’, 9세기, 모자이크, 하기아 소피아 박물관, 이스탄불(아래)

예수 그리스도의 상을 예로 들어보자. 가톨릭 교회의 종교미술에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을 당하는 인간적인 모습의 살과 피를 지닌 예수가 자주 등장한다. 반면 비잔틴 제국의 성상에서는 보다 신적이어서, 죽음을 극복한 승리자 예수의 모습이 강조된다. 인간적인 감정에 휩싸인 육화(肉化)한 모습보다는 평온하고 위엄 있는 형태로 그려진다. 이러한 표현 차이는 서방 교회(가톨릭)와 비잔틴 제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방 정교회의 성격 차이와 관계가 있다.

신약에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마태오 22:21)라는 말씀이 있듯이 지상의 것과 하늘의 것, 국가와 교회, 왕권과 교권은 구분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정치권력과 교회권력은 명백히 분리될 수 없었다. 이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에 다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현실정치와 종교, 교권과 왕권이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모든 권력은 신에게서 오는 것이지만,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신의 대리인으로서 지상의 권력을 행사하고 교회를 수호하는 역할을 했다.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세속 권력과 교회권력 모두를 대표한다고 할 정도로 강력했다. 이러한 사실은 종교적 방향을 결정지은 두 차례의 니케아 공의회가 교회 지도자가 아니라 황제 내지는 황후에 의해 소집된(325년과 787년)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비잔틴 제국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천상의 나라와 지상의 제국을 모두 다스리는 권능을 지닌 존재인데, 지상의 지배는 황제의 지배를 통해 가시화한다. 이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성상은 그러한 권능에 걸맞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비잔틴 미술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황제, 성모 마리아는 여제(女帝)와 같이 묘사된 것이다.

神을 형상화한 不敬



비잔틴 미술에서 성상을 통해 드러나는 신성한 이미지의 구현은 단순히 예술적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문제와 결합된다. 신성한 이미지의 예술적 표현은 이를 넘어서 현실 정치적인 특수한 문제와도 결부된다. 이렇듯 다양한 요소가 연결돼 발생한 사건이 바로 성상파괴운동인데, 이 사건을 고찰하기 전에 성상이 갖는 복합적인 의미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신적 이미지를 구현한 성상은 기독교 전통 안에서는 본질적으로 곤란한 측면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곤란함에서 성상파괴운동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구약성서는 신의 이미지와 신적 형상의 사용 금지를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신의 형상을 표현한 모든 것은 신의 계율을 어긴 것이자 신을 모독한 행위가 된다. 신은 보이지 않는 존재인데 어떻게 형상을 만들 수 있겠는가.

구약에서 야훼는 말씀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지 어떤 이미지로 자신을 내보이는 법이 없다. 무한하고 영원하며 “하늘과 땅 어디를 가나 내가 없는 곳은 없다”(예레미야 23: 24)는 말처럼 무소부재(無所不在)한 것이 신이다. 신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제약되거나 고정되지 않는다. 그러한 신을 적절히 표현할 수 없다. 신의 이미지를 형상으로 만드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신적 형상은 초기 기독교에서부터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됐다. 기독교가 전파되기 이전의 다신교 신앙에서도 수호신을 모시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것이 기독교의 성상을 숭배하는 것으로 이행했다. 교회 쪽에서는 교리의 중요한 내용을 전달하고 신자들의 신앙심을 고취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새긴 성상뿐 아니라 각종 이미지의 사용을 필수화할 수밖에 없었다.

미술적 힘이냐, 우상이냐

비잔틴 사람들은 성상이 기적을 낳는 마술적 힘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성상은 전쟁과 군사적 목적으로도 활용됐다. 626년 비잔틴 제국의 수도 비잔티움이 아바르족, 슬라브족, 페르시아 연합군들에 의해 포위됐을 때 비잔틴 사람들은 성모 성상을 수도의 성벽 문 위에 세웠다. 비잔틴 사람들은 이민족과 맞서 싸우면서 성상의 힘으로 도시가 지켜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도시는 지켜졌다.

이렇듯 성상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공적 공간인 교회와 정치 모두에 깊이 침투되어 있었으니 성상에 대한 믿음은 우상 숭배의 혐의를 받을 여지가 있었다. 구약은 온갖 종류의 신적 형상에 대한 금지를 명하고 있었기에 성상의 제작과 숭배는 갈등을 낳을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갈등이 커다란 사건으로 비화한 것이 성상파괴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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