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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돌직구’였대요 지금은 여우짓도 해요”

쉰둘 최영미의 새로 시작한 사랑, 그리고 詩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예전엔 ‘돌직구’였대요 지금은 여우짓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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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서른셋에 펴낸, 50만 부 넘게 팔린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로 그는 여배우 못지않은 셀레브리티가 됐다. 시집을 관통한 담론은 운동권을 들끓게 했다. “위선 그만 떨고 공부나 하라”는 식의 냉소로 읽혀서다. 그래선지, 진보 성향이 강한 문단에서 그는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는 1980년 서울대 인문대에 입학했다. ‘역사, 철학, 그리고 인간’이라는 카피를 내걸고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학습하던 고전연구회에서 활동했다. 2학년 때는 시위에 참여했다 체포돼 무기정학을 맞았다. 졸업 후엔 급진적 운동조직 외곽에서 ‘자본론’ 번역에 참여했다. 1987년 대통령선거 때는 백기완 민중후보 캠프에서 뛰었다. 고전연구회는 나중에 주사파의 산실이 됐다. 그의 2년 후배로 자생적 주사파의 원조 격인 ‘강철’ 김영환 씨가 고전연구회 출신이다. 이상규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도 이 서클에서 사상을 다졌다.

이 대목에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다시 읽어보자.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때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1981년 4월의 반란

그는 한 에세이에서 이렇게 썼다.

“1981년 4월의 어느 날, 내 속에서 반란이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나의 저녁 귀가가 늦어졌고, 막걸리를 마신 뒤끝과 소주를 마신 뒤끝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술맛을 안 뒤에 겁이 없어져 남학생들과 어울려 수련회도 가고, 치마보다 바지를 즐겨 입고,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는 나쁜 딸이 되었고, 시위대에 섞여 한강을 건넜다.”

▼ 32년 전 이날이 삶에서 의미가 있어 보이던데요.

“막걸리 맛을 처음 안 날이에요. 늦은 나이였어요. 1학년 때는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어 도시락 싸들고 다녔거든요. ‘겅건너’라는 술집이 있었어요. 그 시절 학교 다닌 이들은 다 아는 곳이에요. 그즈음 첫사랑을 했고, 첫키스를 했고, 첫사랑 상대가 그날 ‘강건너’에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네요. 담배도 그때 배웠고요. 술, 담배 한 거 엄청나게 후회하고 있어요. 우리 또래 여자들이 술 담배 탓에 다들 골밀도가 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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