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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어두운 세계 알게 됐다 진짜 내 편 있으면 결혼하고파”

‘친낸종랭 종낸랭파’ 낸시랭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어두운 세계 알게 됐다 진짜 내 편 있으면 결혼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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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세계 알게 됐다 진짜 내 편 있으면 결혼하고파”

2010년 영국 런던에서 펼친 거지여왕(Beggar the Queen) 퍼포먼스(왼쪽)와 2012년 4·11총선 투표 독려 프로젝트 ‘앙’ 퍼포먼스.

팬도 많고 안티도 많지만 분명한 건 낸시랭이 ‘주목받는’ 인물이란 점이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란제리를 입은 채 엉터리로 바이올린을 켜는 ‘초대받지 못한 꿈과 갈등’ 퍼포먼스 후 귀국했을 때, 그를 찾아온 건 ‘월간미술’ 같은 미술잡지가 아니라 ‘보그’ ‘바자’ 같은 패션지였다. 이후 그는 ‘터부 요기니’ 시리즈, 프랑스 파리에서의 개인전, 루이비통 쌈지 대구백화점 등과의 컬래보레이션, 각종 TV 출연 등으로 아티스트로서의 경력과 대중적 인지도를 함께 쌓아갔다.

압구정 키드의 컴백

그는 거의 매년 개인전을 열어왔는데, 지난해 말부터는 유화로 그린 초상화 작품을 연이어 선보였다. 공통점은 초상화 속 인물들의 어깨에 낸시랭의 분신 코코샤넬이 올라가 있다는 점. 지난해 12월 ‘내정간섭’ 전에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박정희 김대중 등 국내 정치인이, 지난 3월 서울 강남 청담동에서 연 ‘낸시랭과 강남 친구들’ 전에는 오바마, 스티브 잡스, 워런 버핏, 마이클 잭슨 등이 등장했다. 낸시랭은 “고전적인 평면 그림인 유화를 팝아트에 적용시킨 건 우리나라에선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 근데 왜 전시 제목이 ‘강남 친구들’인가요.

“좋은 질문이에요. 그게 쉽게 끝날 얘기가 아니거든요.”



그는 자신의 개인사를 풀어놓았다. 미국에서 사업을 벌인 어머니의 재력 덕분에 어릴 때부터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부유하게 자랐다. 외동딸인 그는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을 돌며 시간을 보냈다. 필리핀 국제학교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미국 예일대 진학을 준비하면서 미국 국적을 택하고 이름도 박혜령에서 낸시랭(Nancy Lang)으로 바꿨다. 하지만 암 투병 중인 어머니가 귀국할 것을 원해 홍익대 미대 서양학과로 진로를 틀었다. 그리고 홍익대 대학원에 다닐 무렵, 가세가 기울어 고향이나 다름없는 ‘강남’을 떠났다.

“강남에는 강남만의 스트럭처(structure)가 있어요. 강남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 그 맥락을 알죠. 집이 망해 돈이 없어 더는 강남 사람 행세를 할 수 없게 됐어요. 근데 친구들은 다 강남 사람들이고…. 또 아트는 해야 하는데 뒷받침이 없었죠. 아트에도 여러 세계가 있어요. 팔리는 작품에 맞춰 기계처럼 그리기만 하며 편하게 사는 맥락이 그중 하나예요. 하지만 낸시랭이 생각하는 ‘리얼 아트’란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실험하고 창조하는 부닥침이에요. 전 리얼 아트를 위해 강남을 떠났어요. 여러 측면에서 좌충우돌이 많았죠. 기업과의 컬래보레이션, 해외에서의 퍼포먼스 등등…. 돈을 벌어 집안의 빚도 갚고 엄마 병원비도 책임졌지만, 미술계에선 쓰레기다, 썩었다는 말도 들었어요.

(애교 섞인 목소리로) 그리고 이번에 낸시랭이 글로벌 거물들과 함께 강남에 컴백한 거예요! 자연인으로서 그들을 초대했어요. 강남에서 낸시랭과 신나고 재미있게 놀아보자고.”

“어두운 세계 알게 됐다 진짜 내 편 있으면 결혼하고파”
▼ 한국 사람은 이건희 삼성 회장뿐이었죠.

“사람들은 이건희 회장을 두 가지로 보더라고요. 좋거나 나쁘거나. 근데 제가 볼 때는 옆집 사는 잘생기고 인상 좋은 아저씨 혹은 할아버지? ‘쁘띠거니’(petit (귀여운)+건희)라는 애칭도 붙였어요. 그의 초상화는 이건희 회장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을 풍자한 거예요.”

▼ 왜 각 인물마다 어깨에 코코샤넬을 얹었나요.

“(콧소리로) 다 낸시랭화시켰어요~. 친근하고 귀엽게 보이자는 맥락에서요. 우리 귀여운 코코가 함께하면 그렇게 보이잖아요.”

“나는 생계형 아티스트”

앞서 말했듯 그는 전화를 직접 받는다. 매니저도 없고 전속 갤러리도 없다. 운전도 ‘셀프’다. 이렇게 독립군으로 활동하는 게 힘들지 않으냐고 했더니 “나는 생계형 아티스트”라고 한다.

“아티스트는 집안이든 어디든 받쳐줘야 돈에 지치지 않아요. 그런 게 없으면 아르바이트하면서 작품을 해나가는 데 힘들어서 많이들 포기하죠. 대학 동기나 선후배 중에는 먼저 돈을 번 뒤 나중에 아트 하겠다며 대기업에 취직하는 이들이 있어요. 그들 중에 다시 아트하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어요. 전 학업을 마치면서 아트에 올인하기로 했어요. 근데 집안이 망해서 혼자 힘으로 해야 했어요. 팝아트가 좋아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아트를 하고 싶어서 팝아트를 하게 된 셈이에요.”

▼ 전속 갤러리를 뒀다면 좀 편했을 텐데요.

“그럴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에요. 근데 갤러리에선 그리라는 것만 그리는, 말 잘 듣는 아티스트를 원해요. 전 아티스트란, 선택받은 존재로서 세상에 무언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자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가만히 고여 있으면 안 돼요. 새로운 것, 진취적인 것을 해야 해요. 근데 이게 시장 구조에서는 마이너스가 돼요. 이렇게 자유로운 저를 케어(care)할 수 있는 캐파(capacity)의 갤러리를 아직 못 만난 것 같고…. 근데 또 애는 싫어도 작품이 잘 나가면 그것만 가지고 계약하고 그래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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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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