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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

합법 가장한 ‘돈의 해방구’ 빛의 속도로 추적 따돌려

지금 조세 피난처에선…

  • 김영미 │프리랜서 PD

합법 가장한 ‘돈의 해방구’ 빛의 속도로 추적 따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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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 가장한 ‘돈의 해방구’ 빛의 속도로 추적 따돌려

6월 3일 인터넷 매체 뉴스타파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 중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전재국 씨를 공개했다.

하지만 이 섬은 관광산업으로만 먹고사는 곳이 아니다. 거리를 오가는 인파 중엔 고급 양복을 차려입은 사람이 적지 않다. 이들 대다수가 은행원이다. 조지타운 시내에는 크고 작은 은행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관광과 더불어 이 섬의 또 다른 대규모 수익사업이 은행업이다.

개인이나 법인은 금융 중심지로 부상한 이곳에 페이퍼컴퍼니를 등록하면서 수수료를 낸다. 이 수수료가 케이먼 제도의 주요 수익원이다. 조지타운의 은행들은 고객의 비밀을 철저하게 보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케이먼 제도엔 시민보다 법인이 더 많다. 인구는 5만 6000여 명(2011년 기준)에 불과하지만 등록기업은 은행 230여 개, 보험사 730여 개, 뮤추얼펀드 1만여 개 등 9만2000여 개에 달한다. 케이먼 제도에 설립된 회사들의 대부분은 직원이 한 명도 없는 서류상의 회사다. 세금이 없는 이곳에 서류상으로만 회사를 차려놓고 실제 영업이나 투자를 한 것처럼 회계 처리를 해 세금을 회피하는 개인이나 법인이 적지 않다. 케이먼 제도에서는 이들 페이퍼컴퍼니를 IBC(International Business Company)라고 한다.

케이먼 제도의 한 은행에서 일하는 마이클(가명·45)은 이곳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공부했다. 비비안 같은 이들이 고객을 확보해 정보를 제공하면 마이클 같은 이들이 페이퍼컴퍼니를 등록해준다. 지구 반대편의 홍콩과 케이먼 제도의 금융인이 손을 잡고 일하는 것이다. 마이클은 “홍콩 등에서 고객 정보를 보내주면 우리가 여기서 법인 설립을 위한 행정 조치를 대행해준다”고 말했다.

“2주면 법인 등록 마무리”



홍콩의 비비안은 발로 뛰는 영업 방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세계 각국의 은행과 회계사, 금융 관련 변호사와의 네트워크를 구축해놓았다. 조세피난처에 신규 법인을 설립하는 데는 2주 정도가 소요된다고 했다. 등록에 필요한 서류도 간단하다. 회사 설립 신청서, 등기이사 및 주주의 여권 사본, 주소지를 증명할 수 있는 영문서류만 구비하면 된다.

고객이 등록에 소요되는 2주일을 기다릴 수 없을 만큼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 기존의 등록법인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이때는 정상적으로 등록할 때보다 수수료를 많이 받는다. 비비안은 “이혼 직전 아내에게 위자료를 주기 싫어 자금을 옮기는 경우도 있을 테고, 부도 직전 회사 자금을 급하게 옮기는 사례도 있겠지만 고객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케이먼 제도의 마이클 같은 이들은 잠재 고객을 위해 유령회사를 미리 설립해 둔다. 마이클의 컴퓨터 안에는 옷장에 옷을 쌓아놓듯 법인들이 차곡차곡 저장돼 있다. 마이클은 “회사 이름을 짓는 것도 힘들다. 하루에 열댓 개의 이름으로 법인등록을 하는 날도 있다. 동료 한 명은 소설책을 임의로 펼쳐 가장 먼저 나오는 단어로 이름을 짓는다”고 전했다.

미국의 많은 기업이 케이먼 제도에 법인을 세웠다. 합법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하는 예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2002년 대형 회계 부정이 드러나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에너지 기업 엔론의 경우 케이먼 제도에 692개의 자회사를 설립했고, 이 자회사들을 이용해 1996~2000년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대표적 사례다.

한국 기업도 케이먼 제도에 경쟁적으로 법인을 설립했다. 4월 한국은행이 정성호 민주통합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케이먼 제도, 버뮤다, 버진아일랜드, 말레이시아 라부안 등 조세피난처 4곳에 대한 국내 법인(금융제외)의 투자 신고액이 지난해 말 현재 16억2290만 달러(약 1조8000억 원)에 달한다. 2011년 말 신고 잔액보다 56.8%, 금액으로는 5억9000만 달러(약 6600억 원) 증가한 규모다.

섬나라로 국적 바꾸기도

또한 삼성, 현대차, 롯데, 한화, 효성 등 30대 그룹 계열사들이 케이먼 제도에 설립한 역외 금융회사 14곳에 송금된 돈이 2010년엔 4억1710만 달러였지만 지난해에는 12억2940만 달러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도 2004년 케이먼 제도에 법인을 설립했다. NHN 측은 인수한 중국 게임업체의 미국 나스닥 시장 상장을 위해 미국과 동일한 회계기준을 적용하는 케이먼 제도에 법인을 설립했다고 해명했다. NHN은 9년간 유지해온 케이먼 제도의 법인 청산작업을 최근 거의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비안은 케이먼 제도는 물론이고 사모아, 쿡 제도 등 여러 조세피난처에 비즈니스 파트너를 두고 있다. 케이먼 제도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특정 기업의 자산을 옮겨놓은 후 3년가량 지나면 그 회사의 자산을 다른 조세피난처에 새로 등록한 페이퍼컴퍼니로 조금씩 옮긴다. 특정 기업 혹은 개인과 한번 거래를 튼 후 조세피난처를 옮겨 다니면서 수수료를 계속 챙기는 것이다. 대기업이 세운 페이퍼컴퍼니는 비비안 같은 컨설턴트, 조세피난처의 변호사, 회계사가 함께 관리해야 한다. 비비안은 이렇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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