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호

“새벽 3시,공동묘지에서 흐느끼는 여자와 있어봤어요?”

택시기사 150명이 들려준 심야의 여성 취객

  • 박수정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고려대 학점교류학생)

    입력2013-06-20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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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3시,공동묘지에서 흐느끼는 여자와 있어봤어요?”
    “무슨~말인지 알겠는데요. 지금 고객님이 원하시는 바~지가 없어요.”

    20대 여성 승객이 택시 안에서 기사에게 던진 말이다. “제가 무슨 바지를 산다고 그랬어요? 얼른 요금 내고 집에 들어가시라고요.” 택시기사가 제발 엉뚱한 말 좀 그만하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손님이 다시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아저씨~, 제가 다 이해~하겠는데요. 지금 상품이 이것밖에 없어서 그래요.”

    기사는 언성을 높이며 했던 말을 또 했다. “제발 택시비 좀 주시고 들어가시라고요!”

    이어지는 이 손님의 대답은 ‘4차원’으로 향했다. “그러~니깐 택시비가 바지 아니에요? 지금 말씀하시는 게~?”



    지난 3월 어느 날 새벽 4시, 택시기사 박광범 씨는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 아파트 앞에서 만취한 이 여성 승객과 1시간 동안이나 동문서답을 했다. 의류매장 직원인 듯한 이 여성은 택시에 탄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직장에서 손님을 대하는 ‘상황극’에 열중하고 있었다. 기사 경력 12년인 박 씨도 도저히 감당이 안 되더라고 했다.

    심야 취객은 택시기사들의 경계대상 1호다. 그중에서도 여성 취객은 ‘대략난감’의 골칫덩이다. 필자는 5월 2일부터 2주간 서울 성북구 소재 D여객 등 택시회사 4곳에 들러 기사 150명(개인택시 기사 일부 포함)을 인터뷰해 여성 취객 경험담을 들었다. 그 결과 여성 취객으로 인한 소동이 늘어 일상적인 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흔들어 깨울 수도 없고…”

    박광범 씨로부터 다른 경험담도 들었다. 그에 따르면 술 취한 여성 손님이 택시에 타서 잠이 들면 일단 안심이다. 적어도 운행 중에는 별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하면서 난처한 상황이 발생한다. 한 여성 승객은 서울지하철 종각역에서 경기도 의정부 녹양동까지 가면서 1시간 20분 동안 잠을 잤다고 한다. 도착해서도 잠든 모습 그대로였다. 아무리 소리쳐도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

    “흔들어 깨울 수도 없어요. 여성의 몸에, 그것도 잠든 상태에서 손을 댔다간 무슨 누명을 뒤집어쓸지 모릅니다.”

    박 씨는 결국 경찰을 불렀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그를 더 황당하게 했다. “경찰은 취객을 깨우는 사람이 아니니 앞으로는 이런 신고 하지 말라”는 훈계를 들어야 했다. “이럴 땐 도대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죠?” 박 씨의 하소연이다.

    택시기사가 여성 승객의 몸에 손을 대면 어떻게 될까. 기사 백경흠 씨는 늦은 밤 서울 목동 오거리에서 여고생을 태워 경기도 군포로 향했다. 교복차림의 이 여학생은 조수석에 앉아 술 냄새를 풍겼다. 여학생은 집에 도착하자 “차비가 없으니 나중에 주겠다”며 문을 열고 내리려 했다.

    백 씨는 황당하고 다급해 여학생의 왼쪽 무릎을 치며 “그렇게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여학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조수석 앞에 붙은 백 씨의 전화번호를 적은 뒤 나중에 연락해서 택시비를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학생증과 연락처를 백 씨에게 줬다. 신분까지 확인했기에 백 씨는 학생을 보내줬다. 그러나 이후 연락이 없었다. 백 씨는 학교로 전화해 담임교사와 통화했고 이어 그 여학생과도 통화했다. “왜 요금을 주지 않느냐”는 질문에 여학생은 “아저씨, 저한테 성희롱하셨잖아요”라고 말했다. 내릴 때 엉겁결에 무릎을 쳤던 게 화근이었다. 백 씨는 “요금 못 받은 것보다 모함받은 게 더 억울하다”고 말했다.

    기사 경력 7년인 최필균 씨가 겪은 사건은 새벽 3시에 시작됐다.

    “여성 승객이 술을 마신 것 같기는 한데 만취 상태는 아니어서 태웠어요. 그게 실수였습니다. 손님이 다짜고짜 ‘아저씨, 공동묘지로 가주세요’라는 거예요.”

    “여름이 특히 문제죠”

    공동묘지에 도착하자 이 여성 승객은 요금도 안 내고 하차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어느 무덤 앞에 가서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최 씨는 손님이 위태로워 보여 걱정스러운 데다 어디론가 사라지면 낭패다 싶어서 손님 주변을 맴돌았다.

    “새벽에 공동묘지에서 흐느끼는 여성과 함께 있어본 적 없죠? 온몸에 한기가 들고 이가 딱딱 부딪치는 게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요.”

    최 씨가 지금 생각해도 무섭다는 듯 말하자 옆에 있던 동료 기사 박모 씨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여름이 특히 문제죠.”

    30년 경력의 박 씨는 최근 원피스를 차려입은 여성 취객을 태우고 서울지하철 강변역에서 경기도 구리시까지 갔다. 손님이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속옷이 다 보이는 상태여서 민망하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박 씨는 하는 수 없이 112에 신고해 여자 경찰관을 불러야 했다. 젊은 여성들은 여름에 짧은 치마나 바지를 즐겨 입기 때문에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심지어 뒷자리에 아무렇게나 벌러덩 눕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박 씨는 “짧은 하의를 착용할 땐 제발 과음을 안 하면 좋겠다”고 했다.

    기사 김진곤 씨는 박 씨의 경험담을 듣더니 “그 정도 노출은 약과”라고 말했다. 한 여성을 태웠는데 술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10분쯤 달렸을까, 갑자기 손님이 하나둘 옷을 벗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 씨는 다급하게 “여기 택시예요 손님! 옷 벗으시면 안돼요!”라고 외쳤다. 그러자 이 여성은 “여긴 우리집이에요”라고 했다. 결국 옷을 훌러덩 다 벗어버렸다고 한다. 김 씨는 차를 세우고 밖으로 도망쳤다.

    이른 아침 이태원에서 女高로

    “새벽 3시,공동묘지에서 흐느끼는 여자와 있어봤어요?”

    서울 시내 한 유흥가에서 일부 여성이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만취하지 않은 여성 승객이 택시 안에서 옷을 벗은 경우도 있다. 시간대도 야밤이 아니라 아침이었다. 최호준 씨는 이른 아침 서울 이태원에서 술 냄새를 풍기는 여성 손님을 태워 Y여고 쪽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아무 일이 없었기에 안심했는데 오산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 이 손님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옷을 꺼냈다. 깔끔한 교복이었다. 손님은 태연하게 뒷좌석에서 아래위 겉옷을 벗고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택시에서 내려 학교로 걸어갔다. 최 씨는 그때서야 이 손님이 밤새 이태원에서 술을 마시고 곧바로 등교하는 여고생이란 걸 알았다.

    여성 취객이 택시 안에서 구토하는 것은 너무 흔한 일이라고 한다. 기사 민병록 씨는 취객을 태우면 구토 증세를 보이는지 가장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택시 안에서 토하면 그야말로 끝장입니다.” 그래서 손님이 메스꺼워하거나 얼굴 색깔이 변한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잠시 차를 세울지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손님이 먼저 잠시 세워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일부 여성 손님은 자기 가방을 열고 토하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이 택시 안에 토하게 되면 미안하다며 세차비를 주기도 합니다. 그럴 땐 진짜 고맙죠.”

    택시회사 휴게실에서의 인터뷰는 필자가 굳이 질문하지 않아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기사들이 경쟁적으로 경험담을 주고받는 바람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만큼 심야 택시를 탄 여성 취객의 비정상적인 행동이 상상 이상으로 자주, 그리고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택시기사 10년 차인 황종회 씨는 “여성 취객과 겪은 이야기를 다 하려면 책 두 권은 거뜬히 나올 것”이라고 했다. 황 씨에 따르면 술 취한 여성 승객의 가장 흔한 반응은 막무가내로 우기는 것이다. 이런 일은 대개 목적지에 도착해 택시비를 받을 때 일어난다.

    택시기사 이종요 씨는 “술에 취한 여성 승객이 택시비를 안 냈는데도 냈다고 계속 우겨서 그냥 보낸 적이 여러 번 있다”고 말했다. 기사들에겐 시간이 돈인데 시비가 붙어서 지체하면 오히려 손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씨는 “술 취한 여성 손님과 택시비 문제로 말싸움을 해서 이겨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냥 보내드리는 게 상책”이라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과연 여성 취객들은 택시 안에서의 자기 행동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만취해 택시를 탄 경험이 있는 여성 중 상당수는 택시를 탄 기억과 내린 기억밖에 안 난다고 말했다. 필자가 만난 모 극장 여직원 박모(22) 씨는 “술을 마시면 자는 버릇이 있어서 버스보다 택시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손님 다 왔어요’라는 기사님의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씨도 술 때문에 실수한 경험을 갖고 있다.

    “저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데, 제가 택시에서 안 내리겠다며 막무가내로 버텼다고 해요. 마침 친구와 같이 타고 있어서 친구가 저를 억지로 끌어내렸대요. 그 바람에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가 땅바닥에 떨어져 깨졌어요.”

    이모(22) 씨는 홍익대에서 재즈 공연을 한 뒤 뒤풀이 자리에서 만취했다고 했다. 이 씨는 동료와 함께 택시를 탔다고 한다. 이 씨는 차가 한창 달리는 도중에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져서 기사에게 “야, 여기서 우회전해서 세워! 걸어가면 돼. 빨리 세워!”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중에 동승한 친구 말을 들어보니 제가 반말로 소리를 쳤다고 해요. 기억이 전혀 안 나요. 그 기사님이 친구에게 ‘술도 많이 취했고 새벽이라 위험한데 집 앞에까지 데려다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오히려 사과를 하셨대요.” 이 씨는 자신의 행동이 부끄럽다고 했다.

    A대학 휴학생 손모(23) 씨는 “술 마시고 택시를 타면 잘 깨지 않는다. 내가 봐도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세 이상 성인여성 중 음주자의 비율은 1989년 32.1%에서 꾸준히 증가해 2001년 이미 59.5%에 이르렀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여성 음주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술을 마셔도 적당량을 절제하면서 마시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여성 음주의 증가와 함께 여성의 과음도 늘어나는 경향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2012년 조사에 따르면 고위험 음주군 중 여성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여성이 술자리에서 소주 5잔 이상을 섭취하면 고위험 음주로 분류되는데, 조사대상 여성 중 주 1회 이상 고위험 음주를 하는 여성의 비율이 2011년 14.3%에서 2012년 18.1%로 늘었다. 같은 기간 고위험 음주를 하는 남성의 비율은 26.7%에서 26.2%로 오히려 소폭 줄어드는 추세였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추천하는 여성의 적정 음주량은 소주 2.5잔이다.

    여성 ‘과음 문화’에 경종

    남성은 여성보다 알코올 분해효소가 2배 정도 많기 때문에 술을 더 잘 마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여성이 남성보다 더 빨리 취하고 해독도 느리다. 결국 여성들이 모임이나 회식을 하고 술에 잔뜩 취해 택시를 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번 취재는 이런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택시기사들의 눈에 비친 심야 여성 취객의 모습은 여성의 ‘과음 문화’에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정신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은 여성 자신의 안전에 지극히 위험한 일일 뿐만 아니라 인격체로서의 자존감, 성숙한 시민으로서의 품격을 크게 훼손하는 일이 된다.

    최근 일부 택시 기사들이 심야에 여성 승객을 대상으로 몹쓸 짓을 해 공분을 샀다. 그러나 여성 취객을 대하는 기사들의 고충도 작지 않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기사들에게 “혹시 여성 취객에게 ‘이것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성국 씨가 답했다.

    “제발 조수석 등받이에 스타킹 신은 발 좀 올리지 마세요. 발 냄새 때문에 진짜 죽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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