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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힐링 healing 필링 feeling

“남의 담벼락에 분칠한 기 뭐 볼 거라꼬…”

21세기 해운대에서 20세기 감천동까지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남의 담벼락에 분칠한 기 뭐 볼 거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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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해운대 백사장과 바다를 배경으로 찍는 게 아니라 저 멀리 치솟은 마천루나 밤의 조명으로 더욱 압도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팔레드시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로 숙소에서 나온 관광객이 아니라 이 근처에서 살고 있을 법한 가벼운 트레이닝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달리기를 한다. 그중 절반은 외국 사람들이다. 지금 해운대는 팔레드시즈 같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인공 경관을 주축으로 한 국제도시가 되고 있다.

백사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밤바다는 여전하고 파도 소리도 여전하고 어느 시절에나 있을 법한 때 이른 청춘들의 환호작약도 여전했다. 젊은 남자 몇몇은 이제 막 개장한 해수욕장에 함부로 뛰어들어갔다가 오들오들 떨면서, 그러나 연신 그 나이에 맞는 과장된 웃음을 터뜨리며 나온다. 동행인 듯한 젊은 여자들이 꺄르르르르 팝콘 터지듯 웃어준다. 그리고 어디론가 무작정 달려간다. 그들은 꽃보다 아름답고 파도보다 강렬하다. 그러나 그들이 달려가고 있는 백사장은 과거의 해운대에 비해 비좁았다.

팔레드시즈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나서, 짐을 챙겨 1층으로 내려와 늦은 아침을 먹으면서 신문을 봤다. 탈주범 검거 소식이 눈에 들어왔다. 5월 20일, 전주지검 남원지청에서 수갑을 찬 채 달아났던 탈주범 이대우(46)가 6월 14일 오후 6시 25분경, 부산 해운대역 인근에서 경찰에 붙잡혔다는 보도였다. 6월 14일 오후 6시? 그렇다면 내가 어제 이곳 해운대 리무진 정류장에 내려 팔레드시즈를 향해 터벅터벅 걸을 무렵에 탈주범 이대우는 그리 멀지 않은 해운대 버스터미널에서 체포되고 있었던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대여섯 명의 경찰을 압도했다는 괴력의 소유자 이대우는 어떤 저항 의사도 없이 검거됐다고 한다. 아마도 지쳤을 것이다. 무뢰한에 탈주범인 그를 두둔할 생각은 없으나 어쨌든 그 역시 한 달 가까이 도망 다니면서 지쳤을 것이다. 검거 직후 해운대경찰서로 호송된 이대우는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해운대는 사람이 많아 숨기도 좋고, 머리가 복잡해 생각을 좀 하기 위해 왔다”고 진술했다. 지쳤던 것이다.

감천문화마을? 감천동!



나는 부산의 새것 말고 오래된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기차를 타기로 했다. 택시나 리무진버스나 지하철 대신 걸어서 해운대 기차역으로 갔다. 팔각정 모양의 기차 역사는 가까운 시일 내에 철거될 예정이다. 연말이면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사업으로 해운대 우동과 기장을 잇는 전철 길이 열린다. 지금의 해운대역은 신시가지 옆 국군부산병원 앞으로 옮겨간다.

역사에 들어서니 풍경은 금세 20세기 중엽으로 되돌아갔고, 표를 끊어서 승차장으로 나가보니 한반도 철길의 우측 남방한계선을 1세기 가까이 지탱해온 선로가 보였다. 부산진구와 경북 포항을 잇는 철도선으로 총 길이 147.8km이며 1918년 10월 31일 개통됐다. 1935년 12월 16일에는 경주까지 철길이 나아갔다.

토요일 점심 무렵, 동해안을 끼고 내려온 기차는 해운대역에 수많은 젊은이를 내려놓고 종착역이 되는 부전역으로 들어갔다. 나는 차창에 바짝 붙어 21세기의 마천루 사이로 지나가는 20세기 초엽의 선로를 상상했다. 이런 여정은 이 나라 40대 남성들에게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저 산업화 시절 대도시로 몰려가는 행렬이 떠오르는가. 우리는 그렇게 서울로, 대처로 거처를 옮겼다.

부전역에서 버스를 타고 자갈치시장에 갔다가 내친김에 영화의 거리며 국제시장이며 보수동 헌책방까지 들렀다가 이윽고 탈진해 택시를 잡았다. 이곳에서 택시를 잡으면서 김해공항이나 해운대나 부산대 같은 곳을 주문하지 않고 감천동이라고 말하는 것은 미안한 일이다. 버스로도 10분이면 올라가는 언덕 위 동네인데 한동안 손님을 기다렸던 택시라면 못내 아쉬울 것이다.

“에이, 그거 마 신경 쓰지 마이소. 그기 그런다고 몇 푼 더 벌고, 또 아이라꼬 못 벌고 그리 생각하면 택시 우예 함니꺼. 기본요금으로 왔다리 갔다리 하능 것도 괘아느께네 신경 쓰지 마이소.”

내가 미안하다는 표시를 하자 기사는 그렇게 답했다.

“감천동, 좋지예. 실제로 그 동네는 참으로 몬사는 동네고 한 많은 동넨데, 요즘이사 그것도 구경이 되고 시에서 지원도 하고 손님처럼 타지에서 많이들 구경 오고 해서, 모를 일 아닙니꺼, 사람 사는 거.”

내가 가는 감천동의 감천(甘川)은 옛 이름 감내(甘內)에서 비롯했다. 감(甘)은 ‘검’에서 유래했고 신(神)을 뜻한다고도 한다. 천(川)은 물론 물 흐르는 ‘내’를 한자로 적은 것이다. 예부터 물이 좋아 감천이라고 했다고 한다. 오래전에는 물이 좋아서 그렇게 불렸을지 몰라도 20세기의 이 동네는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의 마지막 생존 터였다. 1918년 조철제가 증산사상에 기초해 세운 태극도의 신도 4000여 명이 이 일대의 고개 주변에 모여 집단 거주지를 만들었고 6·25전쟁 때 몰려든 피난민이 그에 또 더해져서 부산의 대표적인 달동네가 됐다. 지금은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리고 있다.

산토리니는 에게 해 남쪽 그리스령 키클라데스 제도 중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는 섬이다. 그 섬의 절벽 위에 마을이 있다. 인근 미코노스 섬과 함께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하얀 벽과 푸른 지붕의 집들이 ‘관광엽서 사진’의 형상으로 모여 있다. 스포츠 음료를 비롯해 수많은 광고의 배경 마을이 되면서 어느덧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관광지로도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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