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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어른이 되는 법

  • 이나미│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

어른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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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배우는 것을 즐겨 하니 베풀고 가르치는 기술도 좋아질 수 있다.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원하는 만큼 과하지도, 인색하지도 않게 자기 경험을 나눠주는 어른도 존경받는다. 배우는 것에 비해 가르치는 것은 몇 배 더 힘들다. 받는 것 역시 어렵고 때론 치사할 수 있지만, 잘 주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렵고 때론 정말 인내가 필요할 수 있다. 많이 안다고 꼭 좋은 스승일 수 없고, 성품이 좋다고 꼭 훌륭한 선배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장수 시대가 도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훌륭한 노인과 스승이 많지 않으니 아무래도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몸이 늙고 병들어가도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하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이들은 그러나 분명 있었다. 14세기 네덜란드의 성녀 리드비나(Lydwina)는 15세에 병석에 누운 후 35년을 그저 누워 지내야 했다. 그럼에도 그녀를 찾아오는 온 마을 사람을 유쾌하게 만들었고, 깊은 신앙심을 갖게 도왔으며, 기도와 대화로 다른 이들의 상처를 치료해줬기에 성인품에 올라갔다. 몇 해 전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도 중환자실에서 깨어난 후 “나, 부활했어”라고 농담을 하셨다 한다.

그러나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병들고 죽는 운명 앞에 두려움이 없을 수 없다. 우리 세포에는 위험과 죽음 앞에 공포를 느껴 피하라는 유전 정보가 새겨져 있어 고통은 피하고 싶은 게 정상이다. 다만 우리 영혼이 그런 공포 유발 유전 정보를 인지하고 가능한 한 잘 다루어 살아 있는 그날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뿐이다.

훌륭한 죽음을 일컫는 여러 나라의 말을 살펴보면 참고가 될 성싶다. 일본에서는 깨끗하게 생을 마친다는 뜻의 ‘이사기요쿠(潔く)’라는 말을 쓰는데 깔끔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일본인답다. 영미권에선 ‘death with dignity/mercy-killing’이라며 존엄과 운명의 자비를 강조하고, 독일은 죽어서(sterbe) 놓여난다(hilfe)란 뜻의 ‘sterbehilfe’라고 표현한다. 피하고 싶은 죽음이 사실은 삶의 의무나 고통에서 놓여나는 자비로운 순간이니 그럴듯하다. 흔히 ‘안락사’로 번역하는 영어의 ‘euthanasia’도 ‘잘 어! 좋아!’라는 뜻의 라틴어 eu와 죽음을 의미하는 thanasia가 결합된 것이다.

어른이 되는 법
이나미



1961년 인천 출생

서울대 의대 졸업, 동 대학원 석사·박사(정신의학), 미국 뉴욕 신학대학원 석사(종교심리학), 뉴욕 융연구소 분석심리학 디플롬, 뉴욕 신학대학원 교수

現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 서울대 의대·성균관대 의대 외래교수, 한국융연구원 교육 및 지도분석가

저서 : ‘사랑의 독은 왜 달콤할까’ ‘우리가 사랑한 남자’ ‘때론 나도 미치고 싶다’ 등


하지만 현실에서는 노화와 죽음이 그처럼 당당하고 평화롭기 쉽겠는가. 융 심리학파의 거장 폰 프란츠 박사가 말년에 파킨슨씨 병에 걸려 고생하면서도, 노인이 되어 똥오줌도 싸보고 의사에게 매달려보는 경험도 소중하다고 말해 위로가 된다. 병 때문에 무력한 자신을 대면해봐야, 똑똑한 머리는 미처 몰랐던 자신의 그림자와 제대로 조우할 수 있다. 질병과 노화와 죽음 같은 인생의 어두운 면을 오히려 가장 큰 스승의 가르침으로 삼을 때 온전한 개성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삶을 이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가 붙들고 놓지 말아야 할 것은 권력, 돈, 관계, 젊음, 건강 같은 것들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신비에 대한 겸손하고도 겸허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신동아 201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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