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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취재

후쿠시마엔 ‘후쿠시마 괴담’이 없다

  •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후쿠시마엔 ‘후쿠시마 괴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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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경찰차가 다가오자 근무자들은 대화를 끊고 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안으로 들어간 경찰차에서 경찰관 한 명이 내렸다. ‘통제선까지 와서 방사선량률 측정을 하는 취재를 방해하면 어쩌는가….’

경례를 하며 다가오는 그에게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했더니 기자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한국어를 읽을 수 있느냐”고 농담을 하며 동아일보 신분증을 내주니 이리저리 훑어봤다. 그러고는 수첩을 꺼내 한자로 매체 이름과 성명을 써달라고 한 후 차로 되돌아갔다. 그의 가슴에 ‘시즈오카(靜岡)경찰’이라는 명찰이 붙어 있었다. 시즈오카 현은 도쿄 서쪽에 있는, 후쿠시마에서 상당히 먼 곳이다.

겁 없는 빈집털이범

후쿠시마엔 ‘후쿠시마 괴담’이 없다

안전지역 가운데 방사선량률이 높은 곳의 표지토양을 걷어내 통에 담는 제염작업.

2011년 3월 사고가 일어나자 일본은 발전소 반경 20km 이내 주민을 피난소로 강제 소개(疏開)했다. 그리고 안정되자 그 폭을 10km로 좁혔다가 조금씩 더 좁혀가고 있다. 방사성 물질은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데, 후쿠시마 현에는 편서풍이 불어 방사선량률 수치는 정서(正西) 방향으로 갈수록 높게 나온다. 따라서 정서 방향으로 길쭉하게 남기는 형태로 10km 지역을 좁혀나가고있었다. 가와마타초는 한 달 전인 8월 8일 통제가 해제됐다.

일본은 주민을 완전 소개하는 ‘귀환 곤란 지역’, 성묘나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기 위해 잠시 방문은 할 수 있는 ‘거주 제한구역’으로 통제구역을 나눠 관리한다. 그곳은 가재도구도 오염됐기에 주민들은 몸만 옮겨갔다. 통제가 풀린 지역에서 일부 주민은 귀환했으나 일부는 모든 것이 황폐해지고 불안해져 고향에서의 삶을 포기했다.



통제선 안팎으로는 빈집과 묵은 농토가 즐비했다. 통제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잘 지은 전원형 카페가 있었는데 주인이 안 돌아온 탓인지 마당에 웃자란 잡초가 무성했다. 한 집은 낡은 트랙터로 마당을 막아놓았는데, 2년 이상 방치된 탓인지 트랙터가 주저앉아 있었다.

이렇다보니 빈집털이범들이 기승을 부렸다. 하루쯤 높은 방사선을 쐬어도 별문제가 없다는 것을 체득한 좀도둑들은 통제선을 뚫고 들어가 발전소와 가까운 곳에 있는 집도 턴다고 한다.

경찰은 물론 소방국과 자치단체가 방범순찰에 총력을 기울였다. 후쿠시마 현 경찰로는 손이 모자라 전국의 경찰이 교대로 지원하게 했다. 기자를 검문한 시즈오카 경찰관이 그런 경우다. 외지 번호판을 단 차가 통제선에 있는 것을 보고 신분을 확인하러 온 것이다.

일본인들은 어떤 상태에서 피난했을까 궁금해 빈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가이드가 “개인 주택에 무단으로 들어갔다가 CCTV에 찍히면 문제가 된다”며 말렸다. 방금 경찰관을 만나놓고도 그들의 방범활동을 간과했던 것이다.

피난소는 ‘슬픔의 장소’라고 한다. 일본의 농촌도 우리처럼 대개 노인들만 사는 곳이 됐다. 지병이 있는 그들이 낯선 이들과 공동생활을 하게 되니 불편한 점이 많았던 모양이다. 어차피 가족은 오지 않을 것이고, 병치레하는 몸을 남에게 보이고 사는 것도 싫어 여러 노인이 자살했다. 이 때문에 ‘아주 위험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게 낫지 않으냐’는 주장이 일었지만, 일본은 답답한 ‘매뉴얼 사회’답게 원칙을 바꾸지 않고 있다.

잠시 후 도로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 지프가 도착하더니 도쿄전력 작업복을 입은 이들이 내려 방사선을 측정했다. 그들의 계기에 찍힌 수치는 2858이었다. 그런 식으로 도쿄전력과 지자체 등은 지점을 정해놓고 정해진 시간마다 방사선량률을 측정하고 있다. 역시 일본은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답답하지만 매우 정확한 사회다.

후쿠시마 시로 돌아오는 길에 통제선 출입증을 붙인 소형버스, 트럭 여러 대와 마주쳤다. 후쿠시마 현장에 들어가는 인부와 자재를 실은 차량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곳의 농업 경기는 무너졌지만 건설 경기는 붐을 맞은 듯했다. 후쿠시마 방호공사 때문에 전국에서 기술자와 인부, 자재가 몰려든 탓이다. 점심을 먹으러 들른 라면집도 건설 관계자들로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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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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