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길이 꺾이는 곳에서 껴안고 있는 연인도 있었다. 그들을 위해 걸음을 멈추었다. 인기척을 죽이며 사방의 나무를 보고 또 보았다. 하늘은 저 위에서 푸르렀다. 연인이 애틋한 포옹을 마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도 다시 걸었다. 사려니 숲은, 그렇게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세속의 먼지로부터 가볍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순식간에 확인시켜주는, 그런 신성한 숲이었다.
80%보다 힘들 20%
초가을 저녁 어둑해질 무렵, 친구가 어렵사리 지어 올린 집을 찾았다. 지난해에, 이 연재의 시작을 위해 제주도를 찾았을 때, 친구는 나를 데리고 표선면 삼달리의 황량한 숲과 헐벗은 대지를 보여주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거친 돌과 메마른 흙 위에 무엇이 가능하겠는가, 그렇게 속으로 걱정했다. 그랬는데 그 돌을 치우고 흙을 고르면서 두 계절이 지난 지금 친구는 집을 거의 다 지었다고 연락해온 것이다.
“이제 한 80%. 마당 고르고 다지고, 또 뭐 있나. 큰 틀만 80%야. 나머지 20%가 어쩌면 이제까지 한 일보다 더 많을지도 몰라.”
집을 한번 짓다보면 한 10년은 훌쩍 늙어버린다는 말도 있거니와, 큼직한 형태를 다 지었다 해도 자잘한 것을 다 마무리하는 데는 갑절의 수고가 들게 마련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안팎으로 다 지었음에도 겨울 한번 나면서 집이 견고한지 살펴야 하고 여름 한번 나면서 습기와 비와 바람까지 견뎌내는지 또 살펴야 한다. 특히 제주도이니만큼 방습이며 방수는 사시사철의 일이 된다. 그러니 이제 80% 되었지만, 남은 20%가 그 80% 보다 더 힘들지도 모른다는 친구의 말은, 집 짓는 인부들한테 얻어들은 얘기인지는 몰라도, 사실에 기초한 진실일 것이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친구의 아내가 집 안팎의 디테일을 확정하고 마감했다. 전문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틀을 세웠지만 그것을 어루만지고 깎고 닦은 것은, 미대를 다니면서 다양한 공작 기계로 수많은 대리석을 깎고 강철을 자르고 나무를 후벼 팠던 친구 아내의 일이었다.
“물고기나무…예쁘잖아, 이름이”

서울을 떠나 제주에 정착한 책 디자이너 권순범(47·오른쪽), 조소 작가 조경아(41) 씨 부부.
2층은 이곳을 찾은 가족이나 연인이나 친구들이 묵는 방이다. 방들은, 여느 게스트하우스의 지나치게 ‘검소’해 자칫 허름하게 보이는 행색과 달리, 소박하면서 단정하게 정비되었다. 크게 구획한 8인용 2층 침대가 펼쳐져 있는데 그 각각이 이동식 문과 칸막이 작은 책상과 또 그만큼 작은 스탠드로 나뉘어 있어서 전체로서 하나이면서도 각자가 다락방에 들어가서 책도 읽고 잠도 잘 수 있는 방식이다. 본동의 양옆으로는, 이미 완비된 친구 아내의 조소 작업실동과 곧 완비될 카페동이 있다.
“물고기나무. 일단 이름을 그렇게 지었어. 예쁘잖아, 이름이. 아무튼 하루이틀 머물다 갈 곳도 아니고, 이제 여기가 내 집이야. 물고기나무. 서울 일들은, 뭐 다 잊기는 힘들어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지. 한참 일하다가, 아 내가 결국 제주도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때 잠깐 서울에서 겪었던 일들, 사람들, 그런 거 생각하는데, 그것도 잠시뿐이지. 일이 많아. 일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가. 그렇게 벌써 1년이 훌쩍 지났어. 여기가 내 집이고 여기가 내가 사는 곳이야.”
서울에서 하던 일들이 뜻대로 안 된 것도 있지만, 원래 친구는 서울을 벗어나려고 했다. 섬세하기보다는 투박하게 생겼으면서도 그 누구보다 섬세하게 출판 디자인을 했던 친구다. 깔끔하기보다는 거칠게 생긴 손으로 그 누구보다 깔끔하게 책을 만들고 포스터를 만들고 도록을 만들어냈던 친구다. 그렇게 일을 솜씨 있게 잘하던 때에도 친구는 언젠가 서울을 떠나서 제주도에 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하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미련 없이 서울을 떠난 것이다.
우리는 표선의 밤바다로 가서, 그곳의 빨간 등대 근처에 서서, 한참 동안 밤바다를 보면서 담배를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