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출판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조금만 도와주면 우리 학문이 크게 성장할 수 있을 텐데 오히려 논문 무차별 무료화를 단행해 학술 한류의 싹을 죽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내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 업체의 한 관계자는 “무료화하는 논문들 중에 SCI급 논문들이 포함된다면 정부는 이들 논문에 대해 권리가 있는 글로벌 데이터베이스 업체에 거액을 보상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술계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어떤 논문을 무상 공개하려면 공개자가 그 논문을 서비스하는 데이터베이스 업체에 오픈액세스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데이터베이스 업체인 스프링어는 논문 한 편당 오픈액세스 비용으로 3000달러를 받고 엘스비어는 500~5000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한국 논문 무료화를 위해 해외에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전자출판협회 관계자는 “‘정부와 한국연구재단이 논문 오픈액세스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실제 배경엔 사업 영역을 확대하려는 부처 이기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이야기가 학술계에서 돌고 있다”고 전했다.
논문 무료화는 논문을 쓰는 국내 학자들의 저작권 보호 논란과도 연결돼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학술지 등재 여부를 결정하고 지원하는 등 학술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또한 등재 학술지 논문 게재 건수는 교수 임용 및 평가 등에 중요 기준이 되고 있어 국내 학자들은 등재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이와 관련해 한국연구재단은 학술지가 논문을 무상 서비스할 경우 등재 학술지 인정 항목에서 가점을 주고 있다. 이에 따라 학술지들도 논문 저자들에게 무상 게재를 유도함으로써 논문 게재 전까진 ‘을’의 처지인 논문 저자들이 어쩔 수 없이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점을 비판하는 측은 “정부가 논문 저자들에게 ‘슈퍼 갑’ 행세를 하고 있다”, “선진국처럼 논문 저자들의 저작권도 정당하게 보장해줘야 학문이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교육부 “무료 공개는 세계 추세”
이길연 변호사는 “한국연구재단의 학술지 평가기준상 유상으로 논문 서비스를 해온 학회는 무상으로 해온 학회에 비해 불리한 점수를 받게 되어 있는데, 유상인지 무상인지에 따라 배점을 달리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처사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손정달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사무국장은 “한국연구재단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논문 오픈액세스에 대한 배점을 책정해 학술지 지원 유무를 결정하려 한다”면서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논문 저작권자의 의사를 확인하지도 않고 무리하게 오픈액세스를 추진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덧붙였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은 ‘논문을 무료로 열람케 하면 학자들이 적은 비용으로 선행 논문을 참고할 수 있어 논문을 더 많이 써낼 것’이라는 반대 논리를 편다. 한국전자출판협회는 최근 교육부에 “국내 논문은 해외에 무료로 공개하고 해외 논문은 고가로 도입하는 건 국부 유출이 아니냐”는 질의서를 보냈다. 교육부는 답변 공문에서 “논문 생산자와 이용자 간 공유라는 오픈액세스는 전 세계적으로 추진되는 운동이므로 한국만 국부를 유출시킨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이어지는 교육부의 답변 내용이다.
“아시아-태평양 국가 연구지원기관들은 오픈액세스를 촉진시키고자 실현가능한 방법들을 논의함. 2013년도 세계연구기관협의회의 메인 주제로 ‘오픈액세스’가 채택돼 13개 액션플랜이 논의됨.”
이에 대해 한국전자출판협회 관계자는 “논의만 한 것을 두고 ‘세계적인 추세’라고 하니 억지다. 정부가 너무 앞서가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세금 낭비하면서 학문 퇴보시키는 모순은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논문의 유·무상 제공 여부에 따라 학술지를 차별화해 점수를 부여하는 점에 대해선 “학술지의 접근성을 변별하는 항목이므로 타당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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