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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힐링 healing 필링 feeling

짙게 밴 향기 취해 서가에서 길을 잃다

책, 그리고 기억을 찾아서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짙게 밴 향기 취해 서가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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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의 ‘데칸쇼’

짙게 밴 향기 취해 서가에서 길을 잃다

헌책방에는 책과 먼지와 세월이 뒤엉켜 있다.

내 어린 시절의 마지막 헌책방을 얘기할 차례다. 삼양시장 가까이 있던 그 헌책방에는 오가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전파상과 다방과 철물점과 헌책방이 공존, 공생하고 있었다. 겨울이면 그곳에는 너무 일찍 집에 가기에 머쓱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술을 좋아했던 주인아저씨는, 내가 가면, 가게를 내게 잠시 맡기고 술을 마시러 나갔다가 왔다. 손님이라도 오면 가까운 다방에 전화를 걸어 커피를 시켰다. 고교 1학년인 내 몫까지 말이다. 레지 아가씨는 헌책방에서 한 20분쯤 쉬었다가 갔다. 그 아가씨는 짧은 치마를 입었고 스타킹은 언제나 뜯어져 있었다. 나는 그 시절의 한 추억을 어느 지면에 다음과 같이 쓴 적 있다. 다시 그것을 다른 문장으로 회생하기가 어려워, 내 글이지만, 잠시 옮겨 적어본다.

1984년의 겨울이었을 것이다. 난로 위의 주전자가 츠르르르 끓던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그날도 나는 헌책방에 있었고, 대학원생쯤 되어 보이는 군용 점퍼 차림이 있었고, 어느 노인이 또 한 분 있었다. 세 사람은 소주 한 병을 놓고 습기 찬 유리창 너머의 태양다방과 동원장 여관 쪽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대학원생은 ‘중세사’를 전공한다고 했다. 법학을 공부하다가 중세사를 공부한다고 했던가, 아무튼 그런 얘긴데, 두 학문의 사이가 너무 멀어서 내 기억에 착오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무렵 헌책방에는 그런 ‘데칸쇼’(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의 첫 자를 딴 말)가 참으로 많았다. 그리고 노인이 있었다. ‘나까마’ 노인이었다.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버리는 책을 모아다 헌책방에 파는 중간수집상을 ‘나까마’라고 불렀다.



내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낡은 서가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이 책 저 책 뒤적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주인아저씨가 ‘나까마 할아버지’에게 ‘저놈이 저거, 맨날 공부는 안 하고 여기 오는데, 할아버지가 책도 많이 아시고 견문이 넓으니까 좋은 책 하나 권해주쇼. 내가 선물이나 좀 하게’라고 말했다.

소주 몇 잔에 취해 잠이라도 든 것처럼 무심히 눈을 감고 있던 ‘나까마 할아버지’는 검은 뿔테 안경을 이마로 치켜 올리면서 나를 가만히 보시더니, 서가 쪽으로 몸을 돌려 책을 한 권 꺼냈다.

“이 책을 한번 읽어봐…. 그거 읽으면…. 인생을 알게 되지.”

짙게 밴 향기 취해 서가에서 길을 잃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공씨책방’ 앞에서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다.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나까마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책을 받아 들었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예술의 비인간화’와 미구엘 데 우나무노가 쓴 ‘생의 비극적 의미’가 함께 실린 책이었다.



내가 아직 인생을 제대로 모르고 삶의 비밀을 한 줌도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은, 아마도 그 책을 정독해내지 못해서일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그 책은 내 서가에 언제나 꽂혀 있다. 옥탑방에서 반지하를 거쳐 방 한 칸짜리 전세에서 겨우겨우 32평으로 이사를 해오는 지난 30년 동안 그 책은 언제나 내 서가에 있다.

‘복합문화공간’

두 달 전이다. 군산에 일이 있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갔다가 다시 그것을 타고 올라오던 길이었다. 내려갈 때는 오전이라 화창했는데, 오후 특강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고 거슬러 올라오니 날씨는 잔뜩 찌푸려졌고 서해대교를 넘을 무렵에는 어둑해져버렸다. 이대로 좀 더 달리면 악명 높은 화성-발안 정체 지역이고 그것을 간신히 통과하면 다시 외곽순환도로나 서부간선도로 모두 극심한 퇴근길 정체가 펼쳐질 게 틀림없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화성휴게소에 들러 억지로 시간을 보내려 했는데, 순간 오래전에 읽은 신문 기사가 생각이 났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헌책방을 운영해온 주인이 과감한 결단을 내려 화성 쪽으로 가게를 옮겼다는 기사였다. 헌책방을 자주 찾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이름, 즉 헌책방 ‘고구마’와 그 주인 이범순 씨 기사였다. 나는 재빨리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봤다. 화성휴게소에서 곧장 달리다가 고속도로를 빠져나와서 다시 아래쪽으로 10분쯤 역행하면 찾을 수 있는 위치였다. 팔탄면 월문리 223번지. 나는 지체 없이 그렇게 했고 곧 발안에 새로 둥지를 튼 헌책방 ‘고구마’에 도착했다.

서울에서는 ‘헌책방 고구마’였는데 이곳으로 와서는 이름이 살짝 바뀌었다. ‘복합문화공간 고구마’. 내가 서울 금호동 쪽의 가게를 다닐 적 40대 후반이던 이범순 씨는 어느덧 58세가 됐는데, 그 해맑은 웃음과 어떤 주제에도 막힘이 없는 달변은 여전했다. 헌책방을 찾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현시욕이 없지 않기에 이범순 씨는 그런 고객들의 자존심을 최대한 배려하면서도 틈틈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정확하고 적절하게 표현하곤 했다. 하수를 만나면 하수처럼 치고 고수를 만나면 고수 대접을 제대로 하는 능숙한 당구장 주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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