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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동정민 기자의 ‘여기는 청와대’

연설문에 방문국 속담 직접 넣고 의전·발언 순서도 숙지

박 대통령 해외 순방 뒷이야기

  • 동정민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itto@donga.com

연설문에 방문국 속담 직접 넣고 의전·발언 순서도 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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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에 방문국 속담 직접 넣고 의전·발언 순서도 숙지

5월 8일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는 박근혜 대통령.

그러나 준비한 의제를 다 다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G20 도중 진행된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양자회담 때는 독일 기업의 개성공단 국제화 참여를 요청할 예정이었다. 전날 이탈리아 총리에게 제안한 것처럼 유럽 기업이 개성공단에 참여하면 국제화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와 시리아 사태에 대한 논의가 길어지면서 개성공단 국제화 이슈는 언급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올해 정상회담 때 빠지지 않고 다룬 이슈들이 있다. ‘3대 외교 비전’이 대표적이다. 박 대통령은 모든 회담 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에 대해 일일이 설명했다. 전 세계 주요 국가들로부터 국제사회가 한 목소리로 북핵 불용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한국이 주도적으로 대북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해달라는 양해를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10월 아세안 정상회의 공동 성명에는 이 두 비전에 대해 참가국 정상이 지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자회담 성명에 특정 국가의 외교정책을 담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서유럽 순방부터는 유라시아 공동체 및 개발 구상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박 대통령이 설명하는 외교 비전에 포함됐다.

박 대통령의 메모지에는 해당 국가에 진출한 현지 기업인과 동포들의 애로 사항 중 회담에서 풀어야 할 것들이 적혀 있다. 기업들의 각종 건의 사항을 청와대에서 취합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면 시급하고 필요한 것을 메모에 적어간다고 한다. 이른바 ‘손톱 밑 가시’ 해결을 위해서다. 미국과의 정상회담 때 비자쿼터 확보, 베트남 정상회담 때 한국 진출 기업 규제 완화, 프랑스 정상회담 때 비자 발급 기간 단축 등이 그 예다.

박 대통령은 한국전 참전국을 방문할 때는 예외 없이 참전에 감사함을 표시하며 한국전 참전비를 찾았고, 참전국이 아닐 경우에는 그 나라의 존경받는 지도자의 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되도록 해당 국가의 언어로 연설하는 것을 포함해 상대국의 마음을 얻는 윈윈 외교를 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

해외 순방을 가면 물밑에서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이들이 대통령 경호원들이다. 양국 경호원들은 자존심을 걸고 자국 정상을 더 잘 경호하기 위해 몸싸움도 불사한다. 초청국의 의전과 경호에 최대한 맞춰주는 편이지만, 때로는 대통령을 경호하기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회담장에 수행원을 더 들여보내기 위해 고성이 오가기도 한다.



미숙한 참모들

영국 순방 때는 공항 경찰들이 전용기를 타고 온 수행원과 기자들에 대해 전례 없이 엄격하게 수색하는 통에 마찰을 빚었다. 검색 시간이 길어지면서 대통령이 먼저 와서 기다리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순방 때는 대통령 경호원들이 선진적인 한국 경호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한국에 파견돼 한동안 함께 생활했던 인도네시아 대통령 경호원들과 반갑게 만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첫 방미 성과에 찬물을 끼얹은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논란처럼 참모들의 미숙한 행동으로 낭패를 본 경우도 있었다. 외교 라인은 대통령의 순방 성과를 국민에게 알리기보다 상대국과의 의전을 이유로 회담 내용을 숨기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 홍보 라인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

서유럽 순방 마지막 날 유럽연합(EU) 정상과의 공동기자회견 때는 일본 기자가 의도적으로 한일 문제를 이슈화하는 질문을 하도록 방치하는 미숙함도 드러냈다. 한-EU 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일본 문제에 대해 해명해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대통령 순방을 동행하면서 한국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크게 올라간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현지 대사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한류 문화가 확산되고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그동안 돈만 잘 버는 신흥 국가쯤으로 인식되던 한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것.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박 대통령이 밝힌 3대 외교 기조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지속적으로 알려왔지만, 9월 이산가족 상봉 무산 이후 남북관계는 다시 후퇴하고 있고 북한의 핵무기 능력은 오히려 고도화하고 있다. 우리의 외교 역량을 한반도를 벗어나 동북아와 유라시아로 넓혀보겠다는 동북아 평화협력구상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중견국인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성과물을 내기에는 만만치 않다는 게 내부 고민이다. 박 대통령이 순방 때마다 외쳤던 ‘세일즈 외교’와 ‘창조 경제’도 각종 IT, 과학기술, 원전, 문화 콘텐츠 등 다방면에서 관련국들과 구체적인 성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다음 순방에 던져진 숙제들

한국의 높아진 위상은 장점과 단점을 함께 지녔다. 성장 잠재력이 큰 동남아 지역에선 그동안 기득권을 갖고 있던 일본, 거대 자본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중국에 비해 한국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우호적이다. 강대국처럼 부담스럽지 않고 편한 데다 급속도로 발전한 경험이 있어 롤모델로 삼기에 적당하기 때문이다. 한류 문화에 대한 동경도 크다. 그러나 아직까지 현지 인맥이나 경제 규모 면에서 일본, 중국의 틈새를 찾기가 버거운 것도 사실이다.

선진국에서는 한국의 위상이 아직 IT와 가전 기술이 뛰어난, 돈 잘 버는 국가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외교 역량을 높이고 정치와 문화적 영향력을 키워세계 무대에서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신동아 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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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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