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호

“개성공단 재가동 北 의도에 말렸다”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 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입력2013-11-21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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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공단 재가동 北 의도에 말렸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외교·안보 당국자 가운데 원칙과 소신이 뚜렷한 인사로 꼽힌다. 2010년부터 이명박 대통령 퇴임 때까지 외교안보수석으로 일한 그는 ‘신동아’인터뷰에서 “북한이 진정으로 변화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한 대화를 위한 대화는 무의미하다”며 ‘일관된 원칙’을 고수했다. “불편한 이웃과 폭탄주를 마셔가며 관계 개선을 꾀한다고 나쁜 관계가 하루아침에 좋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술자리는 멱살잡이나 주먹다짐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지난 2월 이 대통령 퇴임과 함께 공직에서 물러난 그는 “요즘 완전한 개인 주권과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했다. 11월 11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반도미래포럼 사무실에서 천 전 수석을 만났다. 그의 방에선 북쪽 창으로 외교부 청사와 청와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언제까지 ‘안보 위탁’ 할 건가

    ▼ 박근혜 정부는 2015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권 환수를 다시 연기하자고 미국 측에 제안했다.

    “나는 전작권 환수 재연기를 지지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국방예산 증가율이 노무현 대통령 때보다도 낮았다는 사실은 아픈 대목이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전작권 환수 시기를 3년 연기한 이후 우리 안보에 대한 안이한 인식이 작용한 측면이 크다.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이 증대한 현실에서 우리 스스로 이를 무력화할 수 있는 킬체인(공격형 방위시스템)을 구축하고, 독자적으로 완벽한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전작권 환수를 다시 연기하면 ‘미국이 알아서 우리를 지켜주겠지’ 하는 의타심이 생겨 (킬체인과 미사일 방어망 구축에) 또 소홀해질 가능성이 높다.”



    ▼ 전작권 환수에 따른 안보 공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우리 안보를 언제까지나 미국에 위탁할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전작권 환수에 따른) 한미연합사 지휘체계를 대체할 효율적인 방안을 강구해놓았다. 우리 합참의장이 전작권을 행사할 때 생길 수 있는 지휘체계 문제는 그것대로 보완해나가고, 전작권을 가져와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우리 스스로 대비해야 한다. 전작권 환수 재연기가 과연 최선의 결정이었는지 의문이다.”

    천영우 전 수석은 “더욱이 미국과 방위비 분담 협상을 하고 있는 시점에 전작권 환수 재연기라는, 우리에게 불리한 카드를 꺼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 군 출신인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대북 안보정책을 주도하고 있어 군의 시각과 입김이 많이 반영된 게 아닐까.

    “군 출신이라고 해서 군의 입장을 반영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 전작권 환수 재연기 결정은….

    “오히려 군 출신답지 않은 결정 아닌가. 전작권 환수 재연기를 부끄럽게 생각할 텐데…. 과거 군에 몸담았던 일부 성우회원 중엔 ‘전작권 받아오면 나라 망한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다. 그런 성우회로부터 영향을 받기는 하겠지만, 국방장관 지낼 때 전작권 전환 입장을 취한 분들이 갑자기 과거 입장을 부정하는 판단을 했으리라곤 믿고 싶지 않다.”

    ▼ 그럼에도 재연기 결정이 난 이유는.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신빙성 있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 정권 초에 그렇게 급하게 결정할 문제였는지…, 더구나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는 결정을…. 충분하게 토론하고 검토하는 과정을 거쳤는지 아는 바 없다.”

    ▼ 전작권 환수 재연기와 미국의 MD(미사일 방어망) 편입을 연계해 해석하는 시각이 있다.

    “MD에 대한 황당한 오해가 많다. MD는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미국이 자국의 MD에 편입하라고 우리에게 요청할 가능성도 없고, 우리가 (미국 MD에) 들어갈 이유도 없다. 미국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 국가 핵심시설을 지킬 수 있는 방어망을 한국이 독자적으로 구축하라는 것이다.”

    ▼ 우리가 독자적으로 MD를 구축하더라도 결국 미국 MD망에 편입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한국이 KMD를 구축해도 미국 MD 정보망에 연동할 필요는 있다. 북한이 스커드나 노동 미사일을 발사하려면 액체연료를 주입해야 한다. 미국 정찰위성과 정보망은 (북한 미사일) 발사 30분 전에 이를 포착할 능력을 갖췄다. 북한이 핵무장을 한 이상 요격률을 높이려면 최첨단 미사일 방어망 구축이 필수다. 단순한 미사일이 아니라 핵을 탑재한 미사일은 단 하나라도 놓치면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된다.”

    “개성공단 재가동 北 의도에 말렸다”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과 관련해 천영우 당시 외교안보수석이 브리핑하고 있다.

    자위권은 ‘권리’ 아닌 ‘의무’

    ▼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승인한 것데 대해 우리 정부가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한다. 평화조약을 맺고 동맹관계에 있는 전 세계 모든 나라는 국제법상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받는다. 미국과 일본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체결한 이후에도 집단적 자위권은 존재했다. 다만 일본이 내무 법제국 해석을 바탕으로 50년 가까이 ‘미국이 공격받더라도 일본은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오다 이번에 태도를 바꾼 것이다. 자위권이란 용어는 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무다.”

    ▼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나.

    “우리에겐 이지스함은 있지만 MD시스템이 없다. 그런데 일본 이지스함에는 북한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미사일이 장착돼 있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면 일본이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긴다.”

    ▼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경우 유사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게 될 것 아닌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우리 국민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베 총리가 과거 지향적 맥락에서 군사 대국화를 지향하기 위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우리의 안보 이익 관점에서, 동북아의 전략적 안정 측면에서 본다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겁먹고 무조건 반대할 일은 아니다. 안보 정책은 가슴으로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안보 이익에 독인지, 약인지 머리로 판단해야 한다. 다만 일본이 충분한 사전 설명 없이 잘못된 정치적 맥락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추진해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 일본이 태도를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때문이다. 일본 본토가 직접 공격받지 않더라도 괌이나 오키나와의 미군기지가 공격받으면 일본 본토가 공격받는 것 못지않게 큰 위협이라고 본 것이다.”

    ▼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신호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가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로 인해 큰 피해를 당해서 생긴 트라우마가 깊어 걱정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또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불리한 상황은 중국이 급속도로 부상하고 일본이 상대적으로 쇠퇴해서 동북아의 전략적 안정이 무너지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한국과 동북아 안정에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부분 제재’ 불과한 對北 제재

    외교를 흔히 국가 전체 이익을 놓고 벌이는 카드 게임에 비유한다. 다양한 협상 카드를 잘 활용해 최종 목표인 국익을 지켜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전직 외교관들은 “국익을 놓고 다투는 외교 현장에서 지엽적 문제에 집착하다간 큰 이익을 놓치게 되고, 그 손해는 고스란히 국민 전체의 몫으로 돌아온다”고 말한다. 전작권 환수 재연기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천영우 전 수석의 얘기도 “무엇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 우다웨이 중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가 최근 북한을 다녀왔다.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6자회담 수석대표가 아무리 열심히 다녀도 안 다니는 것만 못할 수도 있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비핵화가 진전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이 필요한 것이지, ‘회담을 오래 안 했으니 한번 하자’는, 회담을 위한 회담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회담은 하면 할수록 신뢰성만 더 떨어진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는 것이다. 북한의 결심 없이는 6자회담을 열어봐야 (북한에) 핵개발할 시간만 벌어주고 제재 완화해달라고 요구할 자리를 펴주는 것밖에 안 된다. 지금은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했다고 믿을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

    ▼ 헌법에까지 핵 보유국임을 명시한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먼저 보일 수 있을까.

    “북한은 핵을 생존도구로 여긴다. 마치 핵 속에 구원이 있는 것처럼, 핵을 김일성교의 신줏단지처럼 여긴다. ‘핵만 가지고 있으면 끄떡없다, 우리를 업신여기거나 짓밟지 못한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 그런 미몽에서 깨어나도록 핵 보유 대가를 톡톡히 지불하게 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국제 제재는 핵 보유에 따른 보험료와 같다. 그 보험료가 너무 비싸서 버틸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북이 ‘핵 보험료 때문에 공화국이 망하게 됐다. 이 보험을 깨는 게 생존에 더 유리하겠다’는 계산과 판단을 해야 6자회담을 해도 효과가 있다. 북한이 핵 보유라는 전략적 계산 공식을 바꾸도록 제재를 강화해야 하는데, 지금의 제재 수준은 충분하지 않다.”

    ▼ 3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에서 강도 높은 대북 제재를 결의했다.

    “지금의 대북 제재는 부분 제재다. 유엔 안보리 결의를 모두 이행하기도 어렵지만, 다 이행하더라도 북한 대외 무역활동의 20% 수준을 제재하는 데 불과하다. 북한은 그 정도라면 보험료를 지불하더라도 핵을 보유하는 게 낫다고 계산할 것이다. 대북 제재를 대폭 강화해서 그런 계산 공식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 북한의 전략과 태도를 바꿀 만한 강력한 제재를 안 하는 건가, 못하는 건가.

    “지난 3월 유엔 안보리에서 제재를 결의할 때 미국이 낸 초안에는 강력한 제재 방안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중국이 반대해서 최종 결의안에서 빠졌다.”

    ▼ 초안에 담긴 강력한 제재 방안은 무엇이었나.

    “해운(海運) 제재다. 북한에는 급소와도 같다.”

    ▼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

    “북한에 한 번이라도 입항한 모든 선박은 180일 이내에 다른 나라 항구에 입항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렇게 하면 북한에 드나드는 배는 북한과만 거래하든지, 북한 내에서만 이동해야 한다. 또한 북한에 다녀오지 않은 배라도 북한 화물을 싣고 다니는 배는 공해상이든 영해상이든 전수 검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안도 담겨 있었다.

    북한 밖으로 나오는 화물을 전수 검색하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면 북한의 대외무역활동은 큰 타격을 입는다.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가 중요하다고 립서비스는 많이 하는데, 다른 나라들이 모두 하자는 제재를 앞장서 막고 있다.”

    ▼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5개국이 일정 기간을 정해 ‘북한이 비핵화 결심을 하지 않으면 추가 제재를 취한다’고 합의하든지,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북한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북한이 스스로 ‘비핵화를 하지 않으면 체제가 멸망하겠구나. 국제사회 제재 때문에 핵을 써보기도 전에 왕조가 문을 닫겠구나’ 하는 인식을 갖도록 해야 비핵화가 가능하다. 북한 붕괴를 각오하고라도 강도 높게 대북 제재를 가하면 북한이 핵을 내놓지, 정권을 내놓겠나.”

    ▼ 우리 나름대로 강력한 대북 제재 조치를 준비했다고 들었다.

    “유엔 안보리 결의와 별도로 우리 차원에서 대북 해운 제재 방안을 준비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가 늦어지면서 새 정부에 우리가 준비한 안을 넘겨줬다. 그런데 새 정부가 북한과 신뢰 회복을 하려고 그랬는지 흐지부지됐다. 우리가 강도 높은 대북 제재를 포기함으로써 남북대화와 6자회담 인센티브를 쥘 기회를 놓친 감이 있다.”

    개성공단 협상 조급했다

    “개성공단 재가동 北 의도에 말렸다”

    9월 2일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1차 회의를 마치고 남측 김기웅 통일부 남북협력지구 지원단장(왼쪽)과 북측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 부총국장이 회담장을 나오고 있다.

    ▼ 박근혜 정부 들어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새 정부의 대북 의지를 테스트해본 측면이 있다.”

    ▼ 우여곡절 끝에 재가동에 합의했는데….

    “우리가 강하게 나가서 북한을 굴복시켰다고 자화자찬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과를 보면 북한이 밑진 장사를 한 것 같지 않다.”

    ▼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몇 달치 월급 못 받은 수준?

    “월급은 못 받았지만 그동안 농번기에 농사짓지 않았나. 또 우리가 철수할 때 준 돈도 있고. 새 정부 대북정책의 원칙은 괜찮은데, 대화할 때 스윙이 너무 빠르다. 북한의 제안에 불과 몇 시간 만에 화답하지 않았나. 마음이 급하기 때문에 그렇게 대응한 거다.”

    ▼ 공단 폐쇄 재발방지 약속을 받지 않았나.

    “재발방지에 너무 큰 가치를 부여하는 바람에 정작 중요한 것을 바꿀 기회를 놓쳤다. 북한의 재발방지 약속은 아무 의미가 없다. 북한은 ‘(개성공단을) 다시 문 닫으면 남조선 기업들이 모두 짐 싸서 나갈지 아닌지’를 보고 폐쇄 여부를 판단한다. 재발방지 약속이 담긴 종이 한 장 써주고 그것이 마음에 걸려서 폐쇄를 안 하는 게 아니다. 개성공단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고개를 숙이고 매달릴 것 같으면 북은 언제든 폐쇄 조치를 할 수 있다.”

    천 전 수석은 “개성공단 재가동 협상 때 근로자 임금을 현금으로 주던 것을 현물 지급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했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개성공단 근로자 노임을 현금 대신 쌀 보관증을 주고 쌀로 받아가도록 바꿨으면 한꺼번에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북한의 기아(飢餓) 문제를 해결하는 인도적 측면도 있고, 현금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하는 부품 조달도 막을 수 있었다. ‘대북 제재하자고 하면서 너희는 왜 북한에 현금을 주느냐’는 국제사회의 비난도 피할 수 있었다. 북한이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라는 빌미를 제공했을 때 거래 수단을 현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별 가치도 없는 재발방지 약속에 매달리다 결국 북한 의도대로 됐다. 북한의 목표도 결국 개성공단 재가동 아니었겠나. 그런데 북한은 종이 한 장 써주고 목표를 달성했다. 오히려 북한이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며 자부하지 않았겠나.”

    ▼ 박 대통령이 미국 의회 연설에서 밝힌 DMZ세계평화공원 조성 구상은 어떤가.

    “안보정책 면에서 DMZ(비무장지대)에 세계평화공원을 만드는 것이 한반도 평화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DMZ뿐만 아니라 남북한 전체를 세계평화공원으로 만든다고 한반도에 평화가 올까. ‘평화’라고 이름 붙여서 공원을 만들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데 도움이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DMZ세계평화공원이 어떻게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지 잘 모르겠다. 평화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안하는 것보다 못할 수 있다.”

    NLL 의제 삼지 말았어야

    ▼ 외교안보수석 때 국정원에 보관돼 있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봤다고 하던데.

    “업무상 필요해서 법적 절차를 밟아서 봤다. 이전 정부에서 대북정책을 어떤 철학으로 어떻게 했는지 알아야겠기에…. (외교안보수석은) 필요하면 몇 백 번이라도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본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는다.”

    ▼ 혼자 봤나.

    “나 말고 보겠다고 한 사람이 또 있었는지는 모른다. 내가 대여받은 건 수석 되고 나서 한 번뿐이다.”

    ▼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문제는 어떻게 보나.

    “국내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에 안보정책적 관점에서는 언급할 게 없다.”

    ▼ 대화록을 보고 노무현 대통령이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포기한다는 느낌을 받았나.

    “노무현 대통령이 NLL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졌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궁금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남북 정상이 핵문제를 어떻게 논의했는지, 다른 남북관계 중요 현안을 어떻게 논의했는지를 살펴봤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천영우 전 수석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으로 우리 측 6자회담 수석대표였다. 업무 성격상 남북정상회담 공식 수행원으로 평양에 동행하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천 전 수석은 동행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회담 때) 나를 공식 수행원에 포함시키라고 했다. 그런데 일부 핵심 참모들이 내가 (수행원에) 포함되면 안 된다는 건의를 여러 차례 한 것으로 안다. 대통령께서 납득을 못하니까, 두 번이나 건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 때문에 나를 (대표단에서) 배제하려 했는지, 정상회담에서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랬는지 궁금했다.”

    ▼ NLL 논란의 핵심이 뭐라고 보나.

    “본질적인 문제는 ‘노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있었느냐’ 여부가 아니다. NLL을 정상급 회담에서 협상 어젠다로 삼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NLL을 의제로 삼고 서해평화지대를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설픈 것이었다. NLL 인근 수역을 공동어로수역으로 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은 더 빈번해진다.”

    ‘꽃게평화자유지역’

    ▼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북한 어선은 북한 해군이 운영한다. 우리처럼 민간 어선이 아니다. 무장한 북한 해군 소속 어선이 우리 NLL까지 와서 조업한다. 지금도 우리 배는 북한과 충돌할까봐 NLL 근처에도 못 가게 합참에서 막고 있다. 그런데 공동어로수역을 만들어놓으면 북한 어선은 남쪽까지 내려와 마음대로 조업할지 몰라도 우리 어선들은 더 멀리 피해 다녀야 한다. 남북한이 모여 고기를 잡다보면 자칫 무력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순진한 발상이었다. 서해평화지대는 오히려 평화를 파괴하는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현실감을 잃고 이상주의적으로 접근한 결과다. 사이 나쁜 이웃과 잘 지내보겠다고 자리를 마련해 폭탄주를 마셔본들 종국에는 멱살잡이나 주먹다짐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잘 지내기 어려운 이웃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길흉사가 있을 때 예의나 표하며 사는 게 낫다. 기본적으로 이해관계가 다르고 만나면 부딪치는 사람과 폭탄주를 함께 마신다고 하루아침에 사이가 좋아지겠나.”

    ▼ NLL은 앞으로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NLL도 DMZ처럼 남과 북이 각각 분계선에서 2km 정도 일정구역 안에서는 조업하지 않도록 하는 게 충돌을 예방하는 길이다. 남북한은 물론 중국 배도 못 들어오도록 어로금지구역을 설정하고 꽃게들이 그 지역에서만큼은 남북한 어선에 잡힐 걱정 없이 마음대로 산란하고 살 수 있는 ‘꽃게평화자유지역’을 만드는 게 낫다.

    올림픽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응원한다고 평화에 도움이 되나. 태극기 놔두고 이상한 깃발 들고 함께 입장하면 평화에 도움이 되나. 이런 이벤트는 거품 평화와 진짜 평화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순진한 발상이다. 평화협력지대라고 이름 붙여놓으면 진짜 평화협력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 아닌가. 서해평화지대는 남북 어선 충돌조장지대가 되고 만다. 돈벌이하러 고기 잡는데, 누가 양보를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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