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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

닷컴·서브프라임 거품 예측 장기분석 행동경제학 대가

로버트 실러 美 예일대 교수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닷컴·서브프라임 거품 예측 장기분석 행동경제학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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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시장 급락의 충격은 고스란히 서민들이 떠안았다. 집값이 폭락하면서 집을 팔아도 빚을 못 갚는 사태가 빚어졌고, 도시는 차압당한 깡통주택으로 넘쳐났다.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한 2007년만 해도 금융위기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저소득층과 제2 금융기관에 국한된 사안일 뿐 월가의 대형 금융회사, 고소득층과 중산층 등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대부분이었다. 미 연준 등 세계 주요 중앙은행은 ‘서브프라임 사태가 금융계 주류나 실물경제에까지 큰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니다’라며 방관했다.

하지만 사태는 세계 금융의 심장부인 월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약 1년 뒤인 2008년 9월 15일 자산 2000억 달러(약 220조 원)가 넘는 초대형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며 초유의 금융위기가 발생한다. 리먼은 월가 금융회사 중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 비율이 가장 높았던 곳으로 유명했다. 리먼 못지않게 서브프라임 투자 비율이 높았던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등도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반면 서브프라임과 같은 고위험 고수익 투자 대신 소매금융처럼 저위험 저수익 투자에 주력했던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은 고비를 비교적 잘 넘기고 지금도 거대 금융사로 군림하고 있다.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의 후폭풍은 엄청났다. 미 연준은 무려 3조 달러를 찍어내는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금리인하로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을 때 국채 매입 등으로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에 직접 돈을 푸는 정책)로 세계 경제 시스템의 파국을 간신히 막았다. 하지만 위기의 근본 원인까지 뿌리뽑진 못했다. 결국 2010년 초 유럽발 재정위기가 발생했고 세계경제는 아직도 이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기는 비극이었지만 경제학자 실러의 명성은 그 덕분에 고공비행을 거듭했다. 이후 실러는 주요 경제지와 금융기관이 뽑는 ‘세계 경제학계를 움직이는 사람’ ‘월가를 움직이는 사람’ 등의 순위에서 늘 상위권에 올랐다. ‘신성한 교육자’ ‘대석학’을 의미하는 구루(Guru)라는 표현이 따라다녔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은 시간문제”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는 결국 사실이 됐다.



그가 칭송받는 중요한 이유는 거품이 꺼진 후나 거품이 꺼지기 직전 거품임을 언급하는 상당수 경제학자와 달리 거품의 정점에서 거품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이는 2000년대 초 그가 주식 시장 거품을 예측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부동산 시장의 장기 가격 변동을 철저히 분석해서 나온 결과물이다.

노벨상 수상은 예측 못해

또한 실러는 책, 논문, 언론 기고 등 활발한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통해 자신의 연구 성과를 학자들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쉽게 알리려고 노력했다. 보통사람들이 어렵고 딱딱하게만 느끼는 경제학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다는 점 또한 다른 경제학자들과 구별되는 차이점이다.

‘예측의 달인’ 실러는 정작 자신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은 예측하지 못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믿을 수 없다. 세상에 훌륭한 경제학자가 너무도 많아 노벨상 수상을 기대하지 않았다”고 소감을 털어놨다.

이를 단지 겸손함의 표출로만 보기는 어렵다. 경제학계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으려면 2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뛰어난 연구 업적, 둘째는 장수 능력이다. 특히 두 번째 조건이 첫 번째보다 훨씬 중요하다.’ 노벨상은 대개 젊은 시절 연구 성과를 낸 노장 학자들에게 돌아갈 때가 많다. 워낙 쟁쟁한 후보가 많기에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장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우스갯소리다.

실러는 금융위기를 예측했고 월가 대형 금융회사의 행태에 대해 쓴소리를 퍼부었지만, 2012년 9월 펴낸 ‘금융과 좋은 사회(Finance and the Good Society, 한국어판 제목은 ‘새로운 금융시대’)’에서 “올바른 금융은 좋은 사회에 기여한다”며 금융산업을 옹호해 눈길을 끌었다.

금융위기의 한복판에서 월가 대형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수천만 달러의 급여와 성과급을 챙긴 데서 보듯 금융산업 종사자들의 탐욕과 무책임은 금융위기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2009년 초 집권하자마자 월가를 살리기 위해 대규모 공적자금을 퍼부어야 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월가와 금융인들의 탐욕을 지적하면서 ‘살찐 고양이(fat cat)’라는 격한 표현을 쓰며 비난했다. 일반 대중의 인식도 다르지 않다. 2011년 미국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금융업과 금융업 종사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실러는 일부 금융인의 잘못이 클지라도 좋은 사회를 건설하고 전 세계적인 문제로 부상한 빈부격차를 줄이려면 금융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역사적으로 봐도 영국의 산업혁명은 금융의 기여가 없었더라면 현실화하지 못했을 것이고 미국의 서부 개척도 금융의 공이 컸다는 것. 과거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했던 많은 국가가 이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국 금융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인 것도 그 증거라고 주장한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금융의 구체적인 형태는 단정하긴 어렵지만, 행동경제학의 발전이 좋은 해답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도 덧붙였다.

그의 이런 예측이 맞아떨어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세계경제가 격동을 겪고 있는 지금, 깊은 고찰과 명철한 비전으로 정책 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석학들의 시각이 어느 때보다 긴요한 것만은 사실이다. 세계적 경제학자들은 단순히 상아탑에 갇힌 고고한 이론가가 아니라 정치인이나 기업가 이상으로 실물경제의 변화를 주도하는 중심축이다. 실러 교수의 향후 행보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신동아 201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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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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