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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의 ‘해적 이야기’

로마 멸망 후 지중해 유린 교역 위축되자 내륙 약탈

사라센 해적 (上)

  • 김석균 해양경찰청장 | sukkyoon2004@hanmail.net

로마 멸망 후 지중해 유린 교역 위축되자 내륙 약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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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멸망 후 지중해 유린 교역 위축되자 내륙 약탈

이탈리아 곳곳에 남아 있는 해적 감시용 망루.

이제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과 기독교도가 마주 보게 됐다. 기독교가 국교였던 로마가 지배하던 시절과 너무도 다른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이후 몇 세기 동안 유럽과 지중해의 역사에 강한 흔적을 남긴 사라센 해적이 활개를 칠 공간이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이교도에 대해 ‘지하드(聖戰)’라는 이름으로 거리낌 없이 해적질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충족된 것이다.

‘사라센’이라는 말은 그리스·로마인들이 아랍인을 부르던 ‘사라케니(Saraceni)’에서 유래했다. 애초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들을 사라센인이라고 불렀으나 점차 아랍인들의 지배하에 있던 베르베르인, 무어인을 포함해 지중해 건너편 북아프리카에 사는 이슬람교도 전체를 사라센인으로 불렀다.

아랍인·베르베르인·무어인은 비옥한 곡창지대를 차지했지만, 사막에서 이동하며 살아가는 유랑민족이라 농경에는 소질도, 관심도 없었다. 이런 이들이 생존을 위해 관심을 둔 것이 지중해 건너편의 기독교인들을 약탈하는 해적질이었다.

그런데 바다 일에 서툴렀을 사막 민족이 어떻게 거친 바다로 나아가 해적질에 나서게 됐을까. 그에 대한 답은 당시 아랍인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수학, 천문학 등 과학지식과 나침반을 활용하는 뛰어난 기술을 가졌고 선박 및 항해술에 뛰어난 그리스인들을 선원으로 부렸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게다가 해적질은 유일신을 믿는 이슬람교도가 이교도인 기독교인들에 대해 성전을 벌이는 명분으로도 작용했다.

이슬람 해적이 기독교 세계를 처음 습격한 것은 652년으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출발한 이슬람 선박이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를 습격해 약탈하고 800여 명의 남녀를 납치해 갔다. 이슬람인들은 납치한 사람들을 알렉산드리아의 노예시장에 팔아버렸다. 1000년 넘게 지중해 연안에서 활약한 사라센 해적의 탄생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후 사라센 해적은 이슬람 세력이 지중해 연안으로부터 50㎞ 떨어진 내륙에 건설한 카이루안과 카르타고, 튀니스 등을 근거지로 삼고 시칠리아의 수도인 시라쿠사를 계속 습격해 약탈했다.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하던 시기에는 해적질이 뜸했으나 725년부터 해적질이 다시 시작돼 시칠리아 섬 해안을 노략질했다.

‘이슬람의 바다’

7∼8세기 지중해는 ‘이슬람의 바다’였다. 사라센 해적들이 휩쓰는 이탈리아 반도 연안의 지중해는 무법의 바다였다. 사라센 해적들의 거듭된 침입에도 콘스탄티노플의 비잔틴 제국에는 약탈로부터 항행의 안전을 지켜줄 해군력도, 해적을 소탕할 여력도 없었다. 비잔틴 제국은 근동·북아프리카·소아시아를 이슬람 세력에 빼앗기고 수도인 콘스탄티노플까지 위협받았다. 북방에선 슬라브 족이 침입했다. 랑고바르드 족이 지배한 이탈리아 남부 일부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탈리아 반도 연안은 사라센 해적의 노략질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다.

지중해 연안에서 항행의 안전이 위협받자 해상교역은 위축됐다. 값진 교역품을 싣고 지중해 연안을 활발히 오가던 상선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어선들도 먼 바다로 나오지 않고 연안에서 조업했다. 이렇게 되자 해적은 전략을 바꿨다. 바다를 지나는 선박을 공격해 약탈품을 챙기는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해적질이 힘들게 되자 연안으로 상륙해 내륙지역을 약탈하는 수법을 택한 것이다. 대항해 시대 전 세계 해양을 누비면서 주요 항로를 오가는 무역선들을 공격해 물품을 약탈하던 것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사라센 해적들이 타고 다닌 배는 ‘푸스타(Fusta)’라고 하는, 노로 움직이는 소형 갤리선이었다. 크기가 작은 만큼 가볍고 빠른 장점이 있어 신속하게 움직여야 하는 해적질에 그만이었다. 푸스타에 몸집이 작은 북아프리카산 말을 싣고 해안에 상륙해 그 일대를 노략질한 후 납치한 사람들과 약탈품을 싣고 해안 기지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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