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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박근혜식 소통과 불통

‘나빠, 틀렸어, 안 해’ 벗어나 반대 주장 들어주는 자세 필요

새누리당 상임고문 5인의 진단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나빠, 틀렸어, 안 해’ 벗어나 반대 주장 들어주는 자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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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빠, 틀렸어, 안 해’ 벗어나 반대 주장 들어주는 자세 필요

2013년 서울시청 앞에 설치됐던 민주당 천막당사.

▼ 이런 반성 없이 소통을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

“각자 각성을 좀 해야죠.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북한인권법을 하겠다고 발표하면 대통령이 당장 만나야죠. 그래서 합의를 만들어내야죠. 내 고집만 피울 게 아니라 상대 주장 중 일리가 있는 건 받아들여야 해요. 그런데 지금 야당은 대선 무효라고 하는 거고 일방적으로 정권 물먹이고 있어요. 그러자 대통령은 저런 당과는 이야기 못 하겠다고 하는 거고. 이러니 백 번 만나도 안 돼요. 아무리 해보세요 소통이 되는가. 안 되지요.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 양쪽이 말로는 소통하자고 해요. ‘왜 박근혜는 소통 안 하느냐’ ‘왜 김한길은 고집만 피우냐’면서요.”

▼ 이렇게 꽉 막힌 걸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지도자가 솔직해져야 한다고 봐요. 상대에게 ‘내가 당신 말 충분히 알아듣고, 당신이 내 말 충분히 알아듣고. 양심에 따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양식에 따라 각자 한번 판단해봅시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이렇게 안 하면 감정의 골만 더 깊어져요. 소통하려 하면 할수록 불통으로 갑니다. 대통령이 ‘야당! 당신 말이 정당하면 내가 받아주겠다. 당신도 내 말이 옳으면 받아줄래?’와 같은 본질적인 이야기부터 해야 해요.”

박근혜와 세종 비교하면…



‘다른 견해를 듣는다는 게 꼭 합의한다는 건 아니다’라는 박 상임고문의 말과 관련해 유흥수 상임고문도 유사한 진단을 내렸다. 유 상임고문은 “잘못된 주장과 타협하는 게 옳은 소통은 아니다”라면서 “다만, 박 대통령이 반대되는 주장을 들을 자세를 보여주는 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타협하진 않더라도 들어는 줘야 한다’는 박·유 상임고문의 이런 관점은 박 대통령의 ‘의견수렴 소통’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우선 ‘박 대통령의 소통 수준이 다른 견해를 들어주는 단계에조차 와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박 대통령의 소통 수준이 적어도 이 단계에까지 와야 한다’는 점을 제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조선 세종의 소통 방식은 여러모로 박 대통령과 대조를 이룬다. 허경호 경희대 교수 팀의 연구에 따르면 세종은 ‘반대 의견을 다 들어준다.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들의 비판적 관점과 적극적 태도를 칭찬한다. 반대 의견들의 일부만을 자기 정책에 수용한다’라는 소통 스타일을 보였다.

예를 들어 세종은 파저강 토벌을 추진하면서 토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문제점을 청취한 뒤 이를 토벌 전략에 반영해 토벌의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세종이 비록 반론에 열린 태도를 보였지만 무한정 논쟁하진 않았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결론이 났다고 판단하면 추가 토론을 차단하고 자기 견해를 관철했다. 최종적으론 제왕 뜻대로 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제왕이 직접 반론을 충분히 청취하는 절차는 필요하다는 게 포인트다. 반론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소통의 효과가 상당히 크다는 이야기다. 박·유 상임고문은 바로 이 점을 박 대통령에게 강조한 것이다.

박 상임고문의 말 중에 ‘각자의 양심과 양식에 따라 상대의 말 중 정당한 부분을 받아들일 것을 서로 약속하라’는 주문이 있다. 대통령-야당 간 불통의 근원적 원인을 꿰뚫어본 것으로,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행위-전략적 행위’ 이론과 결이 같다.

하버마스가 본 ‘박근혜 불통 원인’

‘의사소통적 행위’는 ‘반대 의견에서 정당성을 발견해 진정한 상호이해를 추구하는 행위’다. 반면 ‘전략적 행위’는 ‘반대 의견에서 정당성을 발견했음에도 자신의 양식보단 이익을 좇아 반대 의견을 계속 무시하는 행위’다.

정치인들은 마음속으론 상대 정파의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오직 권력을 지켜내기 위해 상대 주장과 타협하기를 거부하는 전략적 행위를 자주 저지른다. 박 상임고문의 주문도 ‘박 대통령과 민주당이 이런 전략적 행위에서 벗어나야 소통할 수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 측의 ‘내재적 관점’에서 보면, 민주당은 ‘전략적 행위가 체질화된 정당’일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정부 출범도 못하게 하고, 국정원 댓글 가지고 장외투쟁하고, 툭하면 대선 불복한다고 하고, 귀태·암살·박근혜 ×년 같은 막말을 일삼고 있는데, 과연 의사소통이 가능할까”라고 되묻는다.

박은미 건국대 교양학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쪽이 의사소통적 행위를 하자고 하는데도 다른 한쪽이 전략적 행위를 계속하면 전자도 의사소통적 행위를 포기하기 쉽다. 불통은 영원히 계속될 수밖에 없다. 결국 불통의 고리를 끊어내려면 상대가 전략적 행위를 하든 말든 누군가가 먼저 의사소통적 행위를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결단이 양자의 발전을 독려한다고 박 교수는 본다.

박 대통령은 반대편 주장을 들어주는 1단계, 반대편과 함께 의사소통적 행위에 나서는 2단계, 반대편과 무관하게 의사소통적 행위에 먼저 나서는 3단계 중 어느 하나도 시도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쉬운 것부터 해나가는 게 긴요하다고 할 것이다.

불리한 질문 많아야 유리

박 대통령이 소통하지 않는 대상으로 야당과 진보진영 외에 언론과 당·정·청도 자주 거론된다. 언론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취임 1년이 다 되어가는 1월 6일 첫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마저 기자들에게 사전에 예상 질문을 받아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수시로 각본 없는 질의·응답이 오가는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한참 못 미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첫 임기 4년간 78차례나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들이 즉석에서 자유롭게 질문하도록 하면 언론 생리상 날 선 질문이 쏟아지기 쉽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런 불리한 질문을 많이 받는 게 유리하다. ‘반대의견을 충분히 들어준다’는 인상을 TV로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국민에게 ‘소통을 잘하는 대통령’으로 비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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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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