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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토라는 다케시마(竹島)는 독도 아닌 ‘대나무 섬’ 울릉도

일본의 착각

  • 김정현│재야 사학자 kimskorean@naver.com

일본 영토라는 다케시마(竹島)는 독도 아닌 ‘대나무 섬’ 울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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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토라는 다케시마(竹島)는 독도 아닌 ‘대나무 섬’ 울릉도

1785년 일본의 하야시 시헤이가 제작한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之圖)’. 죽도로 표시된 울릉도는 독도와 함께 조선령임을 뜻하는 노란색이다.

왜의 두목이 왔을 때 우리가 책망만 한 것은 국경을 침범하게 된 정상을 참작해서였다. 왜의 표류선이 울릉도에 닿았을 때 돌려보내준 것은 물에 빠진 생명들이 속히 돌아갈 것을 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이유는 묻지 않고 급히 돌려보내주었다. 우리가 관원을 보내 섬(울릉도)을 조사해온 것은 ‘여지승람’에 신라와 고려는 물론이고 본 조선의 태종, 세종, 성종, 세 왕조에서도 누차 관리를 파견했다는 상세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전날 우리 관리 홍중하(洪重夏)가 왜인들을 접견하러 갔을 때 그대 나라 총병위(摠兵衛)가 우리 역관 박자흥(朴自興)에게 한 말이 있었다.

“‘여지승람’을 보건대 울릉도는 과연 귀국의 땅이로다.”

근래 우리 관원이 자주 울릉도를 찾지 않고 우리 어민도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은 바닷길이 험하기 때문이었다. 백성의 안전을 위해 출입을 금한 조치였다. 섬은 하나인데 이름이 둘이라고 하는 것은 그대 나라 사람인 정관(正官)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계유년(1693)에 보낸 첫 번째 우리 답장이 “귀계(貴界) 죽도와 폐경(弊境) 울릉도”라고 한 것은 우리 예조(禮曹) 관리가 옛일에 밝지 못해 착오를 일으킨 것이다. 우리 조정은 그의 잘못을 책망했고 귀 대마도에도 서면을 보내 잘못을 고쳐주기를 청했다. 그에 따라 고쳐서 처음의 오류 내용을 바로잡았다. 그러니 고쳐 보낸 그 서면에 신뢰를 갖길 바란다.’

이런 내용은 한때 우리 조정 관리가 울릉도 쪽에 섬 두 개가 있고, 한 개는 왜인의 섬으로 착오를 일으켰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수정됐고, 대마도 도주도 우리 수정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두 문헌을 볼 때 지금의 울릉도가 조선조에서는 죽도 또는 의죽도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대마도의 왜인들이 몰래 울릉도에 가서 고기를 잡고 대나무를 베간 것도 알 수 있다. 그에 대해 조선은 불법 입경(入境)을 항의하고 다시는 월경(越境)해 오는 일이 없도록 조치를 취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동해 가로지르는 항로는 없었다

울릉에 대한 역사를 알고 나면 그 가까이 있는 독도의 내력도 알 수 있다. 독도는 삼국시대이건 고려시대이건 울릉도 주민이 발견했다고 봐야 한다. 일본은 울릉도를 영유한 적이 없으니 동해를 가로지르는 항해를 할 이유가 없다. 그러한 경로로 항해하지 않으면 독도를 발견하지 못한다. 우리와 일본 역사서는 양국이 동해를 가로지르는 항로를 개척했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 한일 간의 내왕은 오로지 대마도를 경유하는 항로만 했다.

동해를 가로지르는 바닷길이 한일 간에 있었다면 울릉도를 마주 보는 한반도의 울진이나 삼척 강릉 등에는 왜인의 왕래가 많았어야 한다. 부산 왜관(倭館)처럼 그들이 거주하는 객사(客舍)도 있어야 한다.

울릉도를 찾아간 왜인은 대개 대마도 사람들이었다. 그들에 의해 죽도로 불리던 울릉도가 일본에 알려졌다.

우리 역사에는 왜인들이 한반도 연안에 침입해 노략질을 일삼았다는 기사가 비일비재하다. 해안을 따라 북상(北上)한 그들은 동해에서는 강릉, 서해에서는 해주까지 노략질했다. 어느 해안이 당하든 우리 영해로 들어온 왜인들이 이용한 것은 대마도 인근의 바닷길이었다.

울릉도는 섬이 커 삼국시대 이전부터 알려진 섬이었으나 독도는 그렇지 않았다. 울릉도 주민들이 고기잡이할 때나 발견됐을 뿐이다. 독도는 울릉도 연안의 크고 작은 바위섬처럼 그런 섬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울릉도를 옛날 그대로 불렀으면 나았을지도 모른다. ‘죽도’니 ‘의죽도’로. 지금 그렇게 부른다면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하지 못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신라시대 울릉도를 우산국(于山國)이라 했다. 고구려에서는 우진도(于珍島)로 불렀다고 한다. 광개토태왕은 경북 평해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경북 울진을 ‘우진(于珍)’으로 불렀다. 그 시절 울릉도가 우진도로 불린 것은 우진과 관련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鬱陵島’는 잘못된 한자 이름

울릉도라고 써놓은 과거의 한자 기록은 지금처럼 ‘답답할 울(鬱)’이 아니고 울진과 같은 ‘고을 이름 울(蔚)’이었다. 울진(蔚珍)과 관련 있어 울릉도(蔚陵島)라고 한 것을 언젠가 울릉도(鬱陵島)로 바꿔 적었다. 왜 ‘울’ 자를 바꿔 썼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이는 뜻과 걸맞지 않은 한자로 지명을 부여한 예에 해당한다.

독도는 섬 상황에 맞는 이름이다. 과거에는 돌섬이라는 뜻으로 ‘석도(石島)’로 적었는데, 그것도 상황에 맞는 한자 이름이었다. 석도는 우리말로 ‘돌섬’인데 이것을 사투리로 ‘독섬’으로 부르다 바다에 외로이 떠 있는 모습과 합쳐져 독도(獨島)로 적게 됐다고 한다. 독도는 죽도가 될 수가 없다.

1785년 일본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제작했다는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之圖)’는 독도와 함께 울릉도를 ‘죽도’라 표기하고, 두 섬 모두 조선의 것임을 보이기 위해 노란색으로 표시했다.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 섬인 것을 보여준 것이다.

1878년 ‘야마무라’란 성을 가진 일본인이 제작했다는 ‘대일본분견신도(大日本分見新圖)’ 역시 울릉도를 竹島(죽도)라 표기했다. 독도는 松島(송도)로 적어 놓았다. 송도는 일본 말로 ‘마쓰시마’다.

과거 일본은 울릉도를 죽도로 불렀다. 그렇다면 “울릉도가 일본 영토인 다케시마”라고 주장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울릉도는 누가 봐도 우리의 영토이니 엉뚱하게도 독도를 죽도(다케시마)로 바꿔놓고 자기 영토라고 주장한다. 착각한 것이 아니라면 지독한 억지인 것이다. )

신동아 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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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재야 사학자 kimskore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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