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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박사의 ‘왕의 한의학’

‘정기(精氣)누설’ 일삼은 시대의 색골

광기의 남자 연산군

  •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한의학 박사

‘정기(精氣)누설’ 일삼은 시대의 색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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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흥청망청’이란 신조어의 유래가 된 흥청이 등장한다. 연산군은 음률을 아는 전국의 기생을 골라 궁궐로 불러들인다. 처음에 불러들인 이 기생들은 운평(運平)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연산군은 이에 성이 안 차는지 벼슬아치의 첩, 창기 가운데서도 운평을 추가한다. 처음에 온 운평은 가흥청(假興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시일이 지나면 가흥청을 한 등급 올려 흥청망청의 주인공인 흥청(興淸)으로 승격시켰다. 이때 뒤에 들어온 자들은 속홍(續紅)이라고 했다.

흥청은 두 종류로 나뉘었다. 임금 곁에서 모시는 자는 지과(地科)흥청, 잠자리를 같이하는 자는 천과(天科)흥청으로 구분했다. 실록 11년 6월 18일 기록이다. “왕이 금중(禁中)에 방(房)을 많이 두어 음탕한 놀이를 하는 곳으로 삼았다. 또 작은 방을 만들어서 언제나 밖으로 나가 즐길 때면 사람들을 시켜서 들고 따르게 하여, 길가일지라도 흥청과 음탕한 놀이를 하고 싶으면, 문득 이것을 설치하고서 들어갔는데, 그 방을 이름 붙여 ‘거사(擧舍)’라 하였다.”

실록 11년 9월 16일 기록은 이렇다. “그때 장악원에 있는 운평은 천으로 헤아리는 수였으되, 한 순(旬)에 한 번 간택하고 두 순에 두 번 간택하니, 얼굴이 아주 못났을지라도 두어 순이 지나지 않아서 반드시 뽑혔다. 이것을 순간택(旬揀擇)이라 하였다. 밖에서 임신한 흥청은 따로 질병가에 두어 출산하기를 기다려서 곧 묻게 했다. 만약 영을 어겨 묻지 않는 자가 있으면 오작인(·#53700;作人·지방 관아에 속하여 수령이 시체를 임검할 때 시체를 주워 맞추는 일을 하던 하인)을 중죄에 처하였으므로, 낳는 대로 묻으니 젖먹이의 울음소리가 서로 잇달으매, 듣고 이마를 찌푸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는 본인의 노골적 경험도 숨기지 않고 전교한다. 흥청 악인 완화아를 겨드랑이에서 냄새가 난다는 이유를 들어 운평으로 지위를 깎아내리라 명했다. 운평은 장악원의 고친 이름인 계방원(繼芳院)에서 관리하고, 흥청은 원각사에 둔 연방원과 궁궐 안에 둔 취홍원에서 거처했다.

백모까지 겁탈



‘정기(精氣)누설’ 일삼은 시대의 색골

중국에서 수박을 구해오라고 시킨 연산군의 명에 반대했던 김천령은 능지처참을 당했다.

이밖에도 연산군은 채홍준사(採紅駿使)를 두어 전국 각지에서 아름다운 여자와 좋은 말을 찾아내게 했으며 이에 만족하지 않고 채청사(採靑使)를 보내 어린 처녀들을 색출했다. 그런 식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흥청들과 놀아났다.자신이 말이 되어 흥청들을 태우고 기어다니고, 반대로 자기가 흥청의 등에 올라타 말놀이를 즐겼다.

심지어 큰아버지의 부인까지 겁탈했다. 연산군의 성욕은 결국 백모이자 박원종의 누이인 월산대군 부인 박 씨를 겁탈한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이후 2개월 뒤 중종반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록 12년 7월 기록은 “월산대군 이정의 처 승평부 부인 박 씨가 죽었다. 사람들이 왕에게 총애를 받아 잉태하자 약을 먹고 죽었다고 말했다”고 했다.

연산군의 질병 기록은 소변이 찔끔거리는 증상으로 시작한다. 실록 1년 1월 8일 “전하께서 소변이 잦으시므로 축천원(縮泉元)을 드리라 하시는데, 신 등의 생각으로는 전하께서 오래 여차(廬次)에 계시고 조석으로 곡위(哭位)에 나가시므로 추위에 상하여 그렇게 된 것이오니, 만약 바지 안쪽이나 버선에다 모피를 붙여서 하부를 따뜻하게 하면 이 증세가 없어질 것입니다”라고 기록했다.

남자가 소변을 보기 위해선 양기(陽氣)가 있어야 한다.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은 양적인 면에서 생긴다. 방광에 고이는 소변은 혈관 밖의 물이다. 물은 온도가 4℃에 불과하다. 항온동물인 인간의 몸은 어떤 경우에도 36.5℃를 유지해야 세포가 병드는 걸 막을 수 있다. 소변을 36.5℃로 부글부글 끓이면서 유지하지 못하면 세포는 병든다. 자기방어 측면에서 자주 소변을 배출해야만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야간 빈뇨의 원인이다. 이렇게 부글부글 끓이는 전기적 힘을 한의학에선 양기라고 규정한다.

소변은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 압축된 힘으로 짜내는 것이다. 물총을 쏘면 물이 발사되는 것과 같다. 짜내는 힘이 약하면 나가던 물이 다시 밀려들어와 잔뇨감이 생기면서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려야 한다. 소변을 데우는 힘과 짜내는 힘, 발기력을 합쳐 양기라고 하며, 남성이 오줌발에 신경 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양기의 통로는 척추 안쪽을 흐르는 독맥(督脈)이다. 힘 있는 사람이나 득의양양한 사람은 등을 뒤로 젖힌다. 반면 양기가 줄어들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앞으로 푹 숙여진다. 바로 고개 숙인 남자가 되는 것이다. 남자들이 정력제에 목숨 거는 이면엔 이런 이유가 있다. 실록의 기록처럼 연산군이 하복부를 따뜻하게 데우고 난 후 증상이 호전됐다는 건 양기가 약하다는 의미다.

백마로 양기 보충

사실 연산군은 패륜적으로 성에 집착했던 것치곤 자식 농사가 신통치 않았다. 왕후 신 씨에게서 2남1녀, 후궁에게서 2남1녀로 성종이 16남12녀를 둔 것과 비교할 때 사뭇 왜소해 보이는 건 그의 찔끔거리는 소변 기능과도 관련이 깊다. 실제 양기가 모자랐던지 연산군 9년엔 양기를 보충하려고 백마를 골라 내수사로 보낼 것을 명한다.

우리 역사상 가장 엽색적인 행각을 벌인 것으로 기록된 사람은 고려시대의 신돈이다. 성현의 ‘용제총화’엔 신돈의 엽색 행각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신돈의 권세가 커지자 사대부 중에 얼굴이 어여쁜 아내와 첩을 둔 자가 있으면 매번 허물을 씌워 감옥에 넣었다. 그러고는 만약 주부가 찾아와서 남편의 억울함을 호소하면 죄를 면한다고 말하였다. 신돈이 매번 찾아온 주부를 상대로 엽색 행각을 벌였다. 양기가 쇠약해질까 두려워 백마의 음경을 잘라 먹고 지렁이를 회쳐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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