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어쩌다가…
LG전자도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한때 LG전자는 중국 시장 내 백색가전 점유율이 평균 10% 전후에 달할 정도로 잘나갔다. 후난(湖南)성 장사(長沙) 등에 거액을 투자해 백색가전 공장을 대거 신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 토종업체들의 약진으로 LG전자의 좋은 세월은 끝을 향해 치달았다. 급기야 일부 가전제품의 경우 점유율이 1%대로 급전직하하는 횡액을 당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휴대전화 사업 부문을 정리하는 아픔까지 맛봐야 했다.
그룹 내에서는 50명 이상에 달하는 직원들을 계속 주재시킬 필요가 있는지 회의도 일었다. 결국 2012년 말 주재원들이 대거 귀국길에 올랐다. LG전자는 현재 최소한의 주재원을 운용하면서 과거의 영화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중국에 거주하는 많은 한국인은 “LG전자가 어쩌다가 중국에서 이렇게 됐는지…”하며 안타까워한다.
한국 1위 중장비업체인 두산인프라코어는 상황이 더 어렵다. 중국 토종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밀려 장쑤성 쑤저우 공장의 생산량을 대거 줄이는 상황에 직면했다. 더구나 중국 내 건설 경기가 좋지 않아 이 회사는 더욱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그나마 이들 대기업은 더 처절한 실패를 맛본 대기업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에 속한다. 대우인터내셔널은 15년 이상 산둥성 쓰수이(泗水)에서 시멘트 공장을 운영하면서 중국 내 상당한 경쟁력을 자랑했다. 대우그룹이 해체됐을 때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중국 토종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방법이 없었다. 2년 전 매각된 것은 거의 예정된 수순이었다.
국내에선 유통업계의 양대 공룡으로 통하는 롯데와 이마트도 실패의 쓴맛을 봐야 했다. 먼저 롯데는 지난해 베이징 왕푸징(王府井)에 설립한 러톈인타이(樂天銀泰) 백화점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잠정 손실액만 최소 수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음료는 그나마 조금 낫다. 누적 손실액이 200억 원과 72억 원에 불과하니 말이다. 롯데그룹 내부에선 이 정도면 흑자라는 자괴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롯데는 ‘베이징을 비롯한 전 중국 대륙에 점포 1000개를 설립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롯데마트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당초의 호언과는 거리가 멀다. 철수까지는 고려하지 않지만 실적이 그다지 좋지 않다. 현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면 매장을 줄줄이 철수해야 하는 비극에 직면할 위험도 없지 않다.
롯데그룹에서 유통 담당 임원을 지내다 영업부진 책임을 지고 사임한 고모 씨는 “우리는 중국인들의 소비 습관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저 싸게 팔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고씨는 “지금도 롯데마트는 중국인들이 뭘 원하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공부도 하지 않는다. 나도 솔직히 모르겠다”면서 “실패는 필연적이었다”고 토로했다. 철수하지 않는 것이 신통하다는 얘기도 나올 법하다.
유통 공룡의 처참한 실패
1997년 중국에 진출한 이마트의 요즘 실적은 ‘처참하다’는 표현이 전혀 과하지 않을 정도다. 중국법인 5곳이 이미 자본 잠식 상태에 빠졌다. 지난해 말 기준 이들 중국 법인의 부채는 1957억 원을 기록해 총자산 1817억 원을 넘어선 것이다. 중국에 투자한 자금을 모두 날려버렸다는 얘기다. 한 유통 전문가는 “현 상태가 계속된다면 16개에 달하는 매장을 더는 운영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들 대기업이 한때 땅 짚고 헤엄치는 곳으로 생각한 중국 시장에서 이처럼 고전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무엇보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중국 업체들의 경쟁력이 강화됐다. 특히 백색가전이 대표적이다. LG전자 제품보다 훨씬 값싸면서 품질이 크게 뒤지지 않는 중국산 제품이 부지기수다. 이는 한국과 중국의 산업 기술력 격차가 4~5년에서 1~2년으로 좁혀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된다.
여기에 같은 값이면 국산품을 구입하려는 중국인의 애국심도 작동한다. 중국 소비자의 경향이 비교적 배타적이라는 말이다. 롯데마트와 이마트가 지리멸렬한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외국 기업에 자국 시장을 내주지 않으려는 중국 정부 당국의 의지일 것이다. 중국 정부가 최근 외국 기업에 대한 특혜를 거의 다 없애버린 점에서도 잘 읽을 수 있다. 외국 기업의 편법에 대해 가차 없이 벌을 내리는 행정 당국의 추상같은 조치도 한국 기업을 옥죄는 요인인 것 같다. 최근 수년 동안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대기업이 이 조치로 어려움을 겪었다. 중국은 한국 대기업이 더는 만만히 볼 곳이 아닌 셈이다.
그러나 한국 대기업이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성공 신화를 써내려가는 몇몇 대기업의 전략에 답이 있다. 우선 중국 기업들이 도저히 따라오기 힘든 압도적인 기술력을 길러야 한다. 중국 업체들은 말로는 삼성전자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혀를 내두른다. 중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현지화, 배타적인 국산품 애용 성향을 바꿔놓는 진정성 있는 활동, 명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브랜드 전략도 필요할 것이다. 이럴 경우 중국은 한국 대기업의 무덤이 아니라 재도약의 발판이 되리라고 본다.
절실하게 원하면 이뤄지게 마련이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으로 중국에서 한국 기업에 좋은 기회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정부가 기업 친화적 대중 외교를 펴고 대기업이 실패를 거울 삼아 냉철한 전략과 뜨거운 열정으로 다가간다면 중국에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을 것이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