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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의로운 사회보다 어진 사회가 돼야”

사유하는 지식인의 표상 김우창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의로운 사회보다 어진 사회가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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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가 소란스럽습니다.

“새로운 구조 탓인 것 같다. 흔들리는 이유에 대한 전체적 이해가 성립돼야 한다.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는 없는 시대, 가난한 시대였다. 역설적이지만 편리한 점도 있었다. 먹고사느라 바빠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젊은 사람이 구직하기 어려운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1950~60년대의 불안과 오늘의 불안에는 차이가 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으니 좋다 하겠지만 정신 상태도 좋아졌느냐를 생각해봐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그리스의 많은 사람이 농촌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농촌이 건강하게 살아남은 덕분이기도 하고, 농촌이 상업화해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돌아갈 농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주로 갈 수도 없다.”

▼ 돌아갈 공동체가 없어 불안하다는 뜻입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 사는 구조가 사라졌다. 또한 마음을 지배하는 정신적 지침이 없다. 사회의 전체적인 심성과 정신문화가 쇠퇴했다.”

실용의 수익모델이 사회를 지배한다. 이익이 보장되면 선(善)이다.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지상의 척도가 돼버렸다.



그는 “마음의 실체는 고요함”이라고 했다.

“생각하면서 살고, 살면서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려면 일어나는 일에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은둔자가 되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거리를 유지하면 마음의 공간이 생긴다. 고요함의 순간, 외부의 자극에 흔들렸던 욕망이 의미 없음을 깨닫는다. 대세를 좇아가려 하니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없다. 뜻하는 대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 마음대로 산다는 게….

“맹자는 구방심(求放心)이라고 했다. 달아난 마음을 구해서 찾아와야 한다. 사람들이 좇는 것은 사회가 시키는 것이지 자기 마음이 아니다.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참으로 알려면 생각해야 한다. 그 순간이, 고요해지는 순간이다. 더 깊이 생각하면 마음이 더욱 고요해진다. 사유는 혼자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사물을 받아들여야 생각할 수 있다. 생각해야 사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사물과 생각 사이에 왜곡이 일어난다. 사람과 생각 사이의 간격을 줄이려는 노력이 사유다. 자기반성을 포함한 사유 노력이 있어야만 사물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합리적 사유에 이르려면 여러 사람과 얘기를 주고받아야 한다. 개인이 객관적 세계를 체험해 보편성에 다가서면 체험의 세계가 넓어지고 인간의 주체적 의식으로 되돌아온다.”

그의 인문사상을 가로지르는 핵심은 ‘심미적 이성’과 ‘이성적 사회’다. 이성은 현실에서 나오고 이 나옴을 통해 현실에서 분리되며 또 이상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다시 현실로 들어간다. 구체적 현실 속에서 보편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현실과 이성은 끊임없이 교환된다. 사유는 객관을 통해 보편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는 ‘고요함에 대하여’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다

“오늘날의 소음들 속에서 우리가 상실한 것은 스스로를 온전하게 유지하며, 바깥세상에 밝고 기민하게 반응하고 여러 사람의 의견들을 하나로 종합될 수 있게 하는, 마음의 근본적 고요함이다.”

초로의 나이에 접어든 후학들은 ‘김우창론’을 쓰면서 ‘고독한 이성주의자’ ‘진정한 정신주의자’라는 수사를 붙인다.

#정치와 소통

“정치를 가까이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정치로부터 해방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지난해 12월 17일 ‘체험의 조형’ 출간 집담회에서)

그는 “전략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혐오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가 바로 전략의 논의이며, 명분은 집단의 이익이다.

“정치는 이 재미없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흥분제다. 그래서 나는 정치를 멀리하기를 원했다.”

그는 1954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꿔 1958년 졸업했다. 1961년 코넬대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8년 하버드대로 다시 유학을 떠나 1975년 문학박사 학위를 득했다.

“정치학에서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꾼 것은 어릴 적부터 철학, 문학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하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정치에 혐오를 느낀 것은 나중의 일이다”

그는 “정치를 가까이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는 말은 역설적인 얘기”라면서 “정치가 없으면 만인전쟁(萬人戰爭)이 된다. 정치를 잘해야 정치를 가까이 할 필요가 없어진다. 정치란 정치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용미(用美)라는 표현은 전략적이다. 정치의 언어다. 미국 사람이 바보가 아닐진대 미국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겠나. 나라들 간 관계는 보편적 이상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풀어가야 한다. 한일관계를 보자. 우리가 이렇게 하면 일본이 저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치 전략이다. 그 경우에도 전략이 아닌 인간의 보편적 이상에 호소해야 한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민족의 장래를 위해 이렇게 하자고 호소해야 한다. 뭘 줄 테니 뭘 내놓아라 식의 전략적 사고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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