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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문제 원인 찾으려는 대화법을 공감 위한 상호반응적 소통으로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문제 원인 찾으려는 대화법을 공감 위한 상호반응적 소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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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사태는 표면적으로 미국 소의 위험성과 같은 실용적 이유를 얘기했지만, 많은 사람에게 오히려 한국의 자존심, 미국에 대한 반감, 이명박 정부에 대한 견제 등의 다양한 상징적 가치를 드러내는 행위였다. 그래서 이런 상징적 가치에 대해서는 기술적 소통이 아닌 상호반응의 소통이 필요했다. 상징적 가치에는 정확성이나 효율성은 적용되지 않기에 기술적 소통은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계속 미국산 소고기가 얼마나 안전한지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만을 반복적으로 얘기했다. 국민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상징적 가치들에 대한 질문에 정부가 반응해주길 바라고 있었을지 모른다.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일관성 있는 대답이 아니라, 자신들이 물어보는 방식에 대해 역동성 있게 반응해주는 그런 소통을 원했을지 모른다. 

이런 불통의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카드정보 유출 사건에 대해 현오석 부총리는 “금융소비자도 정보를 제공하는 단계에서부터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정보제공에 다 동의해주지 않았느냐”는 발언으로 홍역을 치르고 사과까지 했다. 1월 31일 발생한 여수 기름유출사건에 대해 윤진숙 해양수산부장관은 “기름 유출의 1차 피해자는 정유사, 2차 피해자는 어민”이라고 말해 비난을 받더니 급기야 경질됐다.

이분들의 말은 기술적 기능으로 보면 거의 틀린 것이 없다. 정보 유출에서 핵심내용인 금융회사가 다른 기관에 정보를 제공한다는 부분에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한 것도 사실이고, 유조선이 정유사 항만시설을 들이받아 유출사고가 났으니 시간적으로나 인과관계를 따지면 1차 피해자는 정유사가 맞다. 이분들의 말을 전체적인 맥락이 아닌 부분만 선정적으로 기사화하는 언론의 오류도 엄청나게 크다.

하지만 그 모든 점을 고려하더라도 상호반응의 기능을 고려하면, 어차피 원인을 물어본 말이니 원인만 정확히 얘기하면 된다는 자기중심적 대화법에 의존한 발언 당사자도 일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런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당사자들은 진의가 왜곡되었다고 억울하다고 얘기하겠지만, 언어와 대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타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으면 하는 목적성을 가지고 대부분 대화가 이루어진다. 그런 생각을 떠오르게 하지 못하는 모든 대화는 결국 실패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이런 소통과 불통의 문제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왜 여성 지도자들이 급부상하는가’라는 이슈와 직접 연결된다. 모든 남성과 여성이 반드시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많은 심리학적 연구는 평균적으로 남성은 문제중심적 사고와 대화를 하고, 여성은 정서중심적 사고와 대화를 한다고 밝혀왔다. 진화의 과정에서 자원을 구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냥을 하고 싸움을 하는 등의 역할을 담당했던 남성은 위급한 상황에서 효율적인 사고와 대화의 기능이 더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 리더의 출현

문제 원인 찾으려는 대화법을 공감 위한 상호반응적 소통으로

서로에 대한 잘못된 대화법은 돌이킬 수 없는 불화를 낳기도 한다. 사진은 부부 갈등을 소재로 한 영화 ‘장미의 전쟁’.

반대로 출산과 육아를 담당했던 여성들은 표현이 부족한 자녀와 소통하고 반응해주는 심리적 기능이 상대적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남성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 기능의 소통법에 더 익숙하고, 여성은 심리적 교류 자체를 중요시하는 상호반응의 소통법에 더 뛰어날 수밖에 없다. 유교적 문화적 배경에서 격한 산업화의 근대 역사를 겪으면서 한국의 남성과 여성의 이런 성향은 더욱 강화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당장 대부분의 부부싸움을 보면, 슬퍼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자꾸 왜 그러냐고, 원인이 뭐냐고만 물어본다. 그래야 문제를 해결하고 슬플 일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자신이 지금 슬프다는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아내들은 자신이 슬프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과거 2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을 얘기한다. 그럼 남편은 왜 직접 관련도 없는 과거의 일을 다시 얘기하냐고 화를 낸다. 아내는 남편이 자기 말을 듣고 있는지, 자기가 화가 나 있는 상태를 이해하는지를 확인하고자 계속 질문을 바꿔본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남편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자신을 더 궁지로 몰아넣으려는 아내의 이상한 대화법 정도로 생각하고 원인을 알아내려고 더욱더 집요하게 이렇게 대답한다. “그러니까 도대체 왜 그러냐고?”

시대가 변하면서 모든 세상사는 너무나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이제 원인과 결과가 명확해지지도 않은 사회가 돼간다. 미디어의 발달과 사회적 전파 속도가 빨라지면서 사람들의 사고 속도는 이미 정보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런 시대에는 진실을 파헤치는 집요함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고, 실제로 다 알 수도 없다. 대부분 사건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데 보통 6개월이나 몇 년, 심지어 영원히 밝혀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언어의 기술적 기능은 그 설자리를 잃어버린다. 오히려 상호반응의 기능이 더 중요해지고 있으며, 관계주의 문화를 가진 한국 사회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문제 원인 찾으려는 대화법을 공감 위한 상호반응적 소통으로
허태균

1968년생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문학석사(일반심리학)·노스웨스턴대 철학박사(사회심리학)

저서 : ‘가끔은 제정신’


최근에 따뜻한 리더, 여성 리더의 급부상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과거에는 여성이 리더가 되려면 남성 리더의 덕목을 갖춰야 한다고 심리학적 연구 결과들이 주장했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로 성공한 남성 리더들이 여성리더의 덕목을 갖추고 있다고 얘기한다. 바로 그 여성 리더의 특성 핵심에 ‘상호반응적 소통’이 있다.

오늘도 차마 “왜 그래?”라는 질문은 못하고 눈만 껌벅껌벅하면서 당황하는 나에게 나의 아내는 얘기한다. “지금 내가 슬프다고!” 당신에게 그런 소통을 청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돌아볼 시간이다.

신동아 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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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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