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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미래전략연구원 공동기획 | 이념 vs 이념 <마지막회>

“권력자도 法 아래 있다고 고백하는 것” “사법부가 중재 맡아 ‘떼법’ 해결해야”

10 법치주의

  • 패널 | 김형찬 김기섭 이국운 정리 | 송홍근

“권력자도 法 아래 있다고 고백하는 것” “사법부가 중재 맡아 ‘떼법’ 해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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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의 반대말은 人治

“권력자도 法 아래 있다고 고백하는 것” “사법부가 중재 맡아 ‘떼법’ 해결해야”

김기섭

김기섭 우선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Common law를 ‘보통법’으로 번역하는 것은 일본식 표현으로서 잘못이다. 사람의 양심과 Common law를 연결지으면 용어상 혼란이 일어난다. Common law는 영국의 민사소송 원칙에서 손해배상과 관련한 법률을 가리킨다.

법치의 개념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따르다. 자본주의 국가, 공산주의 국가의 법치 해석도 다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보호받아야 할 사람은 모든 국민인 반면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인민, 즉 프롤레타리아다. 이렇듯 법치라는 낱말은 세계 공통의 어떤 규범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법치의 대칭적 의미를 가진 단어로는 뭐가 있을까? 인치(人治)가 그것이다. 쉽게 말해 사람이 다스리면 인치, 법이 다스리면 법치다. 또한 법은 ‘잘못을 저지르면 처벌을 받는다’는 예측 가능성을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법치라고 말할 수 있겠다.

김형찬 법치의 개념 정리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현실 얘기로 넘어가보자. 최근 법치주의가 강조되는 분위기다. 그 까닭이 뭘까?



이국운 김 변호사께서 용어와 관련해 지적한 것에 대해 얘기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실정 법규범 체계 용어로서의 Common law가 아니라 하나의 이념으로서 어디에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Common law를 말한 것이다. 오해 없었으면 좋겠다.

오늘날 법치주의가 강조되는 까닭은, 법치주의 말고는 우리 사회와 지구촌 문제를 풀어갈 정당한 다른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뜻으로 법치주의를 얘기하고 있지만 흥미로운 점은 그 사람들이 모두 ‘법치주의’라는 하나의 기호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사람들 사이에서 자유가 마땅히 누려야 할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법치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은 자유의 존재이며, 그렇기에 평등하게 대접받아야 정의로운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법치를 요구하는데, 법을 집행하는 이들이 그러한 요구를 수용해낼 만큼의 실력을 갖췄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우리는 국민국가 단위에서 법치를 해낼 능력을 갖고 있는가? 세계적 차원에서 그런 실력이 있는가? 자유로운 다중의 법치에 대한 요구가 거센 상황에서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치에 대한 요구가 곳곳에서 등장하는 것은 위기의 전조일 수도 있다.

김형찬 법치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것은 법치가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인가.

이국운 그렇다.

김형찬 김 변호사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김기섭 법치가 강조되지 않는 사회가 있나? 법률이 존재하지 않으면 야만의 사회로 되돌아간다. 한국에서 최근 법치가 과거보다 더 강조되는 것은 ‘떼법’이 많아서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떼법이 법치보다 위력을 발휘하는 까닭은 뭔가?

법률로 다룰 수 없는 사회 현상이 늘고 있다. 일례로 어떤 동네에 화장터를 새로 짓는다는 발표가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그 동네 주민은 거의 모두 화장터 건설을 반대할 것이다. 서울시가 조례 등에 따라 화장터를 짓겠다고 고시한 것은 법치라고 할 수 있다. 주민들이 ‘떼법’을 쓰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밀양 송전탑 문제도 비슷한 사안이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때 ‘due process of law’라는 표현을 쓴다. 일본 사람들이 적법절차라고 번역했는데, 제가 볼 때는 due process of law는 청문회 절차, 또는 공개토론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법치가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이익을 보는 계층과 손해를 보는 계층이 토론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또한 제3의 중립적 기구가 중재에 나서야 한다.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행정행위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밀양 송전탑을 예로 들어보자. 송전탑을 지으려는 곳은 한국전력공사다. 한전을 이득 보는 계층으로 간주할 수 있다. 피해를 보는 계층은 송전탑이 지나가는 곳에 사는 주민이다. 이득을 보는 계층, 손해를 보는 계층이 제3의 중재자와 모여 토론을 해야 한다. 한전이나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할 것이며, 경제적 보상은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면서 주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쳤는데도 주민투표를 한 결과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송전탑을 세워서는 안 된다. 지하로 통과하게 하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이다.

법치주의가 모든 국민을 만족시키려면 이 같은 due process of law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와 관련한 입법도 필요하다고 본다. 국회에서 이 같은 절차를 제도적으로 거치게끔 법을 만들어줘야 한다. due process of law를 사법부가 맡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판사가 중재하면 중립성이 보장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청문 절차가 난장판이 되는 일이 잦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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