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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내 유일한 숨구멍 카메라만 보면 쌩쌩해져요”

데뷔 43주년 ‘변호인’ 여걸 김영애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연기는 내 유일한 숨구멍 카메라만 보면 쌩쌩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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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기 힘드니까 계속 일한 거예요. 돈이 급해서. 늘 가장이었으니까. 친동생 중에 잘된 애도 있고 좀 힘든 애도 있어요. 결혼하고 나서 민우(친아들)의 배다른 누나와 형도 내가 건사했어요. 민우 아빠에게 아이 셋이 있었으니까 그 아이들도 내가 다 공부시키고 결혼시켰죠. 그래서 늘 사는 게 팍팍했고 일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마흔아홉까지. 먹고살려고 다작을 하는 게 지긋지긋해서 사업할 생각을 한 거예요. 돈을 벌어서 내가 하고 싶은 작품만 하는 근사한 배우가 되려고.”

▼ 처음에 배우가 된 것도 먹고사는 게 목적이었나요.

“그땐 탤런트 시험에 붙으면 방송국에서 월급 주는 줄 알았어요(웃음). 서울 친척 언니가 한번 도전해보라며 원서를 갖다줬어요. 원래 재수를 하려고 했는데 붙었어요. 이제 월급 받을 수 있겠구나 했지. 배우가 된 건 내 생애 최대의 행운이자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 배우가 천직이란 생각이 드나요.

“그런 생각한 지는 오래됐어요. 사업한답시고 연기를 못하는 동안 병이 났어요. 전남편이 ‘김영애의 남편’으로 비치기 싫다며 내가 연기하는 걸 내켜하지 않았죠. 난 연기를 해야 활력이 생기는데 그걸 못하니 우울증이 심했어요. 그래서 정신과 치료를 6개월 동안 받다가‘황진이’라는 드라마를 한 거예요. 그 작품을 하며 우울증을 치료했어요. 다 죽어가다가도 카메라에 불 들어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쌩쌩해지죠(웃음).”



▼ 자식 때문에 이혼을 망설인 적이 있나요.

“있죠. 실은 30대 초반에 이혼하려고 했어요. 그때는 우울증이 심해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알코올 중독에 약물중독이었고 정신과 치료도 여러 번 받았어요. 1970년대 말부터 수면제를 먹어야 잠들 수 있었으니까. 근데 서른네 살 때 민우가 태어났어요. 아이를 위해 참고 살다 마흔아홉 살에 이혼을 했지. 내가 죽어서 없는 것보다 어떻게든 살아서 민우 옆에 있는 게 낫겠다 싶어서.”

‘천운’으로 키운 사랑

사춘기에 부모의 이혼을 겪었는데도 엄마의 걱정을 덜기 위해 늘 어른스럽게 굴던 민우는 어느덧 장성해 가정을 꾸렸다. 세계적인 요리 명문인 프랑스 파리의 르코르동블루에 이어 미국 뉴욕의 CIA (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를 졸업하고 지금은 미국 맨해튼에서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로 일한다. 김영애는 “두 번째 이혼할 때도 그 아이는 엄마만 행복하면 된다며 내 결정을 존중해줬다”며 “지나치게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상처를 많이 받으며 자랐는데 나 역시 아들을 엄하게 키워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 이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나요.

“물론이죠. 결혼할 때는 좋아서 했지만 헤어질 때는 오죽하면 헤어졌겠어요. 같이 사는 게 많이 힘들고 우울했어요. 참고 살기 싫어서 이혼했어요. 근데 헤어지고 나서 많이 밝아졌어요. 근래 몇 년 동안 이렇게 편안하고 밝았던 적이 없어요.”

그러고 보니 그에게서 여인의 향기가 났다. 화장해서 풍기는 분 냄새와는 또 다른. 이성 친구가 생겼다더니 그 덕분인 듯했다.

▼ 새로운 만남을 시작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요.

“연하지만 오빠 같고 아버지 같은 느낌이 드는 친구랄까. 2011년 ‘로열패밀리’를 시작할 때 우연히 알았는데 ‘해품달’ 촬영 끝내고 췌장암 수술하면서 가까워졌어요. 그 친구가 병구완을 해줘서 큰 힘이 됐거든요. 지나치게 낙천적인 성격이라 가끔 흉도 보지만 내 어리광과 투정을 다 받아줄 만큼 따뜻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내가 짜증 내도 감정 기복이 심한 직업이라 그런 것 같다며 이해해줘요.”

▼ 결혼할 생각인가요.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사랑받는 느낌이 들지만 이제 죽을 때까지 결혼은 안 할 거예요. 남녀보다는 친구가 좋은 것 같아요.”

▼ 갱년기 우울증은 안 겪었나요.

“잘 극복했어요. 그다지 지혜롭지도 못하고 앞으로 또 어떤 진창에 빠질지 알 수 없지만 내가 겪는 모든 일에 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매순간을 열심히 살았거든요. 췌장암 수술 전 마스크를 쓰는데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너무나도 편안해지더라고. 참 열심히 살았다, 김영애 수고했다 그랬지. 난 지금이 마지막이라도 원도, 한도 없어요.”

▼ 수술 후유증은 없었나요.

“수술을 9시간 동안 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라 고통의 시작이었어요. 수술하고 나서 얼마나 고통스럽던지 반나절 갔겠지 하고 보면 한 시간이 지났어. 지옥이 따로 없더라고.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어떻게 할 수도 없이 아팠어요. 십이지장부터 담도, 담관, 췌장 일부를 다 잘라냈거든. 물만 먹어도 고통스럽더라고요.

수술 전에는 그나마 견뎌낼 수 있을 정도였어요. 고열에 시달리며 췌장염을 앓았는데도 ‘해품달’이 끝날 때까지 두 달을 더 찍었죠. 일을 마쳐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어서. 나중엔 너무 힘드니까 황달이 오더라고. 병원에 갔더니 황달은 마지막 순간에 오는 거라네. 거의 말기쯤 돼서. 검사받은 후 깨어보니 이 사람이 너무도 슬픈 얼굴로 잘 이겨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얘기를 들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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