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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의 핫 픽션 터치<마지막 회>

그리고 길은 비로소 소설이 되었다

  • 함정임 │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그리고 길은 비로소 소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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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와 ‘그리고’의 세계

노마드 서사는 작가의 노마드적인 기질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데, 예를 들면 르 클레지오, 배수아, 김연수, 정영문, 김영하, 성석제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작품은 한국이나 프랑스에 고정되지 않고 세계를 무대로 한다. 이들은 단지 스쳐 지나가는 관광 여행자가 아닌 한 도시에 일정 기간 체류하면서 현장을 연구하고 소설을 창작한다. 소설의 공간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소설의 영역 또한 자유롭다. 에세이와 명상록, 인류학과 심리학, 언어학과 사회학적인 요소를 두루 아우른다.

흔히 아프리카를 잊힌 대륙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오세아니아, 그곳은 보이지 않는 대륙이다.

그곳이 보이지 않는 대륙인 것은, 맨 처음 그 지역을 탐험했던 여행자들이 그곳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그곳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곳, 일종의 통행로이자 어떤 면에서는 부재하는 곳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르 클레지오, ‘라가-보이지 않는 대륙에 다가가기’, 문학동네

르 클레지오의 소설은 여행의 범주를 뛰어넘어, 전 지구적이고 인류적이다. ‘비로소’와 ‘그리고’의 세계가 미치지 않는 시원의 공간이고 미지의 영역이다. 소설적인 틀을 형성하는 최소한의 장치, 곧 ‘비로소’와 ‘그리고’가 최소한으로 작동하는 장면은 성석제의 ‘사냥꾼의 지도’에서 만날 수 있다.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았어.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 그리고 야트막하게 지류에 거쳐 있던 시멘트 다리가 나타났지. 자전거를 탄 내가 골고다의 길로 접어들기 전에 본, 세상사에 초연하게 낚시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여전히 낚시를 하고 있었어. 달라진 건 나는 그동안 무지의 대가를 무서운 모험으로 치러냈다는 것. (…) 관광과 여행, 모험은 뭐가 다를까. 대상의 거죽을 스쳐 지나가는 것과 거죽 속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자신의 거죽을 열고 세포 속의 물질을 대상과 뒤섞는 것의 차이? 결국 여행을 하고 모험을 겪고 나면 그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는 거지. -성석제, ‘사냥꾼의 지도-프로방스의 자전거 여행’

성석제는 여행을 창작 모티프로 삼은 크로노토프 소설들을 발표한 적이 있다. 크로노토프란 시간(크로노스)과 장소(토포스)의 합성어로, 시간과 공간의 결합 방식 또는 시간과 공간이 사용되는 비율에 의해 발생하는 세계관의 차이를 가리킨다. 낯선 공간, 즉 여행지를 모티프로 한 크로노토프 소설은 이전의 여행 소설 또는 기행 소설과 구별되는데, 이때 관건은 작가가 ‘환상’이나 ‘생태’ 등과 같이 ‘여행’을 하나의 형식 또는 장르로 선택 사용했는지 여부다.

인간의 마음이 향하는 길

‘도시와 나-소설로 만나는 낯선 여행’은 ‘여행 형식’을 취한 테마 소설집이다. 작가라는 족속은 실재든 가상이든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꾸는 족속이므로 매 순간 자신이 창조한 인물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마다 취하는 여행에 대한 현실 인식과 의미가 개성적으로 다양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필자의 ‘어떤 여름’의 경우,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가 프랑스의 여러 지방 호텔을 순례하는 여로형의 변형으로, 이 두 남녀가 각각의 관점에서 번갈아 이동 공간을 이끌어가는 형태다. 백영옥의 ‘애인의 애인에게 들은 말’은 짝사랑하는 남자의 공간에 은밀한 스토커처럼 스며들어 서블릿(세입자가 일시적으로 집을 비우는 동안 단기 렌트하는 것) 형태로 체류한 이야기다. 주로 방에 대한 묘사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뉴욕 브루클린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서사의 흐름에서 보면 굳이 그곳이 브루클린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서울 홍대 앞이나 파리의 어느 허름한 아파트여도 무방하다.

집은 가로가 좁고 세로가 긴 레일로드 형태였다. (…) 주인이 오래된 자신의 집을 월세 전용으로 바꾸며 여러 개의 방으로 개조하는 과정에서 기이하게 구조가 일그러진 것 같았다.

공간은 크게 두 곳으로 분리돼 있었다. 한쪽 방에는 책상과 모니터, 사진을 뽑을 수 있는 대형 프린터가 놓여 있었고, 이케아에서 산 싸구려 조립식 책장 안에는 사진집과 책이 꽂혀 있었다. (…) 방을 서성이다 잠겨 있던 문 하나를 더 열었다. 거실과 침실, 부엌이 함께 있는 방에는 철제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침대와 칼로 깊게 긁힌 자국이 선명한 작은 책상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가 앉았을 의자에 앉아 그가 마주했을 책장을 바라보았다. (…) 그를 사랑하기 시작한 지 1년 8개월 만에 나는 그의 집에 와 있었다. -백영옥, ‘애인의 애인에게 들은 말’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출발점으로 소설의 원형은 길 위의 인간을 대상으로 씌어져왔다. 익명의 도시든 가상의 공간이든, 소설은 인간의 마음이 향하는 길이면 그곳이 어디든, 매번 새로 태어날 것이다.

신동아 201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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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 │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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