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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PD의 지구촌 현장

군부 겨냥한 이슬람 과격파 범행 ‘민주세력’ 대 ‘군부’ 재대결 임박

이집트 관광 한국인 테러사건

  • 김영미 | 국제분쟁지역 전문 PD

군부 겨냥한 이슬람 과격파 범행 ‘민주세력’ 대 ‘군부’ 재대결 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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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조용히 움직이는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군부였다. 군부는 민주화 세력을 지지했다. 군부로서는 반정부 세력의 편에 서면 무르시 대통령을 몰아낼 충분한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전 세계 여론도 반정부 세력에 호의적이었다. 이집트 군부의 판단은 적중했다. 군부는 이런 명분을 등에 업고 지난해 7월 3일 무르시 대통령을 긴급 체포하고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무르시가 체포되고 무슬림형제단의 시대가 끝나자 이집트 국민 수십만 명이 카이로 민주화 성지 타흐리르 광장과 대통령궁 앞에 모여 군부를 지지했다. 이때 군 전투기와 헬기들이 카이로 상공을 저공비행하며 반정부 시위대를 보호했다. 이집트 군부의 최고 실권자인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은 무르시 축출 이후 야권 지도자 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 로드맵을 발표했다. 관광업계는 일제히 환호했다. 자신들의 사업을 방해하던 무르시를 군부가 없애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여행사 대표인 마그디(37)는 “무르시 때문에 손해를 본 이집트 국민이 많다. 무르시를 몰아낸 군부는 나의 영웅이다”라고 말했다.

군부의 등장

군부는 무바라크의 몰락 과정에서도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군부는 무바라크의 진압 명령에 불복종하고 국민 편에 서서 군중에게 발포하지 않았다. 당시 군은 성명을 통해 “이집트 군은 지금까지 이집트 국민에 대해 무력을 사용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무력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 평화적인 표현의 자유는 모든 국민에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자신에게 복종할 군대가 없어진 무바라크는 바로 이빨 빠진 사자 신세가 됐다. 국민은 카이로 도심에 진주한 탱크와 군인을 환영하며 찬사를 보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도 이집트 군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 단체는 당시 국방장관이던 탄타위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우리는 당신이 역사적 책임을 짊어지고 현재의 이행 과정이 완수되도록 지원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무바라크와 무슬림형제단 정권을 몰아내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 군부와 국민의 우호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8월 14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라바 광장에서 벌어진 사건이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군부가 무르시 대통령과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는 시위대에 총격을 가한 사건이었다.



당시 군부는 “신과 우리는 무르시 대통령을 지지한다” “무르시를 석방하라” 같은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를 향해 탱크와 불도저를 앞세운 채 발포를 시작했다. 제일 앞줄부터 하나둘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했고 사방에 피가 튀었다. 총에 맞아 머리가 뚫린 시신이 도망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혔다. 시위대 중 상당수는 인근의 알아다위아 모스크(사원) 쪽으로 도주했다. 군인들은 도망가는 시위대를 향해서도 총격을 퍼부었다. 친구의 시신을 둘러 메고 도망가다 쓰러지는 젊은이도 있었다. 당시의 상황은 피의 살육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이슬람 교도들이 모스크로 예배를 가기 전날이었다. 이날 하루에만 라바 광장과 나흐다 광장에서 63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분노의 날’로 명명된 다음 날에도 무르시 지지파 215명(민간인 208명, 군경 7명)이 사망했다. 이 중 104구(具)의 시신은 카이로 도심 람세스 광장 인근의 파테 모스크에서 발견됐다. 8월 16일 금요예배 직후에도 최소 173명이 군경과 시위대의 충돌과정에서 숨졌다. 8월 한 달간에만 군부의 학살로 2200여 명(무슬림형제단 집계)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무슬림형제단이 이끄는 무르시 지지파는 그야말로 망연자실했다. 군부에 대한 공포가 전국을 휩쓸었다. 무슬림형제단의 간부인 압둘카림은 “모스크와 병원에 밀려드는 시신을 보고 우리는 피가 솟구쳤다”고 말했다.



라바 대학살

‘라바대학살’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이집트를 찾는 관광객은 거의 사라졌다. 단기간에 몇 천 명이 죽어나가는 이집트는 더 이상 관광객이 드나들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라바사건이 벌어지자, 독일·스웨덴·이탈리아·벨기에 등은 이집트 입국 자제를 권고했고, 예약 취소가 급증했다.

이란 정부까지 자국민의 이집트 방문을 전면 금지했다. 영국도 중대 사유가 없는 한 이집트행을 금지했고, 카이로 학살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는 한국도 카이로 등 주요 도시에 대해 여행 자제를 권고하는 2단계 여행경보를 내렸다. 한국과 이집트 간 직항 노선을 운항하던 대한항공은 운항을 중단했다. 무슬림형제단이나 군부나 관광객을 몰아내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 셈이다.

라바사건으로 범이슬람권은 충격에 빠졌다. 무슬림형제단이 지난 반세기 중 이슬람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비중 있는 단체고 이들이 배출한 이슬람 학자가 세계 곳곳에 퍼져있기 때문이다. 타격을 입은 무슬림형제단은 짧지만 정권을 쥐고 흔들던 화려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지하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물밑에서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는 이슬람 무장세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집트의 이웃나라 중 리비아와 팔레스타인은 현재 이슬람 무장단체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이다. 400여 개의 부족과 1000여 개의 이슬람 무장단체가 난립한 리비아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사이에 이집트는 샌드위치처럼 끼여 있다. 이집트의 치안 상황이 악화되자 리비아와 팔레스타인에서 무기와 무장세력이 유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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