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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넘기보다 힘든 대학생활 대학 졸업보다 힘든 취직

탈북 여대생 졸업기

  • 김혜성 | 연세대 사학과 졸

국경 넘기보다 힘든 대학생활 대학 졸업보다 힘든 취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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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는 ‘채플’이라는 종교 필수 수업을 4학기 동안 들어야 졸업할 수 있다. 나는 그것도 모른 채 3학년이 돼서야 첫 채플 수업을 들었다. 원래 1~2학년용 수업인 ‘채플’을 3학년이 들으려면 학과장의 사인이 필요했다. 학과장실에 내가 채플 수업을 못 들은 이유를 쓴 종이를 들고 찾아갔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 멀뚱멀뚱 서있으니 학과장님이 물었다.

“너 누구야?”

“저 김혜성인데요.”

“김혜성? 그게 누군데.”

“저 사학관데요. 이쪽으로 가서 학과장님 사인 받아오라고 해서 왔는데요.”



자그마한 체구의 학과장님은 안경 너머 반짝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게 소리쳤다.

“넌 대학 3학년짜리가 자기소개도 할 줄 모르냐. ‘08학번 사학과 누구입니다’라고 해야지.”

나는 그제야 교수님이 가르쳐준 대로 내 소개를 하고 사유서를 내밀었다. 나는 그렇게 자기소개도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학과장 하일식 교수님이 전화로 내게 학과장실을 방문하라고 하셨다. 갔더니 교수님이 흰 봉투를 하나 주셨다. 그 속에는 10만 원짜리 수표 12장이 들어 있었다. 하 교수님은 “사학과 교수들이 사비를 모아 어려운 학생을 위한 장학금을 주는데, 너를 너무 늦게 알았다”며 “금액이 적어 미안하다”며 봉투를 내 손에 꼭 쥐여주었다. 겉보기엔 냉정하고 차가운 사회지만, 이 땅에도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흰 봉투에는 따뜻한 온기가 감돌았다.

책 한 장 읽는 데 하루 꼬박

국경 넘기보다 힘든 대학생활 대학 졸업보다 힘든 취직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영어와 외래어였다. 마치 외국에 온 것처럼 낯설었다.

3학년이 돼 전공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공부는 더욱 어려웠다. 학술서적은 왜 그리도 어려운 말만 골라서 쓰는지. 꼭 한국말로 된 외국어를 읽는 느낌이었다. 한번은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책을 읽다가 책 내용을 내가 아는 한국말로 번역해 써보았다. 이렇게 쉬운 개념을 그토록 어렵게 쓴다는 것도 재주인 것 같았다. 마치 나같이 한국식 외래어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은 책을 못 읽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삐뚤어진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책을 한 권 읽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논문 한 장을 이해하기 위해 10번 이상 읽어봤다. 사학과의 특성상 보고서를 많이 써야 하는데, 전공 글쓰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전공 수업시간에 교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꺼벙하게 앉아만 있는 날이 늘어갔다.

또 이러다가는 1학년 1학기 때처럼 될 것 같다는 위기감이 생겼다. 스스로 약속을 했다. 욕심 부리지 말고 수업시간마다 하나만 제대로 배우자. 수업시간에 집중하기 위해 선생님의 얼굴과 동선에 시선을 고정했다. 교수님과 끊임없이 눈을 맞추며 교수님의 말씀을 최대한 받아 적었다. 친구들과 관계에서도 나를 포장하지 않고 진심으로 대하려 했다.

내가 특히 자신 없는 분야가 영어였다. 나뿐 아니라 많은 북한 출신 대학생이 이에 공감할 것이다. 나는 YG(연세글로벌)라는 동아리에 가입했다. 외국인 교환학생과 한국인 재학생을 짝지어주는 동아리다. 나는 이 모임을 통해 많은 외국인을 만났다. 외국인을 자주 만나 대화하다 보니 영어 말하기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향상되는 경험을 했다. 외국인 친구를 집에 초대해 요리도 대접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외국인 친구들에게 나는 북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동양인이었다.

3년간 스스로를 너무 억압했던 나는, 이제 행복해지고 싶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자신에게 엄격해질 필요는 있지만, 숨 막힐 정도로 나를 학대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기 중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방학 때 여행을 떠났다. 연세글로벌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은 내가 해외에서 무료로 숙식을 해결하도록 도와줬다.

동아리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의 집을 방문했을 때다. 프랑스 남부의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한 아주머니는 내가 북한에서 왔다는 얘기를 듣더니 내 손을 잡고 한참 우셨다.

“내 아들이 교환학생으로 브라질에 가 있어. 물론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볼 수 있는데도 걱정되고 가슴이 아파. 근데 너희 어머니 마음은 어떻겠니. 이렇게 어린 딸을 멀리 보내놓고 단 한 번도 볼 수 없으니….”

나도 아주머니를 안고 한참 울었다. 나는 한국에서 사람들에게 밝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북한에서의 추억을 가슴 깊이 묻어뒀다.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너무 아파 생각할 엄두도 못 냈다. 아니,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인종도 국적도 다른 프랑스인 아주머니가 내 손을 잡고 눈물 흘리며 내 어머니를 걱정해주다니. 나는 이 먼 곳 땅에서 가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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