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감동수기

국경 넘기보다 힘든 대학생활 대학 졸업보다 힘든 취직

탈북 여대생 졸업기

  • 김혜성 | 연세대 사학과 졸

국경 넘기보다 힘든 대학생활 대학 졸업보다 힘든 취직

4/4
여행을 통해 나는 대한민국에서 북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신감을 얻었다. 잘사는 나라든 못사는 나라든,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고 실상 나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대학생활을 거듭할수록 느낀 것도 비슷했다. 남한 사람들 역시 사람이었다. 친구들은 내 학업이 뒤처지지 않도록 진심으로 도와줬다. 나는 남한 친구들과 경쟁하기를 포기했다. 그들은 모두가 나의 멘토였다. 난 친구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들이 쓴 보고서를 빌려 열심히 필사하고 분석했다. 친구가 하는 만큼 나도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성적이 올랐다. 조금씩 성장해가는 나에 대해 많은 교수님이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한국을 떠난 탈북자 친구들

도움을 받기만 하던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참 기쁜 일이었다. 나는 어느새 남한 친구들에게 ‘북한 출신’이 아니라 그냥 친구가 됐다. 남한 친구들은 비교적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은 나에게 고민을 자주 털어놓았다. 이성, 진로, 사회 등 다양한 주제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이렇게 내가 이들과 진짜 친구가 되는 과정이야말로 통일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남한 친구들의 도움으로, 나 역시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줄 여유가 생겼다. 나는 그때부터 북한 사람들과의 모임에도 자주 나가고 그들과도 친구가 되었다. 주변에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여럿 생겼다. 외롭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대학도 졸업했는데 어떤 일인들 못하겠냐”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처럼 대학생활을 어려워했던 탈북자 출신 친구 중 다수가 외국으로 떠났다. 영국, 캐나다, 벨기에 등 안 가는 나라가 없을 정도였다. 탈북자 친구들은 사회적 차별을 견디지 못했다. 여기든 다른 나라든 어차피 차별을 받을 거라면 차라리 더 넓은 세상에서 인종차별을 겪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나 역시 남한에서 산다는 것이 고단했다. 나에게 외국으로 가자고 제안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갈 수 없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언어가 통하는 한국에서도 적응을 못하는데 외국에서는 적응하겠느냐고. 그 말도 맞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얻은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다.

한국은 내게 많은 기회를 줬다. 그간의 내 노력이 아까웠다. 내가 외국으로 간다고 한들 한국에서의 상황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게 더 힘들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나는 또다시, 이 사회의 벽을 넘고 싶었다.

대학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이젠 사회인이다. 그간은 친구, 학교, 교수님의 도움을 받았다면 이제 홀로 해결해야 한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8개월간 쉬지 않고 구직활동을 했다.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서류 지원을 했다. 하지만 단 한 건의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또다시 좌절에 빠질 뻔했다. 나는 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 그토록 많은 지원을 받았으니 이제는 사회를 위해 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 때문에 나는 지금도 쉬지 않고 구직활동 중이다.

많은 북한 출신 대학생이 졸업하고도 취직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취업이 어려운 건 남한 출신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남한 친구들이 가진 스펙과 내 스펙을 비교해보면 사실 내 것은 참 보잘것없다. 자본주의 사회는 어디까지나 결과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내 좌절은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는 남한 친구들과 출발선이 달랐기 때문에 대학 졸업 과정에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사실 많은 기업이 탈북자 채용을 꺼린다. 북한 출신들이 취직 후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탈북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용기를 잃지 않고 도전할 것이다. 일자리의 소중함을 알기에, 기회가 닿는다면 끝까지 잡고 열심히 노력해서 남한의 일원이 될 것이다. 그토록 높아 보였던 대학 문턱을 넘는 동안 받은 도움을, 사회에 돌려주고 싶다.

신동아 2014년 4월호

4/4
김혜성 | 연세대 사학과 졸
목록 닫기

국경 넘기보다 힘든 대학생활 대학 졸업보다 힘든 취직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