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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고통 감내한다고 행복해지지 않아

인고의 착각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고통 감내한다고 행복해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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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모와 외국의 부모는 사실 그리 큰 차이가 없다. 외국의 부모도 자녀가 공부를 잘하길 바라고, 잘하면 좋아하고, 가능한 한 학업을 지원하고, 자녀가 여러 면에서 성공하길 바라고 행복하길 바란다. 그런데 큰 차이는 한국의 부모는 청소년인 자녀가 즐거워하는 걸 보면서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종종 한국의 부모는 자녀를 보며 이런 말을 한다. “너무 즐거운 거 아니니. 너무 천진난만하게 즐겁고 행복한 게 문제야”라고. 마치 몹시 즐거워하는 모습이 아무 생각이 없다는 듯이, 미래의 행복을 미리 당겨 써서 나중에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빠진다. 그러면서 자녀를 설득하려고 한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는 지금의 행복과 즐거움은 포기해야 한다고. 왜? 과연 이런 주장은 근거가 있을까?

두 아들의 다른 삶

필자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두 아들의 얘기로 한번 미래를 그려보자.(물론 실제 나의 두 아들과는 전혀 상관없다.) 큰아들을 요즘 한국의 부모가 키우는(키우고 싶어하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교육시킨다고 가정해보자. 어려서부터 영어와 수학 학원을 보내고, 가능하면 영어유치원과 같은 조기교육에 소홀히 하지 않고, 성적만 따라준다면 명문 초등학교와 중학교, 특목고를 보낸다. 물론 대치동과 같은 곳의 명문 학원을 찾아서 전 과목을 수강하게 하고 과외를 시키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도 억세게 운이 좋아야만 상위 1.5%에 들어가서 이른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영문 약칭) 대학에 입학한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도 가능하면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의 경험을 하고, 지속적인 영어학원 수강과 각종 취업 준비를 위한 학원비 등을 포함하면 최소한 1억5000만 원, 쉽게 2억 원이 넘는 금액이 들 것이다. 이렇게 들이고도 원하는 직장, 대기업이나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중견기업, 공기업, 전문직종에 취업할 확률은 높지 않다. 사실 100명 중에 5~6명도 되지 않을 것이다.

2억 원이 넘는 교육비를 들여 그나마 그런 좋은 데 취업하면 보람은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가 해줄 수 있는 한계는 거기까지다. 물론 1억 원쯤 들여 결혼도 시켜주고, 2억 원쯤 들여 집도 한 채 사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두 아들을 생각하면 12억 원이라는 큰돈이 있어야 해줄 수 있는 꿈같은 얘기다. 그래서 부모 대부분은 취업한 자녀는 이제부터는 알아서 살아가길 바란다.



이제 둘째 아들 얘기를 해보자. 둘째 아들은 어려서부터 공부에 재주가 없었다. 공부로는 먹고살 수 없다는 것이 매우 명확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래서 부모는 영어나 수학, 다른 사교육을 포기하고 별로 교육비도 들이지 않고 둘째 아들을 키우게 된다. 다행히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었고 나쁜 친구를 사귀지도 않아서 착하고 순한 학생으로 성장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에는 성적으로는 전교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을 것이다.

그 최하위권의 성적으로도 등록금만 낸다면 합격시켜줄 대학은 많다. 하지만 부모는 그런 대학에 가서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아들에게 좋은 기술을 배우라고 권한다. 어떤 특수 기술일 수도 있고, 포클레인과 같은 중장비 운전면허일 수도 있다. 이 부모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큰아들에게는 2억이 넘는 교육비를 썼는데 둘째 아들에게는 교육비가 2000만~3000만 원도 안 들었다. 고민하던 부모는 미안한 마음에 둘째 아들에게 2억짜리 집을 한 채 사주었다.

20년 후 이 아들들이 40대가 됐을 때, 과연 누가 더 행복할까. 대기업에 취업한 큰아들이 부모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 2억 원짜리 아파트를 마련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이미 2억짜리 집을 가진 둘째 아들은 한 달에 100만 원에서 200만 원씩 형보다 덜 벌어도 사는 형편은 거의 비슷하다. 집을 살 돈을 저축하지 않아도 되니. 아마 그런 큰아들 중 대부분은 40대 중반이 되면 회사에서 퇴직할 것이다. 그리고 치킨집, 김밥집을 하거나, 동생이 배운 기술을 그때서야 배우겠다고 시작할지 모르겠다.

가난의 대물림

고통 감내한다고 행복해지지 않아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영어학원 수강과 각종 취업 준비를 위한 비용이 든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우리 사회의 중산층이 무너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앞에서 얘기한 둘째 아들에게도 공부를 시키기 때문이다. 사실 공부에 자질도 없고 관심도 없는 둘째 아들에게는 기술을 가르치고, 그 기술을 써먹을 사업을 지원하는 것이 맞다. 포클레인 운전기술을 배운다면, 포클레인을 사주면 된다. 어쩌면 포클레인을 두 대 사줄 수 있는 돈이 될지도 모른다. 한 대는 직접 운영하고, 한 대는 기사를 고용하고. 다른 기술을 배운다면 그 기술을 써먹을 사업자금을 대주면 된다.

하지만 우리의 부모는 나중에 무슨 일을 하게 되건 상관없이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과 돈을 자녀의 사교육에 쓴다. 특히 수학과 영어 교육에. 그리고 나중에 포클레인 운전기술을 가진 아들을 도와줄 여력이 없어서, 그 아들은 다른 사람 소유의 포클레인 기사로 취업한다. 그리고 집을 구할 돈도, 다른 어떤 도움을 줄 여력도 없다. 그래서 그 자녀는 더 어려운 삶을 살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부모도 그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보냈는데도 더 어려운 노후를 보내게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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