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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 기자의 풍수와 권력

환구단과 천단의 천자(天子) 풍수 대결

  • 안영배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 기획위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환구단과 천단의 천자(天子) 풍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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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단과 천단의 천자(天子) 풍수 대결

일제가 허물기 전의 황궁우(가운데 3층 건물)와 환구단(오른쪽).

나아가서 황궁우의 지기는 오히려 조성 이후 명나라의 국운에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생각한다. 이곳에서 분출되던 지기는 황궁우 건물로 인해 굴절돼 천단 북쪽 너머, 자금성이 있는 경산공원(景山公園)으로까지 떨어진다. 기운이 강하게 서린 곳에 건물이 들어서면 그 건물의 입지와 형태 등에 따라 기운이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한다. 혹은 탄력을 받은 기운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아무튼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인 경산은 평지에 건설된 자금성 북쪽의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설계됐다고 한다. 그러나 자금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황궁우에서 날아온 지기가 장막처럼 드리워져 되레 자금성 북쪽에서 뻗어 내려오는 좋은 기운까지 차단하는 구실을 한다. 중국 풍수가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황궁우 지기가 자금성 궐내를 향하도록 한 풍수적 조절이 의도치 않게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을까,아니면 가정제에게 반감을 품었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일까.

황궁우와 원구대를 조성한 가정제 이후 명의 국운은 급격히 쇠락했다는 게 역사학계의 일반적 평가다. 특히 가정제는 정사를 돌보는 대신 도교에서 추구하는 불로불사의 단약(丹藥) 제조와 불로초를 찾는 데 골몰한 인물이다. 심지어 그는 단약을 제조하려고 12~14세 궁녀들의 월경액을 채취하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여 궁녀들이 이에 반발해 가정제를 죽이려는 암살모의 사태를 겪기도 했다. 실제로 그가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각지에서 민란이 끊이지 않았고 몽골군과 왜구의 침입을 끊임없이 받는 등 명의 쇠퇴를 불러왔다. 이 때문에 가정제는 명의 몰락을 몰고 온 첫 번째 인물로도 꼽힌다.

강화도 참성단과 환구단

중국의 천단이 그 위용과 명성에 걸맞지 않은 인위적 조형물이란 점에서 실망감과 함께 내심 조선을 위해선 ‘다행’이었다는 소감을 안고서 귀국길에 올랐다. 그리고 명의 천단에 눌려 천제도 지내지 못한 조선의 허약함을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조선에서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천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학자가 없지는 않았다. 태종 때 문신 변계량(1369~1430)이 대표적이다.



“우리 동방은 단군(檀君)이 시조인데, 대개 하늘에서 내려왔고 천자가 분봉(分封)한 나라가 아닙니다. 단군이 내려온 것이 당요(唐堯)의 무진년(戊辰年, BC 2333년)이었으니, 오늘에 이르기까지 3000여 년이 됩니다. 하늘에 제사하는 예가 어느 시대에 시작하였는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그러나 또한 1000여 년이 되도록 이를 고친 적이 아직 없습니다.”

임금에게 충심으로 올린 변계랑의 상소가 받아들여져 한때 천제 의식이 태종을 비롯해 ‘명의 영락제’ 같은 인물인 세조와 광해군 시기에 시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시적이었을 뿐, 명의 눈치와 압력 및 조선 유교 사대주의자들의 견제를 견뎌내지 못하고 폐지되고 말았다.

고려 시기의 문신이기도 했던 변계량이 언급한 하늘제사는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지내던 천제였다. 단군조선 시기에 쌓았다고 하는 참성단은 중국 천단의 원형처럼 천원지방의 형태를 취했고, 무엇보다도 천기가 직접 내려오는 곳이라는 점에서 명실상부하게 하늘기운과 바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지녔다. 기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 가장 기가 센 곳 중 하나로 꼽는 참성단을 가리켜 “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다”고 평가하기도 했고, 참성단을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에선 이곳의 기를 아예 관광 상품화할 정도였다.

이에 대해 기풍수 전문가 지한 선생은 “참성단의 천기는 이곳에서 기원하는 사람의 기도에 각각 감응하는 신비로운 힘을 가진 기운”이라고도 해석했다. 중국의 천단이 음향의 반사음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천제를 시늉했다면, 참성단의 천제는 기도자와 하늘기운이 직접 교감하는 행사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편으로 조선에서 우리식 천제를 지내자는 변계량의 소원은 그의 사후 460여 년이 지난 조선 말기 고종 시대에 이르러 결국 이뤄졌다.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자신이 황제임을 공포했다. 그리고 그 첫 작업으로 황제로서 하늘에 제사 지내는 환구단과 황궁우를 지었다. 당시의 풍수가를 동원해 조선의 옛 남별궁(南別宮) 터에 조성한 환구단은 하늘의 천기가 쏟아져 내려오는 곳이고, 하늘상제와 역대 임금의 위패를 모신 황궁우는 지기가 솟구쳐 오르는 곳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황궁우의 지기는 그 소용처를 찾지 못해 공중으로 흩어져버리고, 환구단이 있던 자리(서울 소공동 웨스턴조선호텔)에 내려오는 천기 역시 그 훌륭한 기운을 현 시대 사람들에게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겉으로 떠도는 상태라 아쉽기만 하다. 이처럼 풍수적으로 보완만 하면 현재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양택 명당은 우리 주위에 의외로 많다.

권력과 명예의 기운이 밴 환구단의 천기가 당시 고종을 비롯한 대한제국 사람들에게 그 좋은 기운을 물씬 전달하지 못했다는 점은 역사가 증명한다.

한국과 중국만큼이나 천손의 나라가 되고 싶어 한 일본은 1910년 대한제국을 병탄한 후 그 첫 작업으로 환구단 터를 조선총독부 소관으로 한 다음 1914년엔 환구단을 헐어버리고 조선총독부 철도호텔(현 웨스턴조선호텔)을 지었다. 한국이 ‘천손의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일본의 정치적 쇼였다. 이 역시 일본의 또 다른 ‘풍수 침략’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웨스턴조선호텔의 황궁우에서 고종 시절의 환구단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원형의 환구단에 올라 황제 즉위식을 치렀다. 환구단 주위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 가운데 고종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서 대한제국이야말로 진정한 천손국임을 만방에 선포했다. 누가 과연 천손의 나라일까.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사이의 천손국 다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신동아 201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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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 기획위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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