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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PD의 지구촌 현장

우크라이나 내분 속 미·러 군사 충돌 가능성

크림반도 新냉전

  • 김영미 | 국제분쟁지역 전문 PD

우크라이나 내분 속 미·러 군사 충돌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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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중앙정부가 친서방 세력으로 재편된다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유럽 영향권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남쪽에 있는 흑해 연안 크림 반도는 사정이 달랐다. 인구 250만 명의 크림자치공화국은 주민의 60%가 러시아계다. 이들은 유럽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반발하고 러시아로의 편입을 원했다.

3월 27일 새벽, 수십 명의 무장 세력이 크림자치공화국 수도인 심페로폴의 청사와 의회 유리창을 깨고 무단으로 진입했다. 검은 옷에 오렌지색 리본을 단 그들은 의회 건물 밖에 러시아 국기를 게양하고 ‘크림은 러시아’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 무장 괴한들은 친러시아 자경단 소속이었다.

여기에 러시아도 가세했다. 자기들이 알아서 러시아에 땅을 반납하겠다는데 러시아로서는 총 한 발 안 쏘고 크림 반도를 가질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즉각 1만5000명의 군대를 크림 반도 심페로폴의 외곽 군기지와 러시아 흑해 함대 주둔지인 세바스토폴 인근 페레발노예 군기지, 반도 동쪽 페오도시야 군기지 등에 보냈다.

러시아 택한 크림 반도

크림 반도는 원래 러시아공화국 소속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동맹관계를 맺은 지 300년이 되던 1954년 당시 소련의 흐루시초프 정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화합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크림 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우크라이나로 이관했다. 소련 내의 민족감정을 불식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었다.



크림자치공화국 의회는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촉구하는 ‘독립선언’을 채택하며 주민 투표를 실시했다. 3월 16일 크림자치공화국은 주민투표를 통해 합병을 결의하고, 22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합병안에 서명했다. 이로써 60년 만에 크림 반도는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게 됐다.

이 과정에 크림 반도에 부각된 인물이 있는데, 바로 크림자치공화국의 총리에 오른 세르게이 악쇼노프(41)다. 그는 이번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이름 없는 정치인이었다. 그가 만든 당의 의회 의석 점유율은 3%(100명 중 3명)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가 총리 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건 그가 조직한 자경단 때문이었다. 자경단은 말 그대로 사병부대로 러시아로 편입하기 위해 조직된 친러 무장 세력이었다. 수도 키예프에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자 친러 자경단의 숫자는 급격하게 불었다. 이들은 무장을 하고 복면을 한 채 정부 청사나 경찰서를 점령해나갔다.

이렇게 자경단을 바탕으로 그는 빠르게 총리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자경단은 심페로폴에 있는 크림자치공화국 의회를 무력으로 점령했으며 가장 먼저 악쇼노프의 총리 지명을 요구했다. 그렇게 총리가 된 그는 지금까지 초고속 행보를 이어간다. 러시아 편입을 결의하고 주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했으며 자체 군대도 창설했다. 두 달 안에 러시아 화폐인 루블로 전환하는 등 경제권에서도 러시아에 완벽하게 편입했다. 크림의 요충지인 세바스토폴은 공문서 언어를 우크라이나어에서 러시아어로 바꿨다.

일각에서는 담배 밀수나 하는 등 별다른 경력이 없는 그가 이렇게 체계적으로 러시아 편입 절차를 주도하는 것에 대해 러시아가 뒤에서 조종했을 것이란 추측이 무성하다. 실제로 그는 총리로 지명된 후 가장 먼저 푸틴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자신이 크림의 총리이며 앞으로 러시아에 협력할 것을 다짐했다. 러시아 하원의 ‘독립국가연합(CIS·옛 소련권 국가 모임) 문제위원회’ 위원장 레오니드 슬루츠키 의원은 심페로폴을 방문해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의 안전이 위협받을 경우 우리는 동포를 보호할 것”이라고 말해 그를 지원했다.

크림에 주둔하던 우크라이나 군대는 철수하거나 일부 지휘관은 자진해서 러시아군으로 옮겼다. 러시아에 투항한 군인 중에는 데니스 베레좁스키 우크라니아 해군사령관도 있었다. 이처럼 악쇼노프 총리의 행보와 크림 주민의 바람으로 크림 반도는 급속도로 러시아에 편입됐고, 러시아는 가만히 앉아서 크림을 받기만한 모양이 됐다.

친러 세력의 테러

우크라이나 내분 속 미·러 군사 충돌 가능성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에 세워진 장갑차 옆에 한 소년이 서 있다. 도네츠크 지역 등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는 정부의 경고에도 분리독립 투표가 진행 중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2월부터 러시아 서부지역 군부대에 긴급 군사훈련을 지시하며 시시각각 우크라이나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러시아 서부와 우크라이나 동부가 국경을 직접 맞대고 있으며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크림 반도는 러시아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역사적 배경도 가지고 있다. 17세기 말 제정 러시아는 표트르 대제의 명령에 따라 겨울에도 얼어붙지 않는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흑해로 남하했는데, 당시 흑해 일대를 장악했던 현재의 터키인 오스만투르크제국과 여러 번의 전쟁 끝에 마침내 1783년 크림 반도를 힘들게 손에 넣었다.

그 후에도 크림전쟁(1853~1856)을 겪으며 영국과 프랑스가 지원한 오스만투르크와의 전쟁에서 패했다. 그 결과 러시아는 크림 반도 영유권을 갖는 대신 흑해를 비무장화한다는 조약에 서명했다. 크림을 다시 빼앗긴 것이다. 1·2차 세계대전의 어수선함을 틈타 러시아는 기존 조약을 깨고 세바스토폴 항을 러시아 최대 해군기지로 만들었다.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에도 러시아는 흑해함대를 주둔시키며 해군기지를 유지한다. 이렇게 힘들게 지킨 크림 반도를 유럽연합에 편입될 공산이 큰 우크라이나에서 빼앗지 못한다면, 이제 러시아는 영원히 크림 반도를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크림 반도가 분리되는 상황을 지켜본 우크라이나 동부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본토의 동부 지역에도 러시아계 주민이 많이 살고 있으며 이 중 일부 주민들도 우크라이나와 분리되길 원한다. 급기야는 도네츠크, 하리코프가 연달아 자치 독립을 선언했다. 또 4월 28일엔 루간스크에서도 친러 시위대가 크림 반도처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하며 5월 11일 자치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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