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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연구

나는 왜 韓日 역사의 터부를 부수는가

김옥균·광개토태왕비 그리는 만화가 야스히코 요시카즈

  • 김영림 | 일본 통신원, 군사평론가 c45acp@naver.com

나는 왜 韓日 역사의 터부를 부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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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 세력이 확대돼 진압하는 데 힘이 부치자, 조선 정부는 청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자 일본이 재한 거류민 보호를 명분으로 조선으로 군대를 보내 청군과 충돌했다. 청일전쟁이 일어난 것. 그때 가쓰 가이슈는 개탄하며 전쟁에 반대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전쟁은 일본의 대승으로 끝났다. 일본에서는 청국과 조선은 물론이고 동아시아 문명에 대한 경외감이 사라지고 ‘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우월감’이 팽배해졌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청국이 과도하게 영토를 잠식해 들어오는 일본을 막기 위해 독·불·러 3국에 중재를 요청해(3국 간섭), 러시아가 일본이 차지하려던 요동반도를 점령했다. 일본은 막부 시대부터 두려워하던 러시아의 남하를 자기 손으로 유도한 셈이 된 것이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은 더 큰 전쟁(러일전쟁)을 준비하게 됐다.

광개토태왕碑文 침략 근거로 조작

청국으로부터 받은 막대한 전쟁배상금은 대부분 전쟁 준비에 충당됐는데, 이는 군국주의 국가를 향한 시동이었다. 야스히코 요시카즈는 ‘왕도의 개’에서 청일전쟁의 막전막후를 근대 일본의 굴절이 시작된 시점으로 본다. 그 절정이 김옥균의 비극적인 최후라는 것이다.

‘왕도의 개’ 말미에는 변질된 아시아주의를 대표할 새 인물이 등장한다. 동학농민운동 때 “김옥균 복수”를 외치며 조선에 상륙한 현양사 제일의 난폭자이자 훗날 흑룡회를 창설해 만주와 조선을 넘나들며 조선 식민지화에 앞장서는 ‘대륙낭인’ 우치다 료헤이(內田良平)다.‘하늘의 혈맥’에도 그를 이야기의 한 축으로 삼아 변질된 아시아주의가 침략 논리로 발전해가는 과정이 묘사된다.



작품은 러일전쟁 직전 도쿄 제1고등학교와 도쿄제국대학의 공동조사단이 광개토태왕비의 비문을 조사하기 위해 만주로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대로 14대 중애천왕의 미망인 신공왕후가 삼한(백제·가야·신라)을 정벌했다는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실증적 자료가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이 연구를 후원한 우치다 료헤이의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그는 일본의 조선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 나아가 대륙 침략의 명분을 조작해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광개토태왕비 비문의 훼손과 그 해석 과정에 들어간 음모의 연출이다. 이 비에는 광개토태왕이 5만의 병력을 동원해 한반도 남부에 침입한 왜군을 진압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문제는 그 부분을 묘사한 글귀의 일부가 손상돼 있는 것이다.

‘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羅以爲臣民(이왜이신묘년래도해파백잔□□□라이위신민)’

이것이 문제의 비문인데 □로 표시한 부분은 판독이 불가능한 글자다. 일본은 이 문구를 ‘왜가 신묘년(391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가야,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라고 유추 해석하고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보았다.

일본은 이전부터 임나일본부설을 통해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의 역사적 정당성을 주장해왔기에, 러일전쟁 전 일본의 첩보기관이 비문을 훼손해 일본의 한반도 원정기사를 조작했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작품은 다르게 묘사한다. 중국인 탁본업자가 성급히 탁본을 하다 해당 글자를 훼손했고, 그것을 석고로 덮었다고 해놓은 것.

터부를 꺼내 흥미를 만들다

작품은 임나일본부설과 별개로, 왜군이 고대 한반도에 상륙한 것만큼은 사실이란 전제하에 전개된다. 작가는 고대 일본(왜)이 한반도로 원정했다는 주장의 진위와 일본이 의도를 갖고 비문을 훼손했다는 데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는 역사를 날조해 침략 논리로 이용한 것에만 초점를 맞춘다.

사실 ‘일본서기’나 ‘고사기’ 등에 나오는 신공왕후의 한반도 원정 기사는 신화적인 과장투성이다. 14대 천왕의 유복자를 임신한 채 참전한 신공왕후가 원정을 위해 인위적으로 출산 시기를 늦추었다는 등 비논리적인 묘사가 많다. 신공왕후의 임신에서부터 출산까지의 기간을 생각한다면, 15대 응신천왕은 14대 천왕의 아들이 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응신천왕은 누구의 후예냐가 문제가 된다. 이는 천왕가(家)의 순혈성에 대한 물음이기에 터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잃어버린 왕국’을 쓴 소설가 고(故) 최인호씨는 광개토태왕이 보내준 고구려군이 격퇴한 왜는 일본에 세력을 구축한 가야 세력이고, 응신천왕은 비슷한 시기에 멸망한 금관가야의 후손이라는 대담한 설을 제시했다.

‘하늘의 혈맥’에 등장하는 우치다 료헤이는 천왕가와 한반도가 관련된 수수께끼를 조선 침략 논리로 이용하려 한다. ‘신공왕후는 원정 중에 임신했다. 아이의 진짜 아버지는 같이 참전한 중신 다케우치노 스쿠네일 것’이란 일반 연구자들의 견해를 반박하며 ‘응신천왕 아버지로서 격에 맞는 인물을, 광개토태왕비문 연구를 통해 날조해낼 것’을 요구한다.

우치다는 어떻게 속였는가

나는 왜 韓日 역사의 터부를 부수는가

비문 조작 시비가 있었던 광개토태왕비. 중국 측 연구에 따르면 비문 훼손자는 이 비석의 탁본을 떠서 팔아먹던 중국인 탁본업자라고 한다.

격에 맞는 인물은 바로 왜군을 격파한 ‘동아시아의 패왕’ 광개토태왕이다. 이러한 날조가 진실로 인정받는다면 천왕가는 조선뿐 아니라 만주에 대해서도 혈통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창작이다.

일본과 조선이 한 뿌리라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은 에도(江戶) 시대부터 존재해왔고, 아시아주의에서도 일본과 한국이 연대해야 한다는 논리의 근거로 작용해왔다. 이 설을 신봉했던 우치다 료헤이는 이 설을 악용해 조선과 만주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정당화하려 했다.

이 만화에는 일선동조론에 동조해 한국과 일본이 한 나라가 되어 러시아에 대항하자고 하는 조선인도 등장한다. 우리로서는 아주 불편한 묘사다. 그러나 실제로 흑룡회와 연합해 조선의 식민지화를 앞당긴 조선인들이 있었다. 동학 출신의 이용구가 창설한 ‘일진회’가 그것이었다.

‘하늘의 혈맥’은 현재 연재 중이다. ‘왕도의 개’가 일본 근대사의 굴절과 침략 국가로의 전환을 묘사했다면, 이작품에선 그 굴절을 본격적으로 전개한다.

야스히코 요시카즈는 ‘하늘의 혈맥’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그는 “우치다 료헤이 같은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자신의 꿈을 말하고 어떤 사람들을 속였는지’를 직시해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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