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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산책

처칠 반대 무릅쓰고 ‘조선 독립’ 문안 집어넣어

장제스(蔣介石)일기로 본 카이로 회담 비화

  • 이상철 │일본 류코쿠(龍谷)대학 사회학부 매스컴 담당 교수 cieli@soc.ryukoku.ac.jp

처칠 반대 무릅쓰고 ‘조선 독립’ 문안 집어넣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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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기습 덕에 연합국 된 중국

처칠 반대 무릅쓰고 ‘조선 독립’ 문안 집어넣어

후버 연구소는 장제스 일기를 A4 용지 크기의 청색 종이에 한 장씩 복사한 복사본만 공개한다.

장제스가 카이로 회담에 초대된 경위를 설명하자면 1941년 말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일본이 하와이의 진주만을 급습한 것은 12월 8일 새벽 1시(중국 시간)였다. 3시간 뒤 장제스는 주미 중국대사 둥셴광(董顯光)으로부터 이 사건에 관한 보고를 받는다.

그날 오후 장제스는 충칭(重慶)주재 미·영·소 대사를 접견해 일본과의 전면전을 불사한다는 뜻을 전달하고, 이튿날 오후 9시 대일 선전을 포고했다.

그날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장제스에게 전보를 보내왔다. 내용은 4년 반에 걸친 장제스의 항일 투쟁에 경의를 표하고 힘을 합쳐 일본과 싸우기를 희망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날 장제스는 루스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총리 처칠, 소련의 서기장인 스탈린한테 4대국 연합 군사회의를 열자고 제안했다.

12월 10일 장제스는 ‘전국 군민(軍民) 동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표한다. 이 편지에서 장제스는 ‘일본은 만주사변 때 우리의 선양(瀋陽)을 기습했던 술수로 우리의 우방인 영·미를 급습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세계와 인류에 전례 없는 혼란을 일으켰다. 민국 정부는 국제 정의를 신장하고 인류 문명을 지키기 위해 이미 일본에 대해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독일과 이탈리아에 대해서도 선전포고를 내렸다’라고 말한다.



다음 날도 장제스는 전 인민을 향해 “우방의 적은 우리의 적이고 우방의 승패는 곧 우리의 승패다”라며, 반(反)침략전쟁에서 영·미와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한다. 3주가 지난 1942년 1월 2일, 그는 루스벨트의 제안으로 중국전구(戰區)의 최고 사령관에 취임한다. 장제스는 이 사건을 이렇게 적어놓았다.

‘중·미·영·소 4개국은 이미 반(反)침략의 중심이 됐다. 하여 우리나라는 세계 4강 중 한 나라가 됐다. 거기에 더해 나는 중국전구의 최고 사령관에 취임하기로 했다. 내가 지휘하는 구역에는 베트남과 태국도 들어 있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의 위신과 지위는 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하지만 헛된 명예욕 때문에 해가 오지 않도록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1942년 1월 31일 쓴 ‘이번 달의 반성록’에서)

중국전구는 워싱턴에서 열린 미·영군 참모장 연석회의에서 결정됐다. 애초에는 중국과 태국, 베트남, 미얀마의 북부를 하나의 전구로 할 계획이었는데 중국을 떼어내 독립 전구로 만들고, 나머지 동남아전구는 미·영 참모장 연석회의에서 관할하기로 했다. 전구 사령관 취임 뒤 장제스는 루스벨트에게 전보를 보내 중국전선에서 참모장을 맡을 장군 한 명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쑹메이링의 활약

루스벨트는 조지프 스틸웰(1883~1946) 장군을 보내 장제스를 돕게 했다. 장제스는 수하에 군사 재능이 있는 인재가 없어 미국인 참모장을 요청한 것이 아니었다. 첫째는 미국의 군사원조를 이끌어내고, 둘째는 미국인 참모장에게 미얀마 전역(戰役)을 맡겨, 미얀마전구의 지휘권도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잘 맞지 않았다.

장제스는 극동전선에서 일본을 견제하는 데 실패했다. 1942년 전반까지 큰 전과도 내지 못한 채 일본에 밀려 힘든 싸움을 했다. 1942년 11월 장제스는 부인 쑹메이링(宋美齡)을 신병치료를 하며 군사원조도 이끌어낼 겸 해서 미국으로 보냈다. 카이로 회담은 쑹메이링이 미국에 있을 때 구체적으로 논의됐고 일정도 결정됐다.

쑹메이링은 신변에 일어나는 일을 남편에게 매일같이 보고하고 회답을 받아 행동했다. 원래 부부 사이가 좋았던 데다 미국에 대한 쑹메이링의 영향력이 컸기에 장제스는 외교부장이나 주미 중국대사보다 부인한테 더 의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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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철 │일본 류코쿠(龍谷)대학 사회학부 매스컴 담당 교수 cieli@soc.ryukoku.a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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