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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 기자의 풍수와 권력

망주봉에서 전설의 고려왕릉을 찾다

王氣 서린 권력의 섬 선유도

  • 안영배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 기획위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망주봉에서 전설의 고려왕릉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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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왕실 풍수

고려 왕실이 풍수설에 전적으로 의지했다는 것은 서긍의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고려는 본디 글을 알아 도리에 밝으나 음양설(陰陽說)에 구애되어 꺼리기 때문에, 그들이 나라를 세움에는 반드시 그 형세를 관찰하여 장구한 계책을 세울 수 있는 곳이라야 자리 잡는다”고 씌어 있다. 또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을 믿어 특정한 땅의 지기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왕성하기도 하고 쇠락하기도 하기 때문에 왕성한 지기를 따라 움직여야 권력이 유지된다고 봤던 것이다. 실제로 고려 숙종과 문종은 이를 수용해 남경(지금의 서울)과 개경 백마산에 새로운 궁궐을 짓기도 했다. 선유도 망주봉 역시 지기쇠왕설에 근거해 새로운 에너지를 얻으려는 곳 중 하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섬 문화를 연구하는 변남주 목포대 교수는 선유도 일대를 답사한 결과 “고려 정부가 유사시를 대비해 선유도 해상왕국을 두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선유도 일대의 범상치 않은 기운을 읽어낸 이상 조선 고지도에 표기된 ‘고려왕릉’을 본격적으로 찾아보기로 했다. 왕릉에 대해서는 군산대박물관 측이 1990년대 중반부터 문화재 지표조사를 꾸준히 해오고 있었으나 지금까지 그 흔적을 찾지 못한 상태다.

곽장근 군산대 사학과 교수는 군산도 중앙부에 자리한 섬이 선유도이며, 현재까지 지표조사를 통해 군산도 가운데 문화유적 밀집도가 가장 높은 선유도에 왕릉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제일 크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왕릉을 찾기 위해선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왕릉 풍수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필자의 전공이 고려와 조선 전기의 이론 풍수인데, 고려왕릉은 형세파 풍수이론으로 평지가 아닌 양지바른 산기슭에 주로 조성했다. 이러한 풍수이론으로 접근해 망주봉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그 결과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망주봉의 두 봉우리 가운데로 마치 말안장처럼 생긴 둔덕 아래가 지목됐다. 풍수지리학으로 길지에 해당하며 망주봉 일대 에너지장의 중심부이기도 했다.



이미 날이 어둑어둑해져 다음 날 다시 살펴보기로 하고 선유도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 아침, 원거리에서 다시 확인해볼 겸 선유3구 선착장에서 전날 지목한 위치를 가늠해봤다.

수묵화 ‘독화로사도’에 담긴 비밀

망주봉에서 전설의 고려왕릉을 찾다

선유도 망주봉의 권력 기운이 서린 고려시대의 수묵화 ‘독화로사도’.

그런데 이곳에서 바라다보이는 망주봉 일대가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엔 유람선이 오후 늦게 출항할 정도로 선유도 일대에 안개가 자욱해 선명치 않았는데, 날씨가 화창하게 갠 이날엔 망주봉 풍경이 선명히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앗! ‘독화로사도(獨畵鷺圖)’다. 필자는 순간적으로 이곳이 고려시대의 유일한 수묵화로 최근 공개된 ‘독화로사도’의 배경임을 알아차렸다. 국내 미술품 감정계의 권위자 이동천 박사가 지난해 언론에 소개한 바로 그 그림이 이곳 선유도 망주봉 일대를 묘사했던 것이다. 고려시대 불화(佛畵)를 제외하고, 이 세상에 비단이나 종이에 그린 고려 그림이 여태껏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독화로사도의 발굴 공개는 당시 언론의 대대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필자는 휴대전화로 이동천 박사를 찾아 독화로사도 사진을 e메일로 전송해달라고 요청했다. 불과 몇 분 만에 ‘독화로사도’가 휴대전화 화면에 떴다. 이를 확대해 필자가 선 지점에서 비교해보았다. 똑같았다. 망주봉의 불끈 솟은 두 봉우리 하며, 저 멀리 보이는 두 개의 섬이며, 망실된 군산정의 위치도 그림 속에서는 분명히 묘사돼 있었다. 게다가 서긍이 묘사한 고려 민가의 가옥도 그림에서는 사진을 찍어놓은 듯이 새겨져 있는 것 아닌가!

“백성은 열두어 집씩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었고… 백성의 집은 지형과 높낮이가 벌집이나 개미굴 모양이었다. 띠를 잘라 지붕을 엮어 겨우 비바람을 가리는데, 그 크기는 서까래 두 개를 넘지 못했다.”

바로 이런 모양새의 민가들이 ‘독화로사도’에 그대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동천 박사는 “독화로사도는 화가가 바다에서 섬 쪽을 바라보는 구도로 그린 것이며, 이러한 형태의 그림은 우리나라 조선에서도 중국의 역대 어느 왕조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독특한 그림”이라면서 “해양국가인 고려의 체취가 묻어 있는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아무튼 ‘독화로사도’는 고려 관아와 군산정, 그리고 숭산행궁의 위치를 찾는 데도 매우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가 될 수 있다. 사실 서긍이 묘사한 군산정 위치에 대해선 한국과 일본의 학자마다 의견이 엇갈려 있던 상태인데, 군산정의 위치가 그림에 묘사됨으로써 숭산행궁의 추정 위치 또한 보다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고려왕릉 추정 장소 찾아내다

그림 감상을 뒤로하고 동행한 지한 풍수고고학연구소장과 현장을 찾아갔다. 이 일대를 몇 차례 확인한 결과 망주봉 산기슭에서 왕릉으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했다. 무덤 자리는 봉분이 이미 무너져내려 평지처럼 변해 있고, 주위는 잡초만 우거져 아무런 표지가 없기 때문에 일반인은 이곳이 무덤인지조차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누군가가 이미 이곳을 파헤쳤던 흔적이 곳곳에 드러났다. 선유도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진흙 황토와 석회(백회) 덩어리가 주변에 산재했고, 나중에 파헤친 무덤을 흙으로 듬성듬성 덮어놓은 듯 보였다. 지상에서 20~30cm 깊이까지는 이 섬의 토양 색깔과 비슷한 지층을 형성하고 있는데, 더 밑으로는 황토와 석회 성분이 드러났다. 지한 소장은 “이 흙은 생토(生土)가 아닌 사토(死土)이며 시신을 매장한 뒤 덮은 흙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지상에서 1m 남짓 계속 이러한 석회 덩어리와 황토가 뒤섞여 있는가 싶더니 돌처럼 굳어버린 석회층이 나타났다. 너무 굳어진 석회층은 삽 따위의 도구로는 파헤칠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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